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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에 뿔난 학부모들, 솥 내걸고 "밥 직접 해 먹인다"

입력 2015. 04. 01. 15:10 수정 2015. 04. 08.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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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진주 지수초등학교 학부모회, 학교 뒷마당에서 닭야채죽 급식

고 이병철 삼성·구인회 LG·허정구 GS 회장 등 졸업한 학교

학부모들 "부모 재산으로 아이들 급식 차별하는 것은 잘못"

"야! 진짜 맛있겠다."

"우리 아들! 많이 있으니까 먹고 더 먹어."

"예. 감사히 먹겠습니다."

"오냐!"

'경남발 무상급식 중단 사태' 첫날인 1일 경남 진주시 지수초등학교 학생들은 학교 뒷마당의 천막에서 엄마, 아빠가 직접 끓여준 닭야채죽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지수초등학교 학부모회가 무상급식 중단에 항의하기 위해 1일과 2일 이틀 동안 직접 음식을 만들어 학생들의 점심식사를 제공하기로 지난달 31일 학부모회 총회에서 결정했기 때문이다. 학부모들은 직접 밥 해먹이기, 도시락 싸주기, 집에 와서 밥먹기 등 무상급식 중단에 항의하는 뜻을 나타내기 위한 여러 방안을 논의하다 직접 점심식사를 해먹이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학부모 10여명은 1일 아침 9시부터 학교 뒷마당에 큰솥 3개를 내걸고 아이들에게 먹일 음식을 정성껏 준비했다.

지수초등학교는 1921년 개교해 삼성 이병철, 엘지 구인회, 지에스 허정구 회장 등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의 창업주들을 배출한 학교이다. 하지만 지금은 전교생 49명에 불과한 농촌의 작은 학교이다. 한때 폐교 위기에 몰리기도 했으나, 주민들과 졸업생들의 노력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4학년과 5학년 아들을 둔 이미숙(45) 학부모회장은 "공부도 중요하지만 애들에겐 먹는 것이 더 중요하다. 부모 재산으로 아이들 급식까지 차별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무상급식 중단에 화가 난 엄마들이 우리 뜻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아이들에게 밥 해먹이는 것뿐이라고 생각해 이 방법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1일 점심식사 메뉴는 닭야채죽이었다. 닭공장에 근무하는 한 학부모가 생닭 40마리를 준비했다. 나머지 모든 음식 재료도 학부모들이 각자 집에서 준비했다. 밥상 10개도 여성농민회에서 가져왔다. 학교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장소만 제공받기로 했기 때문이다.

2일엔 짜장밥을 준비할 계획인데, 기본재료는 중국음식점을 하는 학부모가 준비하고, 다른 음식재료는 나머지 학부모들이 나눠 준비하기로 했다.

이날 학교 뒷마당에서 닭야채죽을 먹은 학생은 지수초등학교 재학생 49명과 병설 유치원생 5명, 인근 지수중학교 학생 25명 등 79명이었다. 지수중학교는 자체 급식시설을 갖추고 있지 않아, 평소에도 지수초등학교 급식실에서 만든 음식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1학년, 3학년, 4학년 등 세명의 자녀를 둔 이현한(41)씨는 "이 학교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같은 마을에서 함께 자라기 때문에 말하지 않아도 누가 급식비를 냈고 누가 급식비를 내지 않았는지 자연히 알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이들은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른들의 착각이다. 아이들에게 돈 문제만큼은 벌써부터 가르치고 싶지 않다. 오늘도 우리 아이들은 부모가 학교에 와서 밥을 해준 재미있는 날이었다고 좋은 추억만 남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맞벌이하는 동생 부부를 대신해 조카 밥을 해주러 왔다는 제미애(51)씨는 "이웃집 아이가 '돈이 없더라도 급식비는 그냥 내줘요. 대신 집에 와서 저녁밥을 먹지 않을게요'라고 엄마에게 말했다더라. 아이들은 이미 마음에 상처를 입고 있다. 순수하게 아이들 밥그릇을 지켜주려는 부모에게 종북좌파라고 경남도가 말했다고 하니 어이가 없다. 어떻게 그런 발상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무상급식을 중단시켜 사회 혼란을 일으키는 홍준표 경남지사가 종북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유치원생과 4학년, 6학년 등 세 자녀를 둔 소희주(43)씨는 "지수초등학교는 농촌 작은 학교라 1인당 하루 급식비가 3080원으로 도시 학교보다 훨씬 비싸다. 우윳값까지 합하면 한달에 1인당 7만원이 넘는다. 세 아이 급식비로 한달에 20만원은 솔직히 너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학부모회장 이씨는 "대부분 부모들이 맞벌이를 하거나 농사를 짓기 때문에 계속 이렇게 할 수는 없다. 이왕 급식비를 낼 것이면 학교발전기금으로 내거나, 지역 출향인사들의 후원금을 모으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내일 저녁 학부모들이 다시 모여서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호근 지수초등학교 교장은 "학부모들이 결정한 사안이라 '안전하고 위생적인 급식을 해달라'고 당부했을뿐 학부모회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교육감과 도지사가 만나 하루 빨리 무상급식 중단 사태가 원만히 해결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진주/최상원 기자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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