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회 한겨레문학상에 한은형씨 '거짓말'

2015. 5. 21.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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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올해 스무돌을 맞은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으로 한은형(36·사진)씨의 장편 <거짓말>이 선정되었다. 19일 저녁 한겨레신문사 8층 회의실에서 열린 심사에서 심사위원들은 <거짓말>이 "문장의 솜씨와 일관성 있는 색채, 예민한 감수성을 무기로 가장 높은 완성도를 보였"으며 "초반부터 빠르게 독자를 낚아채서 소설 속 인물을 따라가게 만든다"며 이 작품을 수상작으로 뽑았다.

지난 3월31일 마감한 제20회 한겨레문학상에는 모두 291편이 응모됐다. 소설가 최인석·한창훈·백민석·윤성희·윤고은, 평론가 정홍수·서영인·서희원·정여울씨가 응모작들을 나눠 읽고 일곱편을 본심에 올렸다. <거짓말>을 포함해 <노인들> <눈물> <내게는 홍시뿐이야> <우리의 투쟁> <울며 그들을 그리다> <햇살의 검은 시간> 등이었다. 이 가운데 <거짓말> <내게는 홍시뿐이야> <우리의 투쟁> 세편을 두고 투표를 한 끝에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를 한 <거짓말>이 당선의 영예를 안았다.

수상자 한은형씨는 인하대 국문과와 같은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했으며 2012년 문학동네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등단작을 포함해 단편 여덟을 묶은 첫 소설집 <어느 긴 여름의 너구리>(문학동네)가 21일 출간되었다. 그는 수상 인터뷰에서 "권위있는 한겨레문학상의 20회 수상자가 되어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쓰는 나도 즐겁고 읽는 독자도 즐거운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시상식은 7월10일 저녁 7시 한겨레신문사 3층 청암홀에서 열린다.

2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자 한은형 "좋아하는 박민규와 심윤경이 받았던 상이라 더 기뻐요"

고1 소녀 성장담 '거짓말'로 영예첫 소설집도 함께 나와 기쁨 두배"언어감각, 생기 살아있는 소설 쓰고파"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과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 같은 작품은 정말 그 작가들만 쓸 수 있는 소설 같아요. 제게 소설 읽는 기쁨을 느끼게 해 준 작품들이죠. 이런 소설들을 산출한 한겨레문학상의 20회 수상자가 되어 정말 기쁩니다."

장편 <거짓말>로 제20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한은형(36)씨는 상기된 표정으로 20일 오후 신문사에 나타났다. 그도 그럴 것이 작가로서 누릴 두가지 행복이 한꺼번에 그를 찾아왔다. 19일 저녁 한겨레문학상 수상 소식을 들은 데 이어 21일엔 첫 소설집 <어느 긴 여름의 너구리>(문학동네)가 출간되었다. 2012년 문학동네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지 3년 만이다. '책 한권 없는 소설가' '장편 한편 쓰지 않은 소설가'라는 두가지 민망한(?) 상황에서 일거에 벗어나 "드디어 진짜 소설가가 된 느낌"은 달콤했다.

"제가 응모한 <거짓말>이 한겨레문학상의 기존 수상작들과는 조금 차이가 있어서 사실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어요. 뭐랄까, 따뜻한 휴머니즘과 인류애 같은 게 '한겨레문학상적' 특징이라 하겠는데 제 소설에는 그런 게 없거든요. 이야기가 강한 것도 아니고요. 그렇지만 제가 구독하는 신문에서 주관하는 문학상이라서 용기를 내게 됐습니다."

<거짓말>은 1996년 고교 1학년 여학생 하석을 주인공 삼은 일종의 성장소설이다. 책 읽기를 좋아하고 어른들의 허위의식을 경멸하는 이 당돌한 소녀가 학교로 대표되는 기성 질서와 충돌하는가 하면 일찍 자살한 스무살 위 언니의 비밀을 알아 가는 두가지 이야기를 축으로 삼는다.

"'솔직'이라니. 한숨이 나왔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말 중의 하나였다. 민주, 평화, 평등, 자유, 수호 같은 말들과 함께. '훌륭한'이라는 형용사를 쓰는 사람과 '오롯이' 따위의 부사를 쓰는 사람도 싫었다."

같은 학교 남학생과 함께 발가벗고 교실 커튼을 덮어쓴 채 잠을 자다 들킨 뒤 "솔직하게" 반성문을 쓰라는 교감의 말에 하석은 이런 반응을 보인다. 이 사건 때문에 이른바 '명문' 고교에서 퇴학당한 하석은 기숙사가 있는 새 학교로 전학을 가 그곳에서 또 다른 사건을 벌인다. 주관이 뚜렷하고 도전적이며 냉소적이기까지 한 그는 "진심을 말하는 것보다 거짓을 말하는 편이 낫다"고 믿으며 바깥세계와 거리를 두려 한다.

주인공의 이런 면모는 '한겨레문학상에서 연상되는 틀을 벗어났다'는 점에서 오히려 심사 과정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자의식 과잉을 지적하는 견해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작가 자신의 생각은 달랐다.

"주인공은 사실 영리하고 야무지지 못해서 거꾸로 잘난 척하는 것처럼 보이는 겁니다. 쓸데없이 자기 감정을 노출하는 게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이에요? 주인공이 바로 저 자신 아니냐는 말도 들었는데, 이게 제 얘기라고 해도 거짓말일 것이고 아니라고 해도 거짓말일 거예요. 소설 속 이런저런 에피소드나 순간의 감정에는 제 것도 있지만, 전체 이야기는 그렇지 않거든요. 저는 제 얘기를 날것 그대로 쓸 만큼 용기 있지는 않아요."

