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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치킨의 경고 "나, 사라진다"

이영완 기자 입력 2015. 05. 3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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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우습게 보지말자.. 닭이 사라지면, 인류는 무너진다 조류 인플루엔자의 공격 미국의 닭 10%가 살처분됐고 달걀 값은 2배로 치솟는데.. 소도 돼지도 양도 닭을 대신할 순 없어 닭은 대체 불가능한 보배 닭이 사라지면 필수적인 아미노산 부족으로 가난한 나라부터 치명타 인플루엔자 백신, 달걀로 만들어 독감 한번 돌면 5만명 사망 예상 과학자들 "대량사육 대안 찾아야"

닭이 사라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철새 사이에 H5N2형 조류인플루엔자가 돌더니 이달부터 미국 중서부 16개 주 양계장으로 급속히 퍼지고 있다. 이미 4000만 마리가 넘는 닭이 살처분(殺處分)됐다. 미국에서 키우는 닭의 10%가량이 사라진 것이다. 지금처럼 계속 바이러스가 퍼지면 미국 닭의 3분의 1을 키우는 중서부가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현지에서 달걀 12개 소매가격은 4월 말 1.19달러에서 지난주 2.03달러로 치솟았다.

닭이 사라지는 것은 미국만의 일이 아니다. 10여년 전 아시아를 휩쓴 조류인플루엔자로 닭이 1억 마리 이상 살처분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해 조류인플루엔자 등으로 살처분된 닭과 오리가 1500만 마리에 육박했다.

닭이 사라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과학자들은 '닭이 사라지면 인간 사회는 무너진다'고 예측한다. 닭은 인류의 보편적 사랑을 받는 단백질원이다. 지난해 12월 미국의 과학 저널리스트 앤드루 롤러가 발간한 '닭은 왜 세계를 건너갔는가?(Why Did the Chicken Cross the World?)'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1년에 닭고기 1억t과 달걀 1조개를 소비한다. 종교나 문화와도 상관없다. 힌두교인은 소고기를, 이슬람교도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지만, 닭은 누구나 다 먹는다. 지구에서 소와 돼지, 개, 고양이, 심지어 쥐까지 포함한 숫자보다 닭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사람 1명당 닭 3마리꼴로 산다.

닭이 인류의 사랑을 받는 것은 닭의 놀라운 적응력 때문이다. 진화론을 창시한 찰스 다윈은 생전 전 세계 곳곳에서 닭을 채집해 연구했다. 다윈은 현재 가축화된 닭은 동남아시아에 사는 야생 조류인 붉은멧닭(red jungle fowl)에서 기원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2004년 게놈 분석 결과 다윈의 주장은 사실로 드러났다. 또 지난해 영국과 독일 과학자들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닭뼈 화석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해 닭이 1만년 전 중국에서 길들여지기 시작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인간은 먼저 점술과 제사용, 또는 투계(鬪鷄)용으로 닭을 길들였다. 닭은 이후 히말라야 산맥에서 수마트라의 정글에 이르기까지 어떤 환경에도 적응했다. 지구에서 닭이 살지 않는 곳은 남극 대륙뿐이다. 그것도 펭귄을 보호하기 위해 일부러 막아서지, 닭이 살 수 없기 때문은 아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화성 식민지에서 닭을 키우려고 연구했다.

닭이 사라지면 다른 가축으로 대체하면 되지 않을까. 그러면 인류에게 재앙이 닥친다. 네덜란드 환경평가국은 닭고기를 무게가 같은 소고기로 대체하려면 소를 더 키우기 위해 지금 지구 전체 양계장 면적의 1000%나 되는 토지가 더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이는 중국과 인도를 합친 것보다 더 넓은 면적이다. 소가 같은 무게의 고기를 생산하려면 닭보다 8배 많은 사료를 먹여야 한다. 만약 닭을 모두 돼지로 대체한다면 지금보다 돼지가 10억~20억 마리는 더 필요하다. 돼지는 같은 무게의 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닭보다 먹이를 14%나 더 먹인다.

토지나 사료도 문제지만 환경 피해는 더 심각하다. 닭과 달리 소는 되새김질을 하면서 온실가스인 메탄을 트림과 방귀로 배출한다. 세계식량기구(FAO)에 따르면 같은 무게라면 소고기가 닭고기보다 온실가스를 4배 더 배출한다. 양고기가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5배나 된다. 돼지고기로 대체해도 75% 늘어난다.

닭이 사라지면 경제력이 약한 저개발 국가 사람들은 당장 건강에 문제가 생긴다. 닭은 아시아나 아프리카 어디를 가도 길거리 음식으로 인기가 있다. 닭고기나 달걀에는 인체가 합성하지 못하는 라이신과 트레오닌 같은 필수 아미노산이 들어 있다. 중국 베이징 수의과학연구소의 한지안린 박사는 "닭고기나 달걀이 없으면 인류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할 정도다. 닭이 사라지면 가난한 나라부터 아미노산 부족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실제로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 한 해 전 세계에서 필요한 4억명 접종분의 인플루엔자 백신을 만들려면 달걀이 필수적이다. 바이러스를 달걀에 접종하고 거기서 단백질 성분을 정제해 백신으로 쓰기 때문이다. 동물세포에 바이러스를 키우는 방법도 개발됐으나 아직 유정란(有精卵) 생산법이 주축이다. 뉴욕 의대의 도리스 부처 박사는 "닭이 사라지면 독감 한 번 유행에 미국에서만 5만명이 목숨을 잃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인류는 생존을 위해서도 닭을 보호해야 한다. 그 길은 지금과 같은 대량 사육 방식을 포기하는 것일지 모른다. 닭의 자연 수명은 10~12년이나 된다. 하지만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서구에서는 6주, 우리나라에서는 4주 정도만 키우고 도살한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비좁은 아파트형 우리에 가둬 키우다 보니 관절이 뒤틀려 고통을 받는다. 닭이 진통제가 들어 있는 먹이를 더 찾는 것도 관절통 때문으로 분석된다. 조류인플루엔자 같은 전염병이 쉽게 도는 것도 대량 사육 탓이 크다.

서구인들이 필리핀에서 투계용 닭을 키우는 사람을 보고 "비인도적"이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서구인에 대해 "당신네보다 우리가 더 닭을 잘 보살피고 더 오래 살게 한다"고 비판한다. 적어도 생후 4~6주 만에 닭을 죽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 서구에서도 비인도적 양계 산업에 대한 반성이 일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뒷마당에 닭을 풀어놓고 키우자는 '도시 양계' 운동이 퍼지고 있는 것도 한 예다. '닭이 살아야 인류가 산다'는 말이 전혀 헛말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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