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훈과 그들의 24년

이숙이 편집국장 2015. 5. 18.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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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 심정이 어떨까. 스물일곱 혈기 방장하던 시절에 갑자기 자살방조범이라는 누명을 쓴 채 3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오랜 재심 끝에 드디어 무죄 확정판결을 받은 강기훈씨(51) 얘기다. 무려 24년이 걸렸다. 그사이 그의 인생은 처참하게 망가졌다. 그에게는 '친구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죽음을 혁명에 이용했다'는 낙인이 찍혔고, 만기 출소 후에도 '유서는 왜 써줬느냐'라는 날선 물음에 끊임없이 직면해야 했다. 속이 문드러지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고통의 시간들. 그는 현재 간암과 싸우고 있다.

반면 그를 기소한 검사들은 승승장구했다. 당시 수사를 지휘한 강신욱 부장검사는 이후 대법관을 지냈고, 남기춘 검사는 울산지검장-서울서부지검장을 거쳐 변호사로 나섰다.

곽상도 검사는 박근혜 정부 초대 민정수석을 거쳐 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윤석만 검사는 특수부 부장검사, 한나라당 대전광역시당 위원장 등을 지냈다. 당시 검찰을 총지휘했던 법무부 장관이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다.

이번 '유서 대필 조작' 사건에 관여한 수사진 가운데 유독 박근혜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가 많다는 건 상징적이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 출신인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곽상도 전 민정수석은 더 말할 나위 없고 강신욱·남기춘 변호사는 박근혜 대선 캠프의 법률특보 단장과 클린소위 위원장을 맡은 바 있다.

이번 무죄 확정을 계기로 당시 정권이 왜 이런 무리수를 두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1991년 당시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우리 사회에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고 문민정부를 세우고자 하는 민주화의 열망이 넓게 퍼져가던 때였다. 노태우 정권과 수구 기득권 세력으로서는 어떻게든 이런 흐름을 저지할 필요가 있었고 실제로 유서 대필 사건이 알려지자 민주화운동 세력에 대한 시선은 싸늘해졌다.

따라서 '진실'이 확정된 이제라도 이런 대국민 사기극과 여론 반전극을 펼친 이들에 대한 엄정한 책임 묻기가 필요하다. 검찰의 짜맞추기 수사와 무리한 기소, 사법부의 허술한 판단으로 처참하게 망가진 인생이 있는데, 이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면 그 어찌 민주국가라 할 수 있을까.

공소시효 만료 등으로 법적인 책임을 묻기가 어렵다면 사회적·도덕적으로라도 책임을 묻는 과정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재판 결과에 따른 책임을 앞세운 후배 검사들이 무리한 수사를 지휘하는 선배 검사들에게 당당히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되면 아무 죄 없는 대학생을 물고문해 죽인 사건을 축소·은폐해놓고도 '윗사람의 지시를 따랐을 뿐'이라며 뻔뻔하게 대법관 자리에 오르는 무책임한 검사의 출현을 더 이상은 보지 않게 될 테니까. 이완구 전 총리가 검찰에 출두하며 한 '이 세상에 진실을 이기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은 이럴 때나 쓸 수 있는 것 아닐까.

이숙이 편집국장 / sook@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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