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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쳐나는 북한 오보, 죽은 현영철은 다시 살아날까

입력 2015. 05. 15. 16:56 수정 2015. 05. 15.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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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영철 인민무력부장 처형됐다는데, 기록영화에는 등장… "국정원이 특종 경쟁하나"

[미디어오늘 조윤호 기자]

북한 인민군 서열 2위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은 죽은 걸까, 아니면 살아있는 걸까. 아니면 숙청 당했는데 죽지는 않은 걸까. 국정원 발 '현영철 처형' 첩보, 그리고 이와 반대되는 근거들로 언론이 혼란에 빠졌다.

국정원은 지난 13일 국회 정보위원회 비공개 현안보고에서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처형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국정원에 따르면 현 부장은 지난달 30일 평양 순안구역 소재 강건 군관학교에서 수백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사총으로 공개 처형됐다. 국정원은 처형 이유가 지난달 24~25일 열린 군 일꾼대회에서 졸거나 김정은 제1비서 지시를 불이행하는 등 '불경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언론은 이러한 사실을 대대적으로 받아썼다. 14일자 아침종합신문 1면은 현영철의 처형 사실과 김정은의 공포정치로 도배됐다. 언론은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를 '졸았다는 이유로 재판도 없이 측근까지 처형시킨 무자비한 독재자'라고 비난했다.

▲ 현영철 처형 관련 언론보도.

그러나 국정원의 보고 다음날인 14일 현 부장의 모습이 북한 모습에 등장했다. 조선중앙TV가 2013년 기록영화를 재방송하면서 현 부장이 김정은 제1비서를 수행하는 모습을 내보냈다. 숙청된 인물을 기록에서 지우는 것이 북한의 관례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례적인 일이다. 국정원이 처형 날짜라고 밝힌 4월 30일 이후 5일~11일 방영된 조선중앙TV에도 현 부장의 모습이 등장했다.

만약 현 부장이 처형된 것이 아니라면 국정원의 '첩보'를 받아쓴 언론은 또 다시 무더기 오보를 일으키는 셈이 된다. 언론은 이 날 '졸음 못 참았다 죽었다'는 식의 기사를 쏟아냈다. 그냥 소총이 아니라 고사총에 의해 처형됐다는 점에 주목해 '현영철 총살에 사용한 고사총은 무엇?'과 같은 식의 기사도 이어졌다.

한국 언론의 북한 관련 오보는 역사가 깊다. 대표적인 사례가 '김일성 사망' 오보다. 1986년 11월 16일 조선일보는 1면 4단 기사에서 "북한 김일성이 암살됐다는 소문이 15일 나돌아 동경외교가를 한동안 긴장시켰다"고 전했다. 북한군 일부가 김일성을 암살했다는 내용이다. 처음에는 '설'이었으나 나중에는 '김일성 피격 사망'이라는 단정적인 보도를 시작했다. 조선일보는 '주말의 동경 급전…본지 세계적 특종'이라는 자화자찬 보도까지 내보냈다.

'물먹은' 언론들은 휴간일인 11월 17일 호외를 발행했다. "열차에서 총을 맞았다" "폭탄에 당했다" "쿠데타가 발생했다"는 미확인 정보들이 지면을 채웠다. 그러나 다음날인 18일 언론은 민망해졌다. 김일성 주석이 멀쩡히 평양공항에서 몽고 주석을 맞이하는 모습이 TV 화면에 나왔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 < 오보이야기·5 김일성 피격사망 보도>)

▲ 지난 5월 11일 조선중앙TV가 방송한 기록영화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은동지께서 인민군대사업을 현지에서 지도 주체104(2015).3'의 한 장면.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기록영화에 그대로 등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선일보의 96년 2월 13일자 '성혜림 망명설'도 대표적인 오보다. 김정일의 본처로 알려진 성혜림이 서방으로 망명을 했다는 기사였으나, 이후 중앙일보는 성혜림이 러시아에서 북한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안기부장이 당일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중앙일보 보도가 맞다고 밝혔다.

94년 2월 15일 경향신문 1면 기사 <북한 이미 핵 실험>도 오보였다. "북한이 이미 핵 폭탄을 제조했으며 아프리카에서 실험까지 마쳤다"는 러시아 안보전략연구소 고문 블라디미르 쿠마초프의 발언을 전한 일본 지지통신과 프랑스의 AFP통신을 인용한 보도였다.

