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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 진상규명 특별법 발의 그후 1년.. '1987년의 세월호' 국회 문턱에서 다시 침몰하나

박은하·김원진 기자 입력 2015. 05. 08. 21:48 수정 2015. 05. 08.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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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맞아서 생긴 흉터예요. 복지원에서 나온 뒤로 머리는 절대 밀지 않았는데…." 지난 6일 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 6번출구, 1984년 누나와 함께 부랑인으로 지목돼 형제복지원에 끌려갔다 '살아남은 아이' 한종선씨(40)가 시민들의 서명을 받으며 1인 시위를 하고 있었다. 천막도 없이 이불 한장에 의지한 채 벌써 아흐레째다. 일주일 전 삭발한 머리는 흉터 자국으로 우둘투둘했다. 복지원 시절 맞아서 피가 난 자리를 이가 파먹으면서 생긴 흉터다. 구타와 비위생적 환경이 만들어낸 흉터는 성인이 되어서도 없어지지 않았다. 머리가 커지면서 기괴한 모양으로 뒤틀리며 부위가 넓어졌다. 30년이 흘러도 고스란히 남아 있는 '형제복지원의 흔적'이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한종선씨(40)가 6일 오후 국회 앞에서 형제복지원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통과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11명은 지난달 28일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의 조속 처리를 요구하며 국회 정문 앞에서 삭발식을 열었다. 2012년 여름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국회 앞 1인 시위를 벌였던 한씨는 3년 만에 다시 그 자리에 섰다. 지난해 발의된 특별법이 아직까지 국회 논의 첫 단계인 안전행정위 법안심사소위에서조차 다뤄지지 않고 미뤄진 탓이다.

2014년 형제복지원 사건은 여론의 큰 관심을 모았다. 3월 SBS 시사고발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이 사건을 다루면서 파장이 커졌다. 형제복지원을 운영했던 박인근 원장이 복지시설과 헬스장·온천·빌딩 임대업 등을 운영하며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모습이 전파를 타면서 공분을 일으켰다. 그러자 국회의원 55명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공동 발의했다. 형제복지원이 폐쇄된 지 27년 만의 일이다. 금세라도 검찰 수사가 시작돼 책임자가 가려지고 진상규명이 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에게 지난 1년은 '복지원을 나온 이후 가장 고통스러웠던 해'였다. 방송을 보고 "나도 형제복지원에 있었다"며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피해자들이 나타났다. 한종선씨가 2012년 <살아남은 아이>를 출간한 이후 인권·복지단체들과 함께 알음알음 알게 된 피해생존자들이 며칠 만에 30여명에서 200여명으로 늘었다. 피해자들의 모임이 만들어졌다.

납치·감금·강제노역·구타·성폭행 등 수십년간 숨겨왔던 기억을 다시 토해내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1984~1987년 복지원에서 살았던 이향직씨(44)는 국회에 제출한 탄원서에서 "아내와 함께 최근 2년간 매주 토요일마다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다. 내가 형제복지원 출신이란 것을 아내가 알게 된 것도 2년 전"이라며 "형제복지원 출신임을 알게 된 사람들은 내가 작은 실수라도 하면 말끝마다 '거지 같은 새끼. 그러니까 형제원에 끌려 갔지'라고 했다. 경찰관을 꿈꾸던 딸은 아빠가 경찰관 공포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꿈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동생과 함께 형제복지원에 있었던 최승우씨(47)는 삭발식 날 "동생은 6년 전 트라우마 끝에 자살했다. 동생이 죽고 나자 자식을 못 지켰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던 아버지는 지금 중환자실에서 돌아가시기 직전"이라고 울먹였다.

진상규명 작업이 지지부진한 것도 피해자들의 고통을 키웠다. 세월호 참사가 터지면서 관심이 줄어들자 국회는 특별법을 안행위가 아닌 보건복지위로 넘겼다. 여준민 형제복지원 대책위 사무국장은 "형제복지원 사건은 부랑인을 강제로 잡아다 시설에 넣을 수 있도록 한 박정희 정권의 내무부 훈령 제410조에 의한 것"이라면서 "국가 책임을 은폐하고 박인근 원장의 개인비리로 축소시키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법은 지난해 7월 재발의돼 다시 안행위에 배정됐다.

