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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내일이 없어 그래서.. 행복해

임지영 기자 입력 2015. 03. 23. 11:38 수정 2015. 03. 23.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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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클로나 자라에서 기본 패션 아이템을 구입해서 입고 에이치앤드엠에서는 유행 아이템을 사서 포인트를 준 다음, 맥도날드에서 런치 세트와 커피로 식사하면서 친구들과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세 시간 정도 나눈다. 집에서는 유튜브를 보거나, 스카이프를 이용해 친구와 채팅을 즐기고 종종 화상 통화도 한다. 가구는 니토리나 이케아에서 구매한다. 밤에는 친구 집에 모여서 식사를 하며 반주를 즐긴다. 그리 돈을 들이지 않아도 나름 즐거운 일상을 보낼 수 있다.'

일본의 1985년생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가 묘사하는 일본 젊은이들의 일상이다. 아직 한국에 상륙하지 않은 가구업체 '니토리'라는 이름만 빼면 서울 시내에서 마주치는 젊은이들의 풍경과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요즘 일본 20~30대의 생활 만족도나 행복지수가 최근 40년 중 가장 높다는 것이다. 아귀가 잘 맞지 않는다. 경제적으로는 오랜 침체기인 데다 대다수가 비정규직 노동자이고, 대학 졸업자의 취업률은 낮으며 고령화가 진행 중인 사회에서 젊은이들은 왜 행복하다는 걸까. 이는 후루이치가 말하는 '사토리 세대'의 특성이기도 하다. 이들은 행복해서, 저항하지 않는다.

사토리 세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 건 2~3년 전부터다. 사토리(さとり)는 '깨달음·득도'라는 뜻을 지닌 일본어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일본에서 태어난 이들을 일컫는 '사토리 세대'는 득도한 것처럼 욕망을 억제하며 사는 젊은 세대로 정의된다. 대체로 '물건을 사지 않고 해외여행을 다니지 않으며 정치에 관심이 없고 초식 생활을 하면서 내향적'이다. 2013년 출간된 <트렌드 지식사전>에 보면 전 <니혼게이자이 신문> 기자가 인터넷 게시판에서 자신의 저서에 대한 의견을 나누던 중 한 누리꾼이 사토리 세대란 이름을 쓴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최근 이 단어가 친숙해진 건 <조선일보>가 다룬 '달관 세대' 특집 기사 때문이다. 사토리를 '달관'으로 해석해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기사 속 한국의 젊은이들은 절망적인 미래에 불안해하기보다 지금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누리겠다고 말한다. 콜센터 계약직으로 월 120만원을 벌지만 정규직이 되면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아 별 미련이 없고, 재택 아르바이트를 하며 월 80만원을 버는 프리랜서도 꼭 필요한 만큼 벌어 취미 생활을 즐기며 산다. 월 100만원을 벌어도 괜찮다. 덜 쓰고 잘 노니까. 급기야는 칼럼을 통해 '부모가 권하는 직업 대신, 애인 같은 직업을 찾는 세대'로 달관 세대를 정의하며 그들 가운데서 한국의 스티브 잡스가 나올 것이라고 예견하기에 이른다.

기사를 접한 이들의 비판이 거셌다. 현실은 체념에 가까운데 사례 속 인물들은 그런 삶을 기꺼이 선택한 것처럼 보였다. 절박한 삶을 '라이프스타일'로 포장했다. 노동환경에 대한 비교 없이 일본에서 통용되는 사토리 세대의 경향만 차용하는 무리수를 두기도 했다.

사회학자 오찬호씨는 이런 상황을 예견했다. 기사의 모티브가 된 후루이치 노리토시의 책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에 그가 쓴 해제의 한 대목이다. '한국에서 오해받기 딱 쉬운 책이다. 제목만 보면 '힘들어도 행복을 추구하는 젊은이가 있다'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지 않는가. 이것은 고난을 긍정적으로 이겨내는 스토리를 과하게 좋아하는 한국 사회의 특징과 매우 잘 어울린다. 그래서 이 책은 사회에 대한 절망감에 행복해하지 않는 젊은이들에게 '불평 좀 하지 마'라면서 권장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물론 이 책은 그런 주술적인 내용이 아니다.'

