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와 조현오 두고, 휘어진 검찰의 '대나무'

구영식 입력 2015. 5. 18. 18:38 수정 2015. 5. 19.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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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본색] 너무 다른 검찰의 '이중잣대'

[오마이뉴스 구영식 기자]

'여의도본색'은 정치부 기자들이 쓰는 '取중眞담'으로 '새로운 정보'가 있는 기자 칼럼을 지향합니다. <편집자말>

[기사수정 : 19일 오후 2시 40분]

ⓒ 유성호
검찰의 CI(상징 이미지)에는 다섯 개의 대나무가 나란히 배치돼 있다. 가운데에는 칼을 형상화한 대나무가 서 있는데 이는 '정의'를 상징한다. 이것을 한가운데에 두고 왼쪽에는 '진실'과 '인권', 오른쪽에는 '공정'과 '청렴'을 상징하는 대나무가 '올곧게' 서 있다.

검찰의 CI가 문득 떠오른 것은 홍준표 경남지사의 불구속 기소 방침과 조현오 전 경찰청장에게 수천만 원을 건넸다는 부산지역 건설업자 구속영장 기각 소식을 들으면서다. 뚜렷하게 상반되는 검찰의 사건 대응은 올곧게 서 있어야 할 '공정'의 대나무가 심하게 구부러져 있지 않나 의심하게 만들었다.

[조현오 전 경찰청장]두 차례 구속영장 청구 기각

 조현오 전 경찰청장.
ⓒ 유성호
지난 5월 12일 '조현오 전 경찰청장 수뢰 의혹'이라는 제목의 기사들이 나왔다. 조현오 전 청장이 경찰청장 재임 시절 부산지역 한 건설업체 실소유주로부터 경찰 간부들 승진을 청탁받고 돈을 받았다는 것이다. '부산지검 특수부발' 기사였다.

<오마이뉴스>의 취재에 따르면, 사건은 부산지역 한 건설업체를 소유하고 있는 정아무개씨와 부산지역 조직폭력배 보스로 알려진 이아무개씨가 사업상 문제로 다투면서 시작됐다.

정씨와 이씨는 건설업체를 공동으로 운영해왔는데 사업상 문제로 틀어졌다. 서로 한차례 고소사건을 겪었던 이씨는 부산지역 경찰발전위원이었던 정씨를 공격하기 위해 대검에 조현오 전 청장과 관련한 내용을 찔렀다. 대검은 이씨의 제보를 부산지검에 내려보냈다.

이씨가 대검에 제보한 내용은 정씨의 회삿돈(20억 원) 횡령과 조현오 전 청장의 뇌물 수수였다. 조 전 청장이 경찰청장 재임 시절(2010년 8월~2012년 4월)에 정씨로부터 A씨, B씨, C씨 등 경찰 간부들의 승진을 청탁받으면서 수천만 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건을 맡은 부산지검 특수부는 정씨의 회삿돈 횡령보다는 조 전 총장의 뇌물수수에 더 주력했다. 그 과정에서 정씨와 검찰이 플리바게닝(plea-bargaining, 자백감형제도)을 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정씨가 조 전 청장의 뇌물공여를 진술하는 대가로 검찰이 20억 원에 이르는 회삿돈 횡령은 눈감아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플리바게닝은 아직 한국에 도입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수사과정에서 즐겨 사용하는 수법이다.

검찰은 지난 11일 정씨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런데 정씨의 구속영장에는 회삿돈 횡령 혐의는 온데간데 없고, 뇌물공여 혐의만 적시됐다. 조현오 전 청장을 옭아매기 위한 플리바게닝의 결과였다는 시선이 쏟아졌다. 하지만 법원은 구속영장 청구을 기각했다. 검찰은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된 지 이틀 뒤에 다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또다시 기각했다.

"정씨로부터 뇌물을 받은 것으로 지목된 사람에 대한 조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데다 피의자 진술 경위와 내용을 따져보면 금품을 줬다는 피의자 진술의 신빙성이 낮아 범죄혐의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

정씨로부터 수천만 원을 받았다는 조 전 청장도 조사하지 않았고, 정씨의 뇌물 공여 진술도 믿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검찰과 플리바게닝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던 정씨가 구속을 각오하고 두 차례에 걸친 구속 전 피의자 신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지 않았지만 법원은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두 번이나 기각했다. 두 차례의 구속영장 청구 기각으로 사건을 부산지검으로 내려보낸 대검은 발칵 뒤집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조 전 청장은 최근 주변 지인들에게 "정씨 등이 내게 왔다간 때는 2011년 3월인데 인사는 그보다 2~4개월 전인 2010년 11월~2011년 1월에 있었다"라며 "검찰은 인사청탁할 때 인사가 다 끝나고 난 뒤 몇 개월 지나서 하는가 보다"라고 검찰의 무리한 수사를 신랄하게 꼬집었다.

