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동아, 친일보다 더 큰 범죄 저지르고 있다"

2015. 5. 13.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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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20주년 인터뷰]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과 싸워야 하는 시대"

[미디어오늘 김도연 기자]

역사학자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지난 대선 당시 자타공인 '정수장학회 저격수'였다. 그는 2012년 정수장학회 사회 환원 논의에 불을 지피는 데 동분서주했고 '장물바구니'라는 책까지 출간했다.

한 교수는 여느 역사학자보다 현재에 반응한다. 한 교수는 지식인으로서 사회 운동에 나서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현재 해고와 손배 가압류로 고통받는 노동자를 대상으로 생활지원금을 전달하는 시민단체 '손잡고'의 운영위원이기도 하다. 미디어오늘이 창간 20주년을 맞아 지난 3일 한 교수를 서울 대학로에서 만났다. 이날은 해고·손배소를 주제로 한 연극 <노란봉투> 상영 날이었다.

미디어오늘이 창간 20주년을 맞았다. 미디어오늘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시간이 흐르면서 미디어오늘 비판이 '먹히는' 정도가 떨어지고 있는 것 같다.(웃음) 비판을 받는 쪽에서 미디어오늘을 안 본다고 해야 할까. 비판에 괘념치 않는 것이다. 이것은 언론으로서 대단히 치명적인 약점이자 한국 언론의 비극이다. 동종 업계 비판에 눈감아버리는 언론이 주류 언론으로서 한국 사회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그만큼 미디어오늘이 해야 할 일이 많다."

▲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사진=최창호 Way PD.

현 정권 어떻게 평가하나."이렇게까지 못할 줄 몰랐다. 보통 박정희를 무능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아버지 능력이 자식에게 그대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불초자(不肖子)'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초자는 닮을 초다. 낱말만 보면 박근혜를 평가하는 데 이보다 적확한 말은 없을 거다.(웃음) 젊었을 때 박정희, 전두환 반대 투쟁을 했지만 솔직히 말해 집권이 계속된다고 나라가 망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지금은 나라가 한없이 심해로 고꾸라지고 있지 않나. 이명박은 나라를 들어먹었고 박근혜는 그 나라를 침몰시키고 있다."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해방 직후 동아일보는 "소련은 신탁통치를 주장하고 미국은 즉시 독립을 주장한다"고 했는데 이 보도가 역사를 바꿔놓은 오보였다는 비판이 있다. 반탁 논쟁이 친일파에게 명분과 권력을 줬고 분단 상황을 고착화시켰다는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대체로 동의한다. 해방 정국 당시 좌파진영이 대중에게 신뢰받고 점수를 얻었던 까닭은 민족적 입장을 견지했다는 데 있다. 물론, 동아일보 오보도 문제였지만 진보 진영도 잘못 대응했다. 신탁통치는 조선 임시정부를 세우는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였다. 그렇게 배격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모스크바 3상 회의는 해방 후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미국과 소련이 합의를 봤던 사항이다."

▲ 1945년 12월27일 동아일보 1면

대중이 잘 모르지만, 그 시기 논란이 됐던 기사를 소개한다면."조소앙, 박헌영과 관련한 동아일보 1946년 1월 16일자 기사다. 동아일보는 조소앙이 '한국은 한인의 것'이라고 했고 박헌영은 '조선을 소련속국으로'라고 했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살펴보면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두 인물의 기사를 나란히 배치하는 등 의도적인 편집이 눈에 띈다. 이 기사로 인해 박헌영에 대한 전국적인 배격 운동이 벌어지게 되면서 사회주의 진영이 대중으로부터 받았던 지지가 완전히 무너져 내리게 된다. 박헌영이 뉴욕타임스를 포함한 외국인 기자단에게 말했다는 것인데, 정작 이 기사는 뉴욕타임스에 실린 적이 없다.(웃음) 당시 동아일보는 지금으로 치면 우익을 대변하는 조선일보 역할을 한 셈이다. 잘못된 구도 논란으로 시간을 허비했다. 미국과 소련이 다시 만났을 때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냉전이 진행되고 있을 때고 국내에서는 좌우 대립이 훨씬 심해졌다. 이후 미국이 한국 문제를 유엔으로 이관하면서 분단정권이 수립됐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친일반민족행위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미디어오늘이나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안티 조선운동을 주도해온 이들과 견해가 조금 다르다. 이들 언론사가 '친일'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고민해야 하는 점은 당시 대중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였냐 하는 것이다. 그때 사람들도 조선·동아의 친일은 잘못됐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잘못의 경중을 따져야 한다. 정말 죽어야 할 만큼 큰 죄인가, 사과를 받고 바로 잡아야 할 문제이냐. 이에 대한 시각 차이가 있다."

