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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박(讀博) 육아일기] (11) 내가 '아빠 육아' 예능 프로를 끊은 이유는

입력 2015. 06. 04.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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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백윤 기자의 ‘독박 육아일기’
MBC 예능 프로그램 ‘아빠 어디가’의 한 장면

[서울신문]

-고된 하루를 마치고 퇴근길,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에 도착한다. 현관문을 열면 앞치마를 두른 예쁜 아내가 상냥하게 맞아준다. “잘 다녀왔어요?” 집 안엔 보글보글 끓고 있는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풍긴다. 피로가 싹 녹는 듯 하다. 귀여운 아기를 번쩍 들어올린다. ‘꺄르르’ 행복한 웃음이 터져나온다.

아마도 많은 아빠들의 머릿 속에는 이런 로망이 있지 않을까. 깨끗한 집에서 웃음이 끊이질 않는 단란한 가정. 가장의 책임이란 게 거기서 나온다고 믿고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그런데 현실은 거의 이랬다.

-현관문을 열고 퇴근했는데 아내의 눈은 ‘백안시’가 되어있다. “왜 이렇게 늦었어?” 쏘아붙이는 아내 뒤로 보이는 집안 꼴이 가관이다. 도둑이라도 들었나, 온갖 잡동사니가 거실에 늘어놓여 있고 설거지 거리는 쌓여 있다. 아내의 우울한 얼굴은 또 어떻고. 연애할 때 수줍고 예쁘던 여인은 어디로 갔을까. 아기가 보챈다. 순간 짜증이 몰려온다.

아이를 키우면서 남자들 누구나 갖고 있다고 알려진, 이 로망이 너무나 스트레스였다. 물론 남편이 내게 이런 꿈 같은 상황을 요구하진 않았다. 꾀죄죄한 모습으로 있다고 해서 타박을 하거나 발 디딜 틈이 없는 거실을 보며 “집안 꼴이 이게 뭐냐”고 짜증을 낸 적도 없다. 다 이해한다고 했다. 그런데도 눈치가 보였다. “과연 나를 다 이해했을까?” 늘 의문이 들었다.

아빠들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남편이 무척 가엾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기가 태어난 뒤부터 나에게 1순위는 무조건 아이다. 남편은 사실 안중에도 없었다. 나를 도와주는 존재, 그 이상이 될 수 없었다. 육아 커뮤니티 등에서 엄마들은 남편을 ‘큰 아들’이라고 종종 표현한다. 분명히 나보다 나이가 많은데도 하는 짓은 꼭 아이 같다. 눈이 한참 나쁘면서도 아침에 일어나서 “내 안경 어딨지?”하고 왜 나한테 묻는 걸까. 만날 신는 양말, 짝도 다 맞춰 놨는데 왜 못 찾고, 용케 구멍난 걸 찾아 신고 가는 건지. 정말 아직도 손이 많이 가야 하는 아이 같기만 하다.

아무튼 이런 남편이 아이에게 완전히 밀렸다. 내 손길이 남편에게까지 뻗칠 겨를은 없었다.

힘들게 일하고 퇴근한 남편에게 제대로 된 저녁상을 차려준 것도 일주일에 사나흘 뿐이었다. 뭔가를 차릴 여력도, 의지도 부족했다. 그렇다고 남편에게 김치 한 종지만 내놓을 수는 없으니 그냥 시켜먹자고 하면서 연신 미안했다. ‘도대체 하루종일 집에서 뭘 하길래 밥도 안 해놓았을까’라고 생각할 게 분명했다. 반면 아기에게는 1++등급 한우만 먹였다. 어느 날 이유식 육수를 끓이고 있었는데 퇴근한 남편이 자기를 위해 사골이라도 끓이는 줄 알고 들뜬 마음으로 냄비를 열었다. “그거 OO이 먹일 육수야”라고 했을 때 실망스런 표정이 지금도 미안하긴 하다.

겨우 저녁을 먹고 나서도 남편이 쉴 시간은 별로 없다. 설거지, 쓰레기 버리기, 청소 등 몇 가지 집안일을 도와준다. 퇴근하고 잠들기 전까지 집에서 약 3시간 동안 쇼파에 제대로 앉아 보지도 못하고 바쁘다. 오랜 취미생활도 딱 끊었다. 결혼 전에는 매주 일요일 오전 사회인 야구 경기를 하러 나갔지만, 아기가 태어난 뒤로 그런 일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돼버렸다.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거나 자주 가는 인터넷 카페를 둘러보는 게 취미가 된 것 같다. 언제부턴가 유독 화장실에 들어가는 시간이 부쩍 늘어났다. 혹시나 집에서 유일한 도피처로 화장실을 찾고 있는 건 아닌가 의심이 들기도 한다.