한은형씨는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고 글재주도 있는 편이어서 언젠가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대학 시절 리포트로 써낸 한편 말고는 소설을 쓰지 않던 그는 서른살 넘어 등단을 준비하면서야 비로소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소설은 글재주나 테크닉의 영역이 아니고 인생에 대한 태도가 생겨야 하는 것인데 그러기에는 제가 너무 평범했기 때문에 시간이 무르익기를 기다렸던 거죠."

인하대 국문학과와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괜찮은 직장의 회사원과 연구원으로 5년 정도 근무하던 그는 2011년에 처음 쓴 단편 여섯을 서로 다른 신문사 신춘문예에 응모했고 그중 다섯편이 최종심에 올랐지만 당선에는 못 미쳤다. 2012년 문학동네 신인상에도 서로 다른 두개 필명으로 두편씩 네편을 냈고 '한은형 A와 B'가 다른 한사람과 경합을 펼친 끝에 마침내 당선했다. "갈고닦는 쪽이 아니라 막 쓰는 스타일"이라는 그는 이번 수상작 역시 하루에 세시간씩 한달 동안 작업해서 원고지 950장짜리 초고를 완성했고 열흘 동안 퇴고를 거쳐 1040장 분량으로 마무리했다고 했다.

"이야기보다는 문장이 좋은 소설을 좋아합니다. 제가 쓴 글에 대해 누군가 '언어감각이 남다르다'고 평하면 기분이 좋아요. 메시지나 사회적 현실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건 제 스타일이 아니에요. 쓰면서 저부터가 즐거울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톨스토이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서 브론스키가 안나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생기'에 반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소설의 핵심도 바로 그 생기인 것 같아요. 작가가 쓰지 않은 것을 느껴지게 하는 게 생기가 아닐까요. 그런 글을 쓰고 싶습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20회 한겨레문학상 심사평

예민한 감수성으로 10대 소녀의 자의식 과잉 그려

본심에 오른 작품은 일곱 편이었다. <거짓말> <노인들> <눈물> <내게는 홍시뿐이야> <우리의 투쟁> <울며 그들을 그리다> <햇살의 검은 시간>은 모두 고유한 영역을 가진 작품들이어서 다채로운 이야기 한 상이 차려졌다. 그중에서도 <거짓말> <내게는 홍시뿐이야> <우리의 투쟁>은 마지막까지 집중적으로 논의되었다.

<내게는 홍시뿐이야>는 착하고 진지한 소설이다. 소설에서 거품이나 허영이 아니라 온기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주인공은 귀엽게 느껴질 정도로 독자에게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가족 해체나 가난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 같아 아쉬웠다. 익숙한 설정과 전개 방식은 편안함과 진부함을 동시에 준다. 낡은 인상을 뛰어넘는 도약이 필요한데, 어쩌면 그것은 전혀 낯선 차원의 것이 아니라 좀 더 작은 부분을 구체화하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의 투쟁>은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단숨에 읽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겨우 몇 달 차이로 태어난 삼남매를 통해 어른들의 세계를 보여주는 태도가 발칙하다. 다소 황당한 줄거리라고 볼 수도 있으나 메시지가 영 가볍지만은 않다는 점에서 작가의 좋은 재주를 짐작하게 한다. 다만 이야기가 군데군데 빠져 있고, 그 공백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어떤 면에서는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소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떠올리게 하였는데, 그 작품에서 2차 세계대전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어떻게 기능하는가를 작가가 좀 더 고민해 보기를 권한다.

<거짓말>은 문장의 솜씨와 일관성 있는 색채, 예민한 감수성을 무기로 가장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 작품이었다. 자살 수집을 하는 10대 소녀의 성장 아닌 성장을 다루고 있는데, 적절하게 치고 빠질 줄 아는 문장들은 인물의 과잉된 자의식을 전달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다소 감정이 넘쳐흐르는 지점이 많다는 것, '나'의 기원의 비밀이 밝혀진 후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것은 약점이다. 배경이 되는 90년대의 의미에 대해서도 좀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데 심사위원들은 의견을 모았다. 문화적 풍요로 압축되는 90년대를 10대의 시각으로 다룬다는 점이 흥미로웠으나, 한편으로는 소설 속 고민과 그 시대 사이의 유기성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기도 한다. 이 이야기를 왜 지금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좀 더 강렬한 질문을 전달할 수 있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이 작품은 초반부터 빠르게 독자를 낚아채서 소설 속 인물을 따라가게 만든다. 여덟 벌의 교복을 가지고 있는데 방금 퇴학을 당해 그것이 다 쓸모없어진, 그 상황 속으로 말이다. 이 작가를 계속 따라가면 더 즐거운 '밀당'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기대감으로 <거짓말>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심사위원들이 일곱 편의 소설을 읽는 동안 결국 맞닥뜨린 질문은 '바로 지금 이 소설이 왜 필요한가?'였다. 그것은 소설을 쓰는 모두에게, 또 소설을 읽는 모두에게 유효한 질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종 논의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품으로 <노인들>을 언급하고 싶다. 연쇄살인을 통해 한국 사회의 부조리함을 보여주고 있고, 살인마를 만드는 방식이 새롭다. 거침없는 도입부로 독자를 사로잡는 데도 성공하였으나, 중반 이후부터 이야기가 확산되지 못하고 같은 자리에 고여 있다는 것이 몹시 아쉬웠다. 알몸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인물과 함께 좀 더 멀리까지 갈 수 있다면,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 될 거라고 믿는다.

제20회 한겨레문학상 심사위원회(백민석 서영인 서희원 윤고은 윤성희 정여울 정홍수 최인석 한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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