여전히 친일파 등 단죄가 내려지지 않아 현재에 이르렀다는 진단이 있다."우리는 친일파가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해방 직후 상황을 보면, 친일파가 가졌던 재주랄까 교육 역량을 새로운 국가 건설을 위해 활용해야 할 부분도 있었다. 어떤 독립운동가도 조선과 동아에 대해 '너희 그때 친일했으니 처벌 받아야 돼'라는 식으로 분위기를 만들지 않았다. 대중도 피해자로 봐줬다. 일제가 폐간시킬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천황 사진도 싣고 한 것 아니냐는 거다. 실제 일제 말기 폐간 당하지 않았나. 반성과 사죄를 통해 제대로 서길 바랐던 거다. '죽을 죄'라고 본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사진=최창호 Way PD.

죽을 죄가 아니라면 오늘날 조선·동아의 문제는 무엇인가."현재 영향력을 위해 그들의 과거를 정당화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지금 조선·동아가 하고 있는 행위가 일제 강점기, 일왕 사진을 전면에 거는 것보다 훨씬 더 사악하다. 과거 사례를 끌어다가 현재의 조선·동아를 비판하는 것보다 지금 민족공동체 일원으로서 최소한 양심과 책임을 망각한 부분, 민중의 역사를 짓밟고 스스로 권력이 된 현실을 비판해야 한다."

최근 중앙일보가 연재하고 있는 김종필(JP) 회고록을 어떻게 보나."재미있게 보고 있다.(웃음) 회고록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 그래서 회고록은 사료로 이용할 수도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JP 회고록에서는 재미있는 증언들이 나온다. 박정희 좌익 경력 때문에 자기가 반공 국시를 넣었다는데 이 대목은 명확한 사실 아닌가. 당연히 짐작했지만 그의 입으로 직접 들으니까 더 재미있다."

당사자가 말하다보니 감춰진 사실들이 있지 않나."자신의 좌익 경력은 꺼내지 않는다. 징병제도 없던 시절인데 서울대 다니던 JP가 무엇 때문에 사병으로 군에 입대했을까. 좌익 활동을 하다가 경찰 추적을 받을 때 가장 안전한 탈출구가 군에 입대하는 것이었다. 고(故) 김근태가 2001년 JP를 만나 '학생운동 선후배' 관계를 강조했다. 이를 노무현이 비판하기도 했는데, '선배'라는 것이 단순히 서울대를 나와서 한 말이 아니라 학생 운동의 선배 격으로 칭한 말이라고 본다."

JP 좌익 전력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미국은 박정희는 용인했지만 김종필은 용인하지 않았다.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에 따르면, 박정희는 좌익에서 우익으로 완전히 전향을 한 인물이었다는 것이고, JP는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박정희는 체포돼 모든 게 드러났었지만(박정희는 소령 시절 좌익 혐의로 체포돼 1949년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구형받고 무기징역 선고받은 뒤 감형과 함께 강제 예편된 바 있다.) JP에 대해 미국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입장이었던 거다. 미국 입장에서 볼 때 JP는 레드보이였다. 회고록에 이러한 고백은 없지만."

