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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사태 똑바로 보자] "보호자 어디 계세요?".. 환자 가족이 '간호 대체 인력'

문수정 박세환 조효석 기자 입력 2015. 06. 24. 10:06 수정 2015. 06. 24.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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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강요된 문화' 가족 간병

“보호자 어디 계세요?”

응급실에 가거나 병원에 입원하면 제일 먼저 듣는 질문 중 하나다. 여기에는 ‘병원에 있으려면 환자를 전담해 돕는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보호자가 없으면 병원이 환자를 전적으로 책임질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를 겪으며 ‘가족 간병’이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정부부터 가족 간병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병실에서 쪽잠 자는 가족 간병을 좋아서 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나라 의료 환경에선 그럴 수밖에 없어서 하는 것이다.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돼 있고, 그 배경에는 의료 시스템의 구조적 결함이 있다. 전문가들은 간병 문화를 바꾸려면 ‘제도’가 먼저 갖춰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 ‘강요된 문화’를 바꿀 책임이 환자나 가족이 아니라 정부와 의료계에 있다는 뜻이다.

◇간호 인력 태부족…강요된 선택 ‘가족 간병’=가족이 병원에서 간병을 담당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드물다. 한국과 대만 정도만 그렇다. 대다수 국가는 간호사가 환자 간병까지 책임진다. 가족 간병이 한국식 병원문화로 자리 잡은 결정적 이유는 간호 인력의 심각한 부족에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 간호사 수는 환자 1000명당 4.8명으로 OECD 평균(9.3명)의 절반밖에 안 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분석 결과 간호사 1명이 한꺼번에 돌보는 환자 수는 상급종합병원 8.1명, 종합병원 14.7명, 병원 35.4명이다(2010년 기준). 간호사가 피를 뽑고, 링거를 꽂고, 응급 처치를 하는 등 전문적인 영역만 감당해도 손이 모자란다.

이렇다보니 환자가 입원할 때마다 병원에서는 보호자부터 찾는다. 보호자가 ‘간호 대체 인력’의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사연이 2012년 발간한 ‘한국의료패널’ 보고서를 보면 입원환자 10명 중 7명은 병원에서 보호자와 함께 지냈고, 95.2%는 가족이 간병을 맡았다. 4.5% 정도는 간병인을 고용했다.

김진현 서울대 간호학과 교수는 “상식적으로 병원의 일을 의료인이 아닌 외부인에게 맡긴 다는 게 말이 안 되는데 이게 현실이다. 병원이 인건비 절약을 위해 환자 가족에게 이 비용을 떠넘기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간병 문화가 메르스 사태를 키우는 데 일조했지만 문화의 문제라기보다 제도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수가 인상’ 외면, 병원은 ‘인건비’ 절감=간호대를 졸업하고 간호사 면허를 취득한 인력은 매년 2만명씩 쏟아진다. 2013년 기준 간호사 면허 소지자는 30만7797명이다. 그중 의료기관에 근무하는 사람은 44%(13만5440명)뿐이다. 간호사는 넘쳐나는데 병원마다 인력 부족에 허덕이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업무 강도에 비해 임금이 적어 차라리 일을 포기하는 간호사가 많다. 병원간호사회가 조사한 간호사 평균 이직률은 13.9%다. 중소병원은 28.8%나 된다. 평균 근속연수는 5.9년이고 평균 34세면 퇴직한다. 3교대로 돌아가는 병동 간호사는 근속 연수가 4년도 안 된다.

간호사 임금은 건강보험의 ‘간호관리료 수가’(간호서비스 전체 가격)에 따라 결정된다. 병원은 이 수가가 ‘너무 낮다’고 한다. 수가는 낮은데 최대한 많은 간호사를 고용하려다보니 간호사 임금은 턱없이 낮다. 하지만 정부는 간호수가 인상에 소극적이다. 수가를 올리면 재정에 부담이 돼서 그렇다.

‘낮은 수가→낮은 임금→인력 부족’의 악순환은 ‘가족 간병 문화’를 낳았다. 박용덕 전 건강세상네트워크 정책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비용 때문에 정부와 병원이 간병을 가족의 영역으로 돌리면서 보호자가 병실에 상주하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병문안 문화도 이런 맥락에서 생겼다. 문화를 바꾸자고 해봐야 캠페인에 그칠 뿐이다. 사람들이 병실에 가지 않아도 되는 조건과 시스템을 갖추는 게 먼저다.”

◇‘가족 간병’ 문화의 최대 피해자는 ‘간병하는 가족’=메르스 사태를 겪으며 가족 간병의 폐해로 ‘감염병에 취약하다’는 점이 지목됐다. 병원에 상주하는 보호자는 늘 병원 내 감염에 노출돼 있다. 메르스에 감염된 ‘환자 가족’도 병문안을 한 경우보다 간병한 경우가 훨씬 많았다.

가족 간병의 폐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전문성이 없는 가족이 간병을 도맡다보면 환자에게 크고 작은 사고가 생길 수 있다. 병원에서 발생하는 사고지만 병원이 100% 책임지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오랫동안 간병하다보면 보호자가 병을 얻기도 한다. 딱딱한 보호자 침상에서 불편하게 자고 식사도 부실해진다. 제대로 못 먹고 충분히 못 쉬니 면역력이 떨어져 잔병치레를 하는 일이 많다. 개인적인 삶을 포기해야 해 우울증이 오기도 한다.

안형식 고려대 보건대학원장은 “아픈 사람과 함께 오래 있다보면 우울감에 빠질 수 있다”며 “가족이 입원했는데 모른 척 내버려둘 순 없지만 일상 활동에 지장을 받으면서까지 병원에 있어야 하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문수정 박세환 조효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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