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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메르스 非常사태' 대통령은 어디 갔나

입력 2015. 06. 03. 03:23 수정 2015. 06. 03.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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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감염자 2명이 사망하고 3차 감염자도 처음 발생했다. 2일 현재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람은 25명으로 늘었다. 이 가운데 2명은 첫 환자로부터 감염된 환자가 감염시킨 3차 감염자이다. 격리 대상자는 2일 현재 756명으로 급증했다. 2차 감염자가 계속 늘고 있고 3차 감염자까지 가세하고 있어 격리 대상자는 갈수록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대응은 여전히 소극적이고 늦기 일쑤이다. 정부는 격리 대상자 대부분을 자택에서 지내게 하면서 일부 노약자만 국가 지정 시설에 격리시키고 있다. 그러나 자택 격리의 경우 대상자에게 독방을 쓰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른 가족과 2m 이상 떨어져 지내라는 지침을 주는 게 고작이다. 국가 지정 격리 시설도 전국 17개 병원에 579개 있지만 이 중 바이러스 차단 시설을 갖춘 병상은 105개뿐이다.

메르스 감염자가 확산되면서 경제적·사회적 파장은 벌써 엄청난 속도로 커지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잇달아 한국 방문을 취소하고 있다. 일부 지역 유치원과 학교들이 휴교에 들어갔고 학부모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몇몇 기업은 공장이나 사무실을 임시 폐쇄할 것을 검토 중이다. 메르스가 병원에서 감염되는 것을 보고 병원 진료 예약이나 입원을 취소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1개월 이상 계속되면 세월호 참사 때처럼 국내 경기도 상당 기간 침체에 빠질 것이다.

세계 많은 국가들이 이번 사태를 통해 한국의 의료 수준과 대응 능력을 예민하게 살펴보고 있다. 메르스 사태는 안으론 국민의 생명이 달린 문제이고, 밖으로는 나라의 체면이 걸린 문제인 것이다. 한마디로 국가적 비상사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대응을 보건복지부에만 맡겨놓고 있다가 2일에야 최경환 국무총리 대행 주재로 대책 회의를 열었고, 이날 오후 청와대에 대책반을 설치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1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보건 역량을 총동원하라"고 지시했을 뿐 관련 회의를 직접 주재하거나 질병관리본부 같은 현장에서 지휘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대통령은 사망자가 2명 나온 2일에도 오래전에 예정된 창조경제센터 개소식을 위해 여수를 방문했다. 비상 상황이 닥쳤는데도 평상시 잡아놓은 일정을 소화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국회법 개정에 대해서는 거부권 행사를 시사하며 국회와 힘겨루기 싸움에 치중하는 인상을 주었다.

메르스 창궐 사태야말로 대통령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총력전을 펼쳐야 하는 중대 현안이다. 대통령이 국민 생명과 국가 위신(威信)이 걸린 사안에 별 관심을 두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 메르스 사태는 장기화되면서 그 피해가 나라 구석구석까지 미치는 대재앙(大災殃)으로 번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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