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피플] "나는 한국 첫 '여장 남자' 동성애자였다" 김유복자씨 신앙 간증

글·사진=유영대 기자 2015. 6. 26.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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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로 인한 쾌락은 순간적일 뿐.. 예수님 영접하니 불순종의 병 치유돼"
김유복자씨(오른쪽)가 25일 서울 이태원 쪽방에서 갈보리채플서울교회 이요나 목사를 만나 옛 일을 떠올리고 있다. 김씨는 동성애자로 살았던 젊은 시절을 후회했다. 오른쪽 작은 사진은 김씨가 40대에 서울의 한 트랜스젠더 바에서 일할 때 모습.

동성애자였던 김유복자(75)씨. 기저귀를 찬 채 누워 있던 그는 힘들게 몸을 일으켰다. 지치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얼굴 표정은 멍했고 말투는 어눌했다.

"2004년 고질병이던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신경이 끊어지는 사고를 당했어요. 2007년 재수술을 받았지만 10년째 바깥출입을 못하고 있습니다. 집에서 하는 일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서울 이태원 쪽방에서 25일 만난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장 남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의 이름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 아버지가 병으로 사망해 주위에서 ‘유복자’라고 불렀는데, 어머니는 그 이름을 호적에 올렸다.

초등학교 때부터 이유 없이 남학생이 좋았던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술집과 트랜스젠더 바 등에서 일했다. 독일 유명배우의 이름을 딴 ‘마리네 김’과 ‘김 언니’가 그의 애칭이었다. 남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여성 호르몬 주사를 맞았고 눈썹에 문신을 한 뒤 가슴 확대 수술까지 받았다.

한때는 모 방송국의 전속 가수로 활동했다. 뮤지컬에 출연했고 일본시장에도 진출했다. 국민가수 패티 김은 그의 노래를 듣고 “신이 내린 목소리”라고 칭찬했다고 한다. 인생이 술술 잘 풀리는 듯했지만 그뿐이었다. 그토록 바라던 행복은 찾아오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허무한 마음뿐이었다.

하나님은 그를 버리시지 않으셨다. 동성애자로 살다가 ‘탈(脫)동성애 인권운동가’로 변신한 갈보리채플서울교회 이요나(67) 목사의 인도로 30대 후반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김씨는 이 목사가 동성애자이던 시절에 운영하던 트랜스젠더 바에서 노래를 불러 이 목사와 친분이 있었다.

하지만 믿음은 쉽게 생기지 않았다. 간절히 눈물로 기도를 드렸다. 다행히 교회에 자주 출석하고 성경공부를 하면서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었다. 자연스레 동성애가 죄악임을 깨닫고 동성애의 유혹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요즘 TV로 예배를 드린다. 찬송을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 그는 이날 찬송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를 온 힘을 다해 불렀다.

“제가 라틴음악에 정통했어요. 멕시코 노래인 ‘베사메 무초’를 잘 불렀답니다. 스페인 출신 성악가 플라시도 도밍고를 좋아했고요. 이동원 박인수가 부른 가요 ‘향수’도 잘 불렀지요. 왕년에 좀 잘 나갔어요(웃음).”

그는 동성애자로 살아온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후회만 남는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동성애는 겉으로는 애절한 사랑처럼 보였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열렬하게 붙어 다니다가도 미련 없이 헤어지는 등 지조나 정조와 거리가 멀었다. 불결하고 성병이 생기기 쉬워 인생 말로가 불행한 이들이 많았다. 그는 잠시 감회에 젖은 표정으로 동성애가 불행의 씨앗이었다고 한탄했다.

“다 죽었어요. 저보다 나이가 어린 데도요. 담배와 술, 무리한 항문섹스를 한 탓이죠. 저는 다행히 예수를 믿고 나선 안 했어요. 베스트 프렌드까지 죽고 저만 살아남았네요.”

성전환 수술을 받은 트랜스젠더들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성전환 수술을 받아도 제대로 성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일반 동성애자와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날 오후 김씨를 교회로 인도한 이 목사가 쪽방을 찾았다. 이 목사가 “형, 얼마나 고생이 많아, 많이 아파?”라고 인사말을 건네자 김씨는 “죽지 못해 사는 거지. 하나님이 빨리 안 부르시네”라고 답했다. “만약 하나님이 살 수 있는 시간을 더 준다면 무엇을 하고 싶어?”라고 이 목사가 묻자 “동성애에서 벗어나는 탈동성애 운동을 하거나 동성애자들의 삶이 얼마나 불행한지에 대한 책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김씨는 동성애에서 벗어나야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동성애자들에게 당부했다. 동성결혼 합법화에도 반대했다. 그는 “동성애로 인한 쾌락은 순간적일 뿐”이라며 “에이즈 확산을 막기 위해서라도 동성애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글·사진=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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