특별법은 아무 성과도 없이 폐기될 우려가 높다. 2월 국회에서 논의한다던 법안은 4월 국회로 넘겨지더니 "관계 부처 간 협의가 되지 않았다"며 다시 6월 회기로 미뤄졌다. 공무원연금법 개정 등 대형 이슈에 묻혀 6월 회기에서도 다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19대 국회 임기종료로 법안이 폐기되면 내년 총선 이후 다시 발의한 뒤 처음부터 입법과정을 거쳐야 한다. 피해생존자 모임 공동대표였던 한종선씨는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대상포진·요로결석·장염 등 스트레스성 질환으로 입·퇴원을 수차례 반복했다. 그는 "1987년에도 검찰 수사로 큰 관심을 받았지만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터지면서 묻혔는데, 꼭 그때를 보는 기분이라 더욱 힘들었다"고 말했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이향직씨(44)가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간사 새누리당 조원진 의원에게 보낸 자필 편지. 형제복지원 시절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고통스러웠던 경험과 특별법 처리 촉구를 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은 세월호특별법 처리 과정을 보면서 동병상련과 불안을 동시에 느낀다고 했다. 세월호 문제를 진상규명이 아닌 보상문제로 몰아가려는 움직임이 형제복지원 사건에도 적용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이향직씨는 "피해자들이 원하는 것은 부귀영화가 아니라 명예회복이고 사람답게 사는 것이다. 피해생존자 대부분은 (1987년 수사 당시) 어린 나이로 세상에 던져져 재판이 있는 줄도 몰랐고, 또다시 어딘가로 끌려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재판에 참여할 엄두도 못냈다"며 "인권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특별법이 하루빨리 제정돼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꿈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형제복지원 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조영선 변호사는 "형제복지원은 1987년의 세월호다. 육지 속의 세월호다. 형제복지원 사건 하나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사회에서 세월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5·18 고문생존자인 강용주 광주트라우마센터장은 "국가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는 진상을 규명한 후 국가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해야만 해소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삭발식 현장에선 '끄윽' '흑' '아아아악' 하는 비명이 터져나왔다. 삭발에 참여한 피해생존자들이 식은땀을 흘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형님, 누님들, 진상규명하겠다며 이렇게 다시 머리를 밀게 해 죄송합니다." 한종선씨가 고개를 떨구며 절규했다. 이들은 형제복지원에 입소할 때 머리를 밀었던 악몽을 떠올리는 듯했다. 박순이씨(44)는 "내 형제복지원 수형번호는 83-3038이다. 내가 왜 수형번호를 갖고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하루빨리 후유증을 극복하고 딸들에게 떳떳한 엄마로 나서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1년간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2년 한종선씨가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할 때만 해도 혼자였다. 하지만 지금 한씨 옆에는 피해생존자들이 있다. 대부분 생업 때문에 하루종일 부스를 지킬 순 없지만 교대로 돌아가며 서명을 받고 함께 밤을 지새운다. 시민들의 관심도 호의적이다. 6일 국회를 방문한 탈북자 단체 회원들은 "요덕수용소가 아니라 남한에서 벌어진 일이라니 믿겨지지 않는다"며 서명에 동참했다. 부산이 고향이라는 윤석환씨(41)는 "형제복지원 사건이 그 옛날의 형제복지원 사건이 맞느냐? 아직도 해결이 안 됐다니 부끄럽다"고 말했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은 최근 "특별법을 꼭 처리해줄 것을 새누리당 조원진 의원님(안행위 간사)께 간곡히 부탁한다. 국민여러분도 도와달라"며 국회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한종선씨는 국회에서 형제복지원 특별법이 처리되는 것을 볼 때까지 1인 시위를 계속할 생각이다. "형제복지원에 끌려갈 때 아홉살이던 꼬마가 마흔이 될 때까지 진실을 알려달라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국가가 답할 때입니다."

내무부 훈령 제410조에 따라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장애인, 고아 등을 부산의 형제복지원에 불법 감금하고 강제노역시킨 사건. 1987년 3월 탈출을 시도한 원생 1명이 직원의 구타로 사망하고, 35명이 집단 탈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실제로는 납치·인신매매 등으로 부랑인이 아닌 사람도 수용됐으며 강제노역은 물론 성폭행·학대 등이 자행됐다. 경찰·구청 등을 통해 강제입소된 사람도 3975명에 달했고 확인된 사망자만 551명이다.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은 7번의 재판 끝에 1989년 3월 징역 2년6월의 형을 받았다. 살인·폭행·감금 등에 대해서는 기소도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해 7월 형제복지원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발의됐다.

<박은하·김원진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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