주말이라고 늦잠 한 번 제대로 자기 어렵다. 평일 내내 아기와 씨름했던 나는 남편에게 외출하자고 조른다. 맛있는 ‘남이 해주는 밥’을 먹으면서라도 한 주의 피로를 풀고 싶다. 바깥 공기도 쏘이고 사람 구경도 좀 해야겠다. 남편의 피로는 더 쌓였을 것이다. 가뜩이나 요즘 ‘아빠 육아’ 예능 프로그램들의 영향으로 아빠들이 주말에 낮잠을 자거나 쇼파에 누워 TV를 보는 것은 ‘간 큰’ 행동이 됐다.

발 뻗고 쉬지도 못하고 바쁜데 마음도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을 거다. 가끔은 내가 남편이라면 집에 들어오기가 참 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루종일 남편이 오는 시간만 기다리다가도 막상 얼굴을 보게 되면 이상하게 짜증이 밀려왔다. 씻지도 못하고 있다가 남편이 온다고 겨우 세수를 하며 기다리는데도 문을 여는 순간, 하루의 설움이 복받쳤다. 육아 스트레스를 풀 데가 남편이 유일했고, 내가 이렇게 힘든 게 모두 남편 탓이라는 유치한 생각도 들었다. 그냥 미웠다. 냉랭한 분위기가 느껴지면 남편은 말 없이 집안일에 더 열중했다.

얼마 전 한 포털사이트 커뮤니티에 ‘쌍둥이 독박육아’를 하는 아내에게 “퇴근하고 돌아오는 나를 웃으며 반겨줄 수는 없냐”고 따졌다가 크게 다퉜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정말 뜨끔했다. 그런데 그 글을 쓴 남편은 육아의 어려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나는 마주치기 싫은 상사들과 하루종일 시달리면서도 억지로 웃으며 사회생활을 한다, 너는 사랑하는 자녀들과 함께 있는데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웃어주지도 않느냐”는 식으로 아내에게 따졌다고 해 수많은 엄마들에게 뭇매를 맞았다. 비판하는 댓글이 순식간에 1000여개가 넘었다.

남편이 나의 ‘엄마로서의 책임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듯이 나 역시 남편의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어느 정도인지 추측만 할 뿐이다. 똑같이 사회생활을 하지만, 아마 남편이 체감하는 정도가 더 무거울 수도 있다. 똑같은 월급을 받더라도 남편 통장에 들어가는 돈이 더 빠듯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데도 왜 유독 육아만 힘든 것처럼, 사랑하는 아이를 키우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힘든 것처럼” 이야기하냐고 묻는 남편들의 질문에 단호하게 이렇게 답할 수 있다.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매일 도저히 몇 시에 잤는지, 몇 시에 일어난 건지도 모르도록 밤새 잠을 설치며 모유 수유를 하고, 날이 밝으면 또 이유식을 만들어 세 끼를 챙겨 먹여야 했다. 밥 한 끼 먹이는 것도 전쟁. 요즘도 입에 밥 한 숟가락 넣으려고 온갖 애교와 굽신거림으로 “제발 한 입만 먹자”를 연발해야 하고, 마치내 입을 “아~”하고 벌려주면 황송하기 그지 없다. 17개월이 된 지금도 안아서 재워야 할 만큼 잠에 대해서는 예민한 아기다. 겨우 다 재워놓고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오면 어느새 침대 위에 벌떡 앉아 있는 아기가 무섭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분명히 5분도 안 잤는데, 그럼 다시 잠 들어야 하는데, 언제 졸렸냐는 듯 다시 놀기 시작한다. 아이는 ‘급속 충전’이 가능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급속 방전’이 돼버렸다.

