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경력판사 '국정원 면접' 실시..사상검증 의혹

박상진 기자 2015. 5. 27.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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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직원들이 경력판사 지원자를 만나 사실상 면접을 진행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게다가 국정원 직원들은 일부 지원자에게 이념적 대립이 드러나는 사회 현안에 대한 입장을 물어보기까지 해 삼권분립 위배는 물론 사상검증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는 상황이다.

● 지원자 "국정원 면접을 봤다"

경력판사 임용은 법조일원화 차원에서 검사나 변호사 등 일정 정도 법조 경력을 쌓은 다양한 사람을 판사로 뽑는 제도다. 이전에도 일부 있었지만 사법연수원 수료 직후 판사로 임용되는 제도가 폐지된 2013년부터 전면 시행된 이 제도의 취지는 기존 연수원 졸업 후 성적 순으로 임용된 법관의 서열화 문제를 해소하고 성적만이 아닌 사회적 경험이 풍부한 법조인을 판사로 임용해 재판업무를 맡긴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국정원이 이들을 임용하는 과정에 지원자들을 접촉해 왔다는 것이다. 본인을 국정원 직원이라고 소개한 사람이 불쑥 지원자에게 전화를 걸어 "변호사님, 이번에 경력판사 지원하셨죠? 저 국정원의 A라고 합니다. 절차상 확인할 게 있는데 좀 만나시죠"라는 식이었다.

지원자들은 국정원 직원이 전화를 한 뒤 사무실로 직접 찾아오거나 사무실 주변 카페 등에서 만나 질문을 했다고 했다. 이것을 아예 '국정원 면접'으로 알고 있는 지원자들도 적지 않았다. 원래 임용과정에 이런 절차가 있는 줄 알았다는 것이다. 자신이 경력 판사를 지원한 사실도 외부에 알리지 않았는데 그 사실을 알고 자연스럽게 전화까지 걸어 와 이야기하니 '원래 이런 과정이 있나 보다' 라고 생각했다고 지원자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답했다. 이상하게 생각이 들 법도 했지만 평가를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 일종의 면접관에게 자신을 찾아 온 이유, 소속 등을 함부로 묻기 힘들었다고 이야기한 사람도 있었다.

질문은 다양했다. 왜 경력 판사직에 지원했는가를 묻는 것에서부터 변호사 업무를 하면서 어떤 사건을 수임했는지, 전문 업무 분야는 무엇인지 등. 하지만 일부 지원자에게는 사회적 현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는 본인의 SNS활동에 대해 추궁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상검증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국정원은 지난 2005년 인권위 권고에 따라 본인 및 배후사상 검증 항목을 신원조사 조사사항에서 삭제했지만 '인성 및 품성' 항목은 남겨 둔 바 있다.

● "방식은 조사기관 고유권한"

취재를 마치고 확인에 들어가자 국정원은 상황에 따라 직접 지원자들을 만나기도 한다고 답했다. 법적 근거를 내세우며 판사 지원자 접촉이 '도대체 뭐가 문제냐'는 입장이었다. 국정원이 내세운 근거는 대통령령인 보안업무규정이다. 1960년대에 만들어진 보안업무규정 33조에는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성실성 등을 조사하기 위해 신원조사를 한다'며 조사대상에 판사 신규 임용예정자

(국가법령정보센터)

를 포함시켜 놓고 있다.

국정원은 이런 법적인 근거를 기반으로 판사 신규 임용예정자 신원조사를 본인들이 할 수 있다면서 대면(對面) 조사 등 "조사방법은 조사기관의 고유권한"이라고 답했다. 보안업무규정을 근거로 직접 당사자를 만나든 전화를 하든 방식은 국정원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리고 사상검증 의혹 부분에 대해서는 "일절 지양한다"는 원론적 답변만을 내 놓았다.

경찰 등 신원조사를 담당하는 다른 기관의 경우 대면조사가 아닌 간접조사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민원이 제기될 수 있고 자칫 사찰로 비춰질 수 있으며 사생활 침해 등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고위 공무원을 선발하는 데에 있어 조사 자체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까지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범죄, 탈세 등 결격 사유가 있다면 임용을 하지 않는 것이 맞다. 하지만 이런 사항은 국정원이 아닌 기관들이 본인을 일부러 찾아가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조사할 수 있는 부분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민주주의 국가권력을 이루는 한 축인 사법부의 예비 구성원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대면 조사를 벌이고 사상 검증 의혹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질문까지 서슴지 않으면서 이를 '조사기관의 고유권한'이라고 이야기해 버리는 국정원의 오만함을 과연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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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 기자 nji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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