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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한국.. 사라진 남편.. 그래도 아이는 포기 못해"

입력 2015. 03. 26. 03:27 수정 2015. 03. 26. 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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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모 이주여성 아기 키울 보금자리.. 이주여성지원센터 가 보니

[서울신문] # 2013년부터 한국에서 마사지사로 일한 태국인 제시카(36·여·가명)는 단골이던 한국인 남성과 만났다. 임신 사실을 알리자 그는 연락을 끊었다. 지난해 7월 홀로 태훈(가명)이를 낳았지만 아기는 생후 20일 만에 요도협착증을 앓았다.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왔다가 아픈 아기를 홀로 키울 상황에 놓인 제시카는 눈앞이 깜깜했다.

# 케냐에서 영어 교사를 하던 켈리(40·여·가명)는 남편이 정치범으로 수용되자 임신한 채 한국에 왔다. 한국인 친구의 도움으로 난민 신청을 한 뒤 법무부 허가를 기다리며 인천 출입국외국인지원센터(난민센터)에서 지냈다. 하지만 그곳은 아기를 키울 환경이 못 됐다. 켈리는 너무 힘들어 지난해 1월 태어난 지영(가명)이를 버릴 생각까지 했다.

제시카와 켈리는 지난 1월 문을 연 서울 구로구 이주여성지원센터에서 지내고 있다. 이주민 지원단체인 사단법인 지구촌사랑나눔이 원치 않는 임신을 하거나 아기를 키울 수 없게 된 이주여성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이다.

25일 오후 이주여성지원센터는 아기 울음소리로 가득했다. 제시카와 켈리 등 어머니 3명과 그들의 자녀 3명, 버림받은 아기 3명이 함께 지내고 있었다. 한 아이는 베트남 여성이 보라매병원에서 출산한 뒤 아기와 함께 센터로 들어왔다가 이틀 만에 "빚이 많아 돈을 벌어야 한다"며 사라져 홀로 남겨졌다. 관악구의 한 교회에서 운영하는 '베이비박스'(아기를 기를 수 없는 부모가 잠시 아기를 맡길 수 있도록 고안된 시설)에서 발견된 영은(가명)이는 빠른 노래가 라디오나 TV에서 나오면 엉덩이를 들썩거려 센터 직원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김은숙 이주여성지원센터 이사장은 "버려진 아이들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구김살 없이 밝고 예쁘다"며 "지금이라도 아이를 두고 간 어머니들이 돌아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영이는 맏언니답게 낯선 사람이 들어와도 낯가림 없이 어울렸다. 지난달 태어난 막내를 위해 모빌을 돌리며 까르르 웃기도 했다. 켈리는 지영이의 재롱에 활짝 웃다가도 케냐에 두고 온 15살짜리 큰딸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난다고 했다. 그는 "어서 돈을 벌어 내년에는 한국으로 데려오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어머니들은 3월 중순부터 금천구 가산디지털단지의 한 공장에서 어린이 옷 만드는 일을 배운다. 오전에는 자식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오후에 직업교육을 위해 센터를 나선다. 매일 이 시간이면 어머니와 떨어지기 싫은 아기들이 한바탕 소동을 벌인다. 울음을 그치지 않는 태훈이를 힘겹게 떼어 놓은 제시카는 "힘든 시간도 태훈이가 있어서 견딜 수 있었다"며 "얼른 교육을 끝내고 센터에 일감을 가지고 와서 태훈이를 돌보며 일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이사장은 "부모가 불법체류자이거나 한국인 아빠와 연락이 두절되면 아기들은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해 정부 지원도 못 받는다"며 "베이비박스 등에 버려진 아기도 있는데, 한 아기는 버려졌을 당시 경찰관이 데리고 갔던 기억 탓인지 회색 옷을 입은 남성이 센터로 들어오면 소리를 지른다"고 말했다. 이어 "버려지는 생명이 없도록 센터를 만들었고 나중에는 어머니들이 자립해서 아기와 행복하게 살게끔 돕는 게 목적"이라고 밝혔다.

글 사진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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