기본적으로 피곤함을 달고 외로움과 우울함과도 싸우며, ‘나’라는 존재는 철저히 감추고 아이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생활. 이게 반복되다 보니 남편을 봐도 도저히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았다. 힘들게 일하고 돌아와서 마주친 내 모습이 정나미가 떨어질 수도 있겠다는 걱정도 됐다. 그래서 몇 번이나 남편에게 세뇌를 시키기도 했다. “나는 지금 심각한 우울증에 빠졌다”, 심지어 한 번은 “나를 그냥 정신병에 걸린 환자로 생각하라”고 말한 적도 있다. 아직도 남편에게는 예쁜 모습만 보여주고 싶다. 그런 나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때 심정은 참담했다. “그러니 제발 나를 이해해 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밤마다 헤어지는 게 아쉬워, 집 앞에서 손을 꼭 붙잡고 놓지 못하던 연인에게 불과 3년 만에 닥친 현실은 이랬다. 물론 여전히 사랑하고, 오히려 아기가 생긴 뒤부터는 연애할 때와는 또 다른 깊은 사랑이 생겼고 둘의 관계도 더 돈독해졌다. 다만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 너무 쉽지 않았다. 엄마들은 아이를 낳음으로써 인생이 송두리째 달라질 수도 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아빠들은 온종일 집에서 아이와 ‘노는’ 엄마들이 뭐가 그렇게 힘들다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아빠들도 눈치 보며 쉬지 못하고 일을 하는데 돌아오는 것은 잔소리 뿐이다.

’아빠 육아’의 필요성이 마치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아빠 육아’ 콘셉트가 넘쳐난다. 물론 ‘아빠 육아’의 필요성이 널리 알려지고 아빠들에게 육아에 대한 일정 부분의 의무나 책임감을 안겨준 것은 매우 반길 일이었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의하면 올해 1분기 남성 육아휴직자가 879명으로 지난해(564명)에 비해 55.9%나 증가했다고 한다.

육아휴직을 하고 제대로 된 육아를 해본다면 분명 다르겠지만,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남편들에게는 ‘아빠 육아’라는 것이 TV에서 하듯이 아이와 여행을 가거나 특별한 체험, 이벤트를 하는 것, 또는 몸으로 격하게 놀아주는 수준으로 좁혀지는 게 아닌가 우려도 된다. 어쩌다 한 번 아이를 ‘봐주는 것’, 엄마에게 특혜를 주는 것이 아빠 육아인 것처럼 되는 게 오히려 아쉽다.

어찌보면 출산하고 딱 사흘만 같이 있어주는 아빠에게 육아에 대한 공감을 해달라는 게 더 말이 안 되기도 하다. 하루에 3~4시간 겨우 집에 있는 아빠에게 나와 아이가 갖고 있는 만큼의 친밀감을 요구하는 것도 무리다. 즐겨 보던 아빠 육아 예능프로그램을 보지 않게 된 것은 이런 현실과의 괴리감이 너무 커서다. 엄마들이 매일 겪는 일상은 행복하고 즐겁기만 한 이벤트가 아니다. 이걸 아빠도 경험하고 느끼는 게 진짜 아빠 육아라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주말 하루, 몇 시간 함께 해서는 알 수가 없다. 놀이터에서 한 두시간 뛰어 놀아준 것으로는 부족하다. 연예인 아빠들은 스케줄 조정이 가능하지만, 그렇다고 내 남편도 일을 잠깐 쉬고 육아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나도 육아휴직할까?”라고 농담이라도 하면 곧바로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고 나무라게 된다. 일단 생활을 이어가려면 지금 수준의 월급을 꾸준히 벌어야 한다. 남성 육아휴직을 아무도 쓰지 않는 회사에서 남편이 굳이 눈초리를 받아가며 총대를 메게 하고 싶지도 않다. 꼭 ‘휴직’이라거나 ‘아빠의 달’이라는 등의 특별한 제도, 있어도 쓸 수 없는 제도가 아니더라도 아빠들이 아이와 많은 시간을 갖게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좋겠다.

엄마들이 진짜 바라는 것은 TV 속 연예인들처럼 ‘슈퍼맨’인 아빠가 아니다. 연애할 때 내 이야기를 실컷 들어주고 내 편만 들어주었듯이, 육아 스트레스에 찌들어 있는 나의 대화 상대가 되어주고 이해해 달라는 것이다. 아이에 대해 하나라도 더 알아가고 기억하려고 노력을 하는 것이 밖에서 공 한 번 차고 놀아주는 것보다 힘이 된다. 돈도 잘 벌고 집안일도 잘하고 육아도 잘하는 완벽한 아빠는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엄마가 혼자가 아님을, 우리의 아이를 ‘함께’ 키우고 있음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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