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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마다 태권도장이 있는 사연

입력 2015. 05. 21. 20:00 수정 2015. 05. 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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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조영일의 관부연락선] [첫 회] 태권도의 기원과 역사

2015년

롯데리아에서 어린이세트 장난감으로 '태권V' 출시. 어린 시절 우리는 태권도를 하는 태권V가 다른 어떤 일본제 로봇보다 강하다고 생각했다. 당시 우리에게 태권도란 무적(無敵)이자 정의였고, 악당을 물리치고 착한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배워야 하는 것이었다.

1938년

왜소한 체격의 청년이 도망치듯 관부연락선에 올랐다. 현해탄을 건너는 내내 그의 얼굴에는 불안이 가득했는데, 실수로 사람을 죽이고 만 것이었다. 집에서 훔쳐온 돈까지 내기 화투로 모두 잃자, 이성을 상실한 청년은 잉크병을 던져 상대방 허씨의 이마에 명중시켰다. 워낙 갑작스러운 공격이었던지라 매년 씨름대회에서 황소를 타는 상대방 허씨도 어쩔 수가 없었다.

3개월 뒤

청년은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을 듣게 된다. 좋은 소식은 다행히 허씨가 죽지 않았다는 것. 나쁜 소식은 죽지 않은 허씨가 눈에 불을 켜고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 졸지에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신세. 고민 끝에 권투를 배우려는 찰나, 선배의 추천으로 가라테(唐手)에 입문, 이후 가라테의 고수가 된다.

1944년

학도병으로 일본군이 되지만 평양 학병 사건(1944년 일본군 학병으로 징집당하여 평양에 주둔하고 있던 조선인들이 일본군을 탈출하여 항일전선에 참가하기로 하고 비밀결사를 조직했다 발각된 사건)으로 감옥에서 해방을 맞는다.

1945년

청년은 해방 뒤 군사영어학교에 입학, 국군창설요원이 된다.

1955년

군인으로 근무하면서 연구를 거듭한 끝에 가라테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무예를 완성,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태권도'라는 휘호를 받아낸다(참고로 그해에 같은 일본 주오대(中央大) 출신이자 역시 가라테 고수인 하준수가 "인민공화국 만세"를 외치며 처형을 당한다). 이후 그는 본격적으로 군부대에 태권도를 보급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교육을 받은 이들 중 일부가 제대 뒤 동네에 태권도 도장을 차린다(태권도가 짧은 기간에 엄청난 속도로 보급된 이유).

1960년

박정희의 쿠데타를 지지했지만, 이내 실망하고 함경도 출신 장군들과 재(再)쿠데타를 모의하다가, 그 전에 강제로 예편당해 말레이시아 대사로 좌천.

1966년

국제태권도연맹(ITF)을 창립하고 초대 총재가 된다.

1967년

도쿄에서 극진가라테의 최배달과 만난다.

1972년

유신체제에 반대하며 캐나다로 망명.

1973년

세계태권도연맹(WTF)이 창설되고 초대 회장으로 김운룡이 선출.

1976년

김청기 감독의 <로보트 태권V>가 개봉해 흥행에 성공.

1979년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만나고 북한에 태권도를 보급하기 시작.

1985년

<베스트 키드>(원제는 가라테 키드)가 국내에 개봉돼 흥행에 성공.

1989년

평양학생축전에서 임수경과 만난다.

2002년

평양에서 사망한 뒤 혁명열사릉에 안장. 묘비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최홍희 선생, 국제태권도연맹 총재, 1918년 11월9일생. 2002년 6월15일 서거."

조영일 문학평론가

'조영일의 관부연락선'은 장르문학에도 관심이 많은 문학평론가인 필자가 한국과 일본의 문화와 문학을 비교하고 연결해보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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