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히 입대한 아들이 유희왕 놀이만.. 피눈물이"

2015. 4. 29.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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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재보선 투표소 앞 1인시위 벌이는 가혹행위 피해자 아버지 정대근씨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

▲ 저는 정 상병의 아버지입니다

29일 오전 재보궐 선거가 치러지는 서울 관악구 삼성동 주민센터 앞에서 군 가혹행위 피해자 정아무개 상병의 아버지 정대근씨가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 김도균

"저는 공군 성추행, 폭행, 가혹행위 당한 정 상병의 아버지입니다. 저의 아들은 한 달에 15만 9000원 받는 국가의 노예였습니다."

29일 오전 재보궐 선거 투표소가 설치된 서울시 관악구 삼성동 주민센터 앞,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1인시위를 벌이고 있는 사람은 공군 제1전투비행단 소속 정아무개(20) 상병의 아버지 정대근(54)씨다.

정 상병은 지난해 10월부터 올 1월까지 부대 내 동기생활관에서 입대 동기들로부터 성추행과 상습폭행을 당하다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고 서울시내 한 대학병원 정신과병동에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관련기사 : 군인권센터 "공군, 폭행피해 병사에 합의 강요").

가해병사들은 주먹과 발로 정 상병을 때리거나 강제로 입을 벌려 콜라 1.5리터를 들이붓는가 하면 인후통 치료제를 억지로 삼키게 하는 등의 가혹행위를 자행했다. 폭행을 주도했던 병사 1명은 상습폭행과 군인 등 강제추행, 위력행사 가혹행위, 모욕 등의 혐의로 군 검찰에 구속되어 징역 3년을 구형받고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재판에 넘겨지지 않은 또 다른 2명은 징계절차를 밟고 있다.

"작년 4월 입대할 때만 해도 멀쩡했던 아이가 바보가 되어서 돌아왔습니다. 초등학생처럼 하루종일 유희왕 카드놀이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걸 보면 피눈물이 납니다."

주치의가 발급한 진단서에 따르면 정 상병의 상태는 심각한 상태다. 먹는 것을 참지 못하고 식사 조절을 하지 못하는 탓에 입원 20여 일 만에 체중이 6㎏이나 늘어났다. 군복을 입은 군인만 보면 소스라치게 놀라는 탓에 병실 밖으로 나가는 것도 꺼린다.

정씨는 아들에 대한 폭행이 군 검찰의 공소장에 나와 있는 지난해 10월보다 훨씬 더 일찍 시작되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7월부터 정 상병에게 이상증세가 나타났다는 것.

"작년 7월 휴가를 나왔을 때 이미 아이가 좀 이상했어요. 길을 못 찾고 헤매거나, 자기보다 7살이나 어린 중1 동생하고는 장난감을 놓고 싸우기도 했습니다. 정말 부대 안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면 애가 왜 그렇게 변했을까요?"

"관물대에 억지로 몸 구겨넣어... 모멸감에 죽고 싶었다더라"

정씨는 정 상병이 자신을 폭행했던 가해자들이 입대 동기들이었다는 점에서 더 상처를 입었다고 말했다.

"가해자들은 좁은 관물대 속에 아이의 몸을 억지로 구겨 넣고 폭행하면서, 후임병들까지 불러다가 구경을 시켰답니다. '너희들도 말을 듣지 않으면 이렇게 된다'고 하면서. 폭행도 폭행이지만 후임병들이 낄낄대며 웃는 것을 보면서 모멸감에 죽고 싶었다고 하더군요."

아들이 당한 폭행은 아버지의 가슴에도 평생 아물지 않는 상처를 남겼다. 정씨는 생업도 포기하고 지난 4월 16일부터 정 상병이 근무했던 광주의 제1전투비행단, 국방부, 국회 앞에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면서 1인시위를 벌였다.

지난 주말부터는 4.29 재보궐 선거가 치러지는 관악을 지역을 찾아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제 아들 얘기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온 국민이 같이 안타까워하고 마음 아파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300명이나 되는 국회의원들 중 누구 하나 관심을 보인 사람이 없어요. 이런 정치는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왜 피해자가 이렇게 거리로 나와 목소리를 높이게 만드는 겁니까?"

여야를 막론하고 피켓을 든 정씨가 다가가면 정치인들은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거나 외면하기 일쑤였다. 지난 25일에는 경찰이 선거법 위반이라며 연행을 시도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현 정부를 비판했다고 선거법 위반이라면서 끌고 가려고 합디다. 지켜보고 있던 시민들이 '오죽했으면 아버지가 나왔겠느냐'고 내 편을 들어줘서 연행되지는 않았지요. '아버님, 힘내세요, 화이팅' 하고 격려하는 경찰관도 있었습니다."

정씨가 시위를 벌이는 동안 부인이 매일 병원을 찾아 아들을 돌본다. 초등학생 수준으로 퇴행한 정 상병의 증세가 언제쯤 나아질지 기약하기는 어렵다.

"이제 20살짜리 애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들을 생각하면 정말 막막해요. 올해 제 나이가 54살인데,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애를 돌봐 줄 수 있겠습니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하루하루가 너무 고통스러워요."

빗속에서 정씨는 끝내 목이 메었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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