경기침체와 '한 쌍'인 체념

오찬호씨는 '달관 세대' 기사에 대해 '달관 세대로 보이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은 어떤 사회에건 있었던 소수의 낭만적인 아웃사이더로 봐야 한다. 과거에 비해 유의미한 증가가 있는가를 봐야 하는데 일반화하기엔 현실이 너무 가혹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사토리 세대가 불가능하다고 딱 잘라 말한다. 일본에 행복한 젊은이들이 존재하는 건 그나마 자신을 사회적 관계 내의 피해자로 볼 줄 알기 때문이라는 것.

저자인 후루이치 역시 젊은이가 행복하다는 데서 이야기를 끝내지 않았다. 행복하다고 느끼면서도 동시에 불안하다는 생각을 품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질 리 없다는 생각이 들 때 인간은 지금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이로써 고도성장기나 거품경제 시기에 젊은이들의 생활 만족도가 낮게 나타났던 이유가 설명된다. 그 시기의 젊은이들은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질 것이다'라고 믿었다. 더불어 자신들의 생활도 점차 좋아질 거라는 희망도 품고 있었다. 지금은 불행하지만 언젠가 행복해질 거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은 다르다. 내일이 더 나아질 거라고 믿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었을 때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사토리 세대의 실체다. 어떤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지만 이 기묘하고 뒤틀린 행복이 당분간은 지속될 거라고 전망한다.

젊은 세대를 일컫는 조어는 많다. 잉여 세대, 삼포 세대(취업·결혼·출산 포기 세대), 유럽의 1000유로 세대(한국의 88만원 세대와 비슷한 저임금 세대), 고학력과 저임금이라는 특성이 가격 대비 성능이 좋은 이케아 가구와 닮았다는 데서 나온 이케아 세대 등이 대표적이다. 영국에서 주목받고 있는 계층인 '차브' 역시 '복지예산이나 축내면서 노동을 회피하고 소파에 누워 하루 종일 텔레비전 리모컨이나 돌리는 하층 계급'으로 묘사된다.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체념과 무욕의 특성은 어느 나라든 예외 없는 경기침체와 관련이 있다.

또 다른 공통점은 청년들이 집에 머무르는 기간이 길어졌다는 점이다. 취업이 안 되고 독립이 늦어지면서 일생에서 부모와 지내는 시간이 늘고 있다. 오찬호씨는 '한 사회에서 독립이 강조될수록 각자의 개성 역시 강조되고 진보적 성향을 가지기 쉽다. 독립이 늦어지면 부모에 대한 부채의식이 커지고 검증된 길을 가고자 하는 경향도 커진다.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면이 강해지는 것이다. 다양성을 인정하기도 어려워진다. 어떻게 보면 퇴행적이라고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스물여섯 나이에 에어컨 바람이 잘 나오는 방에서 J팝을 들으며 책을 쓴 후루이치는 스스로 사토리 세대의 특성을 반영한다. 그는 어떤 시민의식이나 계몽의식이 아니라 '나'와 '내 주변'에 대한 관심에서 세대를 연구했다고 밝힌다. 그러면서도 '젊은이론' 자체에 대해 비판적이다. '본인이 늙어서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일 뿐인데 이것을 마치 세대의 변화 혹은 시대의 변화로 착각해버린다'는 것이다. 세대론은 본래 정교한 설명에는 취약하다. 계급, 인종, 젠더, 지역 등 변수를 무시하고 그저 어떤 연령에 가깝다는 이유로 일괄해서 명명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한때 20대에 관한 세대론이 자주 오르내렸다. 당사자의 목소리라기보다 윗세대의 꾸짖음에 가까웠다. 한때 20대 소설가로 명명되던 김애란 작가는 동세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2007년 <시사IN>에 기고한 글에 이런 구절이 있다. '문득 한국에서 20대의 의견은 언론의 옵션, 언론의 특집, 언론의 끼워주기 안에서만 서식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기성세대가 20대에게 의견을 물을 때, 대답이 발랄하고 건방지기를 바란다는 인상을 받은 적이 있다. 그들은 20대의 생각이 궁금하기보다는, 20대를 귀여워해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임지영 기자 /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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