[홍준표 경남지사]측근들의 조직적 회유 정황까지 있었건만

▲ 웃음 띤 홍준표 "소명하러 왔습니다"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1억 원을 받은 의혹을 받고 있는 홍준표 경남지사가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 유성호
전직 경찰 총수를 옭아매기 위해 '무리하게' 수사하고, '무리하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던 검찰이 홍준표 경남지사 수사에서는 아주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 검사장)은 한 달여 간의 수사를 통해 홍 전 지사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1억 원) 혐의를 구체적으로 확인했다. 수사 중간에 홍 지사의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게 나돌았지만, 검찰이 내린 최종 결론은 '불구속 기소'로 알려졌다.

검찰은 홍 지사에게 1억 원을 전달했다는 윤아무개 전 경남기업 부사장을 회유하라고 직접 지시했다는 의혹도 입증하지 못했고, '정치자금법 위반의 구속영장 청구 기준은 2억 원 정도이며, 현직 도지사를 구속할 경우 도정공백이 우려된다'는 점 등을 불구속 기소 이유로 들었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지난 4월 9일 스스로 목숨을 끊기 직전에 남긴 메모와 <경향신문> 인터뷰를 통해 지난 2011년 5~6월께 홍 지사에게 1억 원을 건넸다고 주장했다. 성 전 회장이 건넨 1억 원은 한나라당 대표 경선자금 지원용일 수도 있고, 경남기업 워크아웃(기업구조조정) 조기졸업을 위한 로비자금일 수도 있다(관련기사 :'홍준표 1억'은 불법 정치자금? 경남기업 로비자금?). 어느 쪽이든 '대가성'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즉 정치자금법위반이나 뇌물수수죄를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홍 지사에게 직접 1억 원을 전달한 인사가 있었다. 언론인 출신으로 지난 2011년 한나라당 대표 경선 때 외곽조직에서 홍 지사를 도왔던 윤 전 부사장은 언론인터뷰와 검찰조사에서 "성 전 회장으로부터 지시를 받고 의원회관으로 가서 홍 지사에게 직접 1억 원이 든 쇼핑백을 건넸다"라고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검찰도 윤 전 부사장의 진술을 바탕으로 국회 출입기록, 윤 전 부사장을 국회에까지 차로 데려다줬다는 부인의 진술 등을 확보했다. 이를 통해 홍 지사가 윤 전 부사장으로부터 1억 원이 담긴 쇼핑백을 의원회관에서 건네받았다고 결론내렸다. 성 전 회장이 숨진 상황이어서 자금 전달책인 윤 전 부사장의 진술은 홍 지사의 범죄 혐의를 입증하는 데 가장 중요한 증거일 수밖에 없다.

수사팀 안에서는 수사 초기 정치자금법 위반죄의 구속영장 청구 기준이 2억 원이라는 점을 들어 불구속 기소를 주장하는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홍 지사 측근들이 윤 전 부사장을 회유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구속 기소' 의견이 힘을 얻어갔다. 

홍 지사의 측근인 엄아무개씨는 4월 중순께 윤 전 부사장과 전화통화하면서 "1억 원을 (홍 지사의) 나아무개 보좌관한테 준 것으로 진술하면 안 되겠냐, 이미 그쪽(나 보좌관)과는 말을 다 맞춰놨다"라고 말했다. 엄씨는 "홍 지사의 부탁을 받고 전화했다"라고도 했다.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을 배달사고로 만들기 위해 홍 지사가 직접 윤 전 부사장 회유를 지시했다는 정황이 확인된 것이다. 하지만 윤 전 부사장은 "덮고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관련기사 :홍준표, 1억 전달자 윤씨 회유 정황 나왔다).

검찰은 홍 지사의 측근 2명이 이렇게 윤 전 부사장을 회유하는 발언이 담겨 있는 파일 2개까지 확보했다. 그런데도 검찰은 홍 지사를 불구속 기소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자금 전달책의 일관된 진술, 집요하고 조직적인 회유 시도를 증명하는 녹취록까지 확보하고도 검찰은 '봐주기 수사'로 마무리한 것이다.

불구속 수사는 인권 침해 논란을 없애고 피의자의 방어권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한 원칙이지 중요한 증인을 회유하는 것까지 봐주기 위한 원칙은 아니다. 도대체 검찰 CI에 올곧게 서 있는 '공정 대나무'는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 편집ㅣ최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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