조중동은 마음만 먹으면 자기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역사를 규정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한국 수구세력은 모든 걸 다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장악하지 못한 영역이 역사다. 그 시절을 겪었던 사람들이 아직 살아있다. 또 한국에서 8~90년대 현대사 공부한 사람은 대부분 진보로 분류된다. 역사가는 있었던 사실이 없었다고, 없었던 사실을 있었다고 말하지 못한다. 진보·보수를 떠나 충실하게 역사를 연구하면 '종북좌파'가 되는 것이다.(웃음)"

최근 서북청년단이 재건되는 등 촌극이 일어나기도 했다."한국 우익은 백범 김구를 죽인 안두희를 의사로 모신다. 또 안두희 동생 안세희는 80년대 군사정권 시절 연세대 총장을 맡았다. 이런 식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한국사회를 운영하고 조중동을 통해서 왜곡된 역사관을 전파하고 있다. 콘텐츠나 팩트만 봐도 그들은 진보에 상대가 안 된다. 다만 젊은이들은 역사가 진보한다는 사실에 대한 믿음이 약하다. 현실이 힘들기 때문이겠지. 그들에게 '길게 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50년 전과 비교하면 한국 사회는 분명 진보했다. 우리가 이미 서 있는 땅은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후퇴한 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박근혜 정부가 이상한 교과서 하나 만든다고 역사가 바뀌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아무리 독재정권이 강고해도 87년 6월 항쟁 한 번으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우리 몸뚱이로 만드는 역사가 가장 중요하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사진=최창호 Way PD.

여전히 조중동 보수 언론의 힘은 막강하다."힘의 균형은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문제는 조중동 내부에서 양심을 가진 기자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90년대에는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한다'는 언론인들이 미력하게나마 존재했다. 지금 조선·동아 내부에 엉터리 기사에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래서 비판이 안 먹히는 거다."

1991년 김중배 선언은 자본에 포섭될 언론에 대한 경고였다. 그의 말처럼 언론인이 언론자본 권력에 포섭 당한 모습이다. 기레기라는 말까지 등장했다."김중배 선생이 맨 처음 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보다 앞서 언론인 최석채가 꺼낸 적이 있다. 1968년 11월 '신동아 필화사건'이 일어났는데 이 사건이 정권의 언론탄압에 언론자본이 굴복하기 시작한 계기가 됐다. 동아일보 자매지 신동아가 정부의 차관도입 내막을 파헤쳤는데 이 기사가 문제가 됐고 기자 2명이 구속됐다. 동아는 이 사건을 수습하면서 구속된 기자 2명을 석방하는 대신 천관우 주필 등 간부 3명을 퇴직시켰다. 중앙일간지는 미리 약속을 한 것처럼 이 소식을 묵살했다. 당시 편집인협회 회장이었던 최석채는 기자협회보에 '한국의 언론은 우리가 의식하고 있는 이상으로 경영주의 손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다'고 했다. 그러던 그도 1972년 MBC·경향신문 회장을 지냈고 5·16장학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언론이 시장논리에 좌우됐던 것은 오래된 역사다. 기레기의 역사는 짧은 게 아니다.(웃음)"

위기의 시대 어떻게 해야 할까."앞서 말했지만 우리는 조중동 등 자본에 포섭된 언론에 대해 '인간이니까 부끄러움을 알겠구나'하고 싸운다. 물론 80년대 우리가 제도 언론을 비판할 때 그런 얘기가 먹혔다. 지금은 양쪽 진영의 대화가 단절됐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과 싸워야 하는 시대다. 진보 진영은 도덕적 관점에서 싸우고 비판한다. 친일 논쟁만으로 싸우는 것은 무용하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20년 동안 잘 싸웠지만, 한편으로 왜 약발이 떨어졌겠는가 성찰이 필요하다."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듣고 싶다."교류가 되는 젊은 기자들끼리 토론하고 상호 비판해야 한다.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 출신 지망생들이 1년에 10여 명씩 언론사에 입사한다던데, 그들이 공감하는 저널리즘이라는 게 있을 것 아닌가. 자주 만나 그와 관련해 논의할 수 있지 않나. 미디어오늘에서도 보다 다양한 언론사 기자의 글이 올라와야 한다. 아무리 망가졌어도 세월호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조중동 기자들이 있지 않겠나. 미디어오늘이 새로운 장을 만드는 데 힘을 써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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