그러나 당사자인 쿠마초프는 근거를 묻는 중앙일보 기자의 물음에 "단지 러시아 언론과 일본 언론에 보도된 사실 등을 보고 개인적인 의견을 낸 것일 뿐"이라고 발뺌해 결국 이 보도도 오보로 남게 됐다.(관련 기사 : < 오보이야기·9 -'북한 핵실험'보도>

연합뉴스도 몇 차례 오보를 냈다. 2011년 5월 20일 연합뉴스는 <북 김정은, 투먼 통해 방중> 기사를 내보냈으나 김정은이 아니라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방문이었다. 연합뉴스는 2013년 4월 4일 <북, 개성공단 입주기업협에 '10일까지 전원 철수' 통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으나 오보였다. 북한이 개성공단 입주기업협회에 10일까지 통행계획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는데, 이것이 완전된 것이다. 청와대와 통일부가 사실이 아니라고 밝히자 연합뉴스는 <정부, "개성공단 전원철수 요구설은 와전">이라는 속보를 내보냈다.

이해할 수 없는 오보도 있다. 조선일보는 2012년 1월 17일 1면 기사에서 김정남(김정일의 첫째 아들)이 "천안함 피격이 북한의 필요로 이뤄진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보도했다. <도쿄신문>의 고미요지 편집위원이 김정남과 교환한 이메일을 모아서 낸 책 <아버지 김정일과 나>가 출처였다.

그러나 고미요지 편집위원은 서울신문 등과 인터뷰에서 "천안함 내용은 책에 없다"고 밝혔다. 이후 조선일보는 정정보도를 통해 책에는 그런 내용이 없으며 김정남 주변을 취재하다 알게 됐다고 해명했다. 당사자 확인도 없이 저지른 오보였다.

▲ 2012년 1월 17일자 조선일보 기사 갈무리. 제목에 '정정 내용 있음'이라는 말이 붙어 있다.

지난 2014년 9월 김정은 제1비서가 40일 간 잠적하자 온갖 추측성 보도가 쏟아졌다. 출처가 불분명한 평양 계엄령 선포설, 정신병설, 김여정의 대리통치설 등. 이미 사망한 조명록 전 군 총 정치국장이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설까지 돌았다. 장성택이 처형됐을 때도 온갖 추측 보도가 쏟아졌다. 김정은 제1비서의 부인 리설주와 염문설 때문에 처형당했다는 근거없는 루머까지 기사로 썼다.

안윤석 CBS 통일전문기자는 지난해 11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북한 소식은 복수확인이 안 돼 일부 탈북자, 기관들이 보도하는 걸 그대로 인용하면서 오보가 발생한다. 인터넷뉴스 속보팀들이 페이지뷰를 올리기 위해 막 받아쓴다"며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국정원이 오보를 양산하는 경우도 있다. 이병호 국정원장은 지난 4월 29일 국회에서 김정은 제1비서가 러시아의 2차 세계대전 전승절 행사에 참석할 가능성이 다분히 높다고 말했지만 바로 다음날 북한이 불참을 통보했다.

국정원 발 '현영철 처형' 보도를 확신하기 어려운 이유다. 국정원은 '고사총'으로 처형됐다고 밝혔으나 15일 북한전문매체 자유북한방송은 "처형은 자동소총(AK소총)으로 이루어졌다"는 북한군 내부소식통의 말을 보도했다. 한 통일부 출입기자는 "숙청은 됐는데, 죽었다는 것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으로 말 그대로 첩보"라고 전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 교수는 15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숙청된 리용호는 정치국 회의에서, 장성택은 특별재판에 회부되는 절차를 거쳤다. 그리고 기록영화에서도 삭제가 됐다"며 "그런데 현영철은 절차도 없고 기록영화에도 계속 등장한다. 국정원의 첩보만 있으므로 (처형에 대해) 맞다 틀렸다 이야기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양 교수는 "국정원은 특종경쟁에 뛰어드는 언론이 아니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국가 정보기관에게는 권위가 필요하다. 권위는 첩보가 아니라 정보에서 나온다. 정보를 국민에게 알리고 정책에 반영하도록 하는 것이 국정원의 업무"라며 "수많은 첩보들을 정보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단계에서 보고해야하는데 성급했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 네이버 인물정보에는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2015년 4월 30일 사망했다고 나와 있다. 네이버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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