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희 서울대 일본연구소 소장 "감정적으로 일본 바라봐선 안 돼, 한일관계 풀려면 일본부터 제대로 공부해야"

백예리 기자 2015. 7. 28.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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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10년, 잃어버린 20년…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었던 일본은 근 20년 동안 예전의 명성을 잃어버렸다. 저성장, 저출산, 인구고령화의 늪에 빠져 성장 동력을 상실한 모습이다. 그렇다면 과연 일본은 이렇게 끝없이 추락해버릴 것인가. 정답은 '노(No)'다. 일본이 현재 동력을 상실한 채 무너지고 있는 듯 보이지만, 일본을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려놓았던 탄탄한 기반은 여전히 일본을 받치고 있다. 일본 기업의 성장기반인 원천적 기술경쟁력, 정통을 가겠다며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대하지 않는 장인정신, 지독할 만큼 철저한 일본인의 '고집', 미일동맹으로 뒷받침되는 안보력,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앞서 있는 일본의 군사력 등 한국이 가지지 못한 것과 앞으로 한국이 더욱 커나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일본은 여전히 손에 꽉 쥐고 있다.

그렇기에 일본은 우리에게 중요하다. 식민 지배, 위안부 문제, 독도 영유권 분쟁 등 해결되지 않은 과거사가 남아 있음에도 일본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재정립해야 하는 이유다.

▲박철희 소장은 "일본은 한국의 안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우호국이며 한일수교 이후 50년간 한국의 경제 성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며 "우리가 일본과 협력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한일관계가 악화일로(惡化一路)를 걷고 있다. 최근 한일관계는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있다. 아베 총리의 위험한 역사 인식은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는 한국인들의 반일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우호적이었던 기업 간 관계조차 위기 상태에 이르게 하고 있다. 독도 문제, 위안부 문제는 해결과는 점점 멀어지는 모양새다.

올해는 한일수교 50주년임과 동시에 광복 70주년인 해다. 지난(至難)했던 한일관계의 역사 속에서 한국이 나아가야할 길은 어디일지 박철희 서울대 일본연구소 소장을 만나 들어봤다.

"한일관계가 악화된 지금의 상황은 한일관계가 너무 좋아진 것에 대한 반동(反動)입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 문화개방을 선언했을 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들고 일어났었죠. 문화식민지가 될 거라는 우려에서였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죠. 문호를 열자마자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드라마 '겨울연가' 등이 일본에서 히트를 치면서 한류가 순식간에 일본 전역에 퍼졌습니다. 한국 기업의 약진도 하나의 원인입니다. 2010년 삼성전자의 매출액이 소니의 매출액을 넘어섰습니다. 자신들보다 한참 아래라고 생각했던 한국 기업이 커져서 일본 기업을 넘어선 것이죠. 한국을 우습게 봤던 일본인들이 졸도할 노릇인 겁니다. 지금의 혐한(嫌韓)·반한(反韓) 시류는 한국의 위상이 커진 것에 대한 일본의 질시, 경쟁심이라고 할 수 있어요."

박 소장은 한일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인해 한일관계는 많은 점에서 달라졌다. 보통 양국에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최소 3개월 안에 정상회담을 여는 게 관례인데, 현 정부가 들어선 지 2년 반이 지났는데도 제대로 된 정상회담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박 소장은 "외교당국 간 신뢰가 부족하다"며 "상대국을 의심하고 뒤에 꿍꿍이속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굳어지고 있다. 이렇게 서로를 믿지 못하는 것은 예전엔 없던 일들"이라고 말했다.

혐한 분위기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도 달라진 것 중 하나다. 박 소장은 "예전 일본 사람들은 한국에 불만이 있어도 밖으로 표출하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 혐한 시위 등으로 표현되고 있다"고 말했다. 헤이트 스피치란 특정 인종이나 국적·종교·성별 등을 기준으로 다른 사람들에 대한 증오를 선동하는 발언을 뜻한다. 지난 2013년 재특회(在特會·재일한국인의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 모임)를 필두로 한 일본 극우 세력이 재일(在日)한국인을 대상으로 헤이트 스피치를 하면서 한국에도 알려지게 됐다.

"혐한·반한 분위기가 언론에 집중 조명되기도 했지만 사실 그렇게 우려할 정도는 아닙니다. 이렇게 드러나는 혐한·반한파는 일본 전체 국민의 10%도 채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국에 호감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다는 얘기입니다. 상대적으로 보면 올해부터 혐한·반한파는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여전히 일본 사람들은 한국 드라마를 보고, 한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일관계가 극도로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왜 우리가 일본과 잘 지내야 하는가'란 의문을 갖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다. 한국과 일본이 함께 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65년 국교정상화를 할 때만 해도 한국이 일본의 투자를 받고 기술을 도입하고, 일본의 성공모델을 따라하면서 성장을 해야 하는 게 당연한 얘기였습니다. 이후 50년간 한국은 일본을 통해 성장했죠. 한일수교 이후 50년은 '한일 성공'의 역사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한국이 이렇게 성장하고 나니까 이제 '왜 일본과 협력해야 하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일본과 잘 지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는 게 재밌는 거죠."

박 소장은 그럼에도 우리가 일본과 협력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고 했다.

"우리가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미국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일본 없이는 미군의 도움을 받을 수 없어요. 일본은 한국의 안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중요한 우호국입니다. 미국이 한국에 군사를 보낼 때 해군, 공군 모두 일본 기지를 통해 와야 합니다. 주일미군기지와 탄약, 의복, 원유 등 일본의 후방지원이 없으면 미군이 움직일 수 없습니다. 경제를 볼까요? 한국은 한일수교 이후 단 한 번도 대일무역 흑자를 기록한 적이 없습니다. 옛날에 비해 부품의 국산화율이 높아지고 있지만 지금도 전자·섬유·화학 분야에서 부품·소재·기계 의존도가 높습니다. 한국 기업의 수출이 늘어나면 그만큼 일본에서의 수입이 늘어나죠. 또 일본은 세계 그 어떤 나라보다 한국과 생활습관이 비슷한 나라입니다. 과거사의 앙금을 제거하고 보면 쌍둥이 국가나 다름없습니다. 또 미국과 동맹국이라는 게 같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도 같아요. 공적개발원조(ODA), 평화유지활동(PKO) 등 국제사회에서도 한국과 일본이 협력했을 때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습니다. 이런 나라와 협력을 안 하면 누구와 협력하겠습니까?"

과거사 문제·한일협력 투 트랙으로 나아가야한일관계 개선이 불가피하다면 문제의 주체인 한국과 일본은 무엇을 해야 할까. 먼저 한국이 일본을 곱게 바라볼 수 없는 원인부터 짚어봐야 했다.

원인은 간단했다. 아베 정부가 들어서면서 본격화된 아베의 위험한 역사인식은 우리나라 국민들의 반일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침략의 정의는 정해진 게 없다", "위안부를 강제동원하지 않았다", "A급 전범은 일본의 관점에서 보면 순직자다"와 같은 아베의 발언은 대한민국 국민 정서상 절대 동의할 수 없는 내용임이 분명하다.

박 소장은 이에 대해 "아베의 역사 인식을 놓고 아베를 '나쁜 놈'이라고 규정한 뒤,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라고 했다.

"우리가 일본을 대할 때 필요한 자세는 '총체적으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거사 해결을 모든 대화의 전제 조건으로 하는 것은 결국 우리한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경제는 경제대로, 안보는 안보대로, 문화교류는 문화교류대로 가야 합니다."

박 소장은 과거사를 세 가지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죽은 과거와 살아있는 과거, 미래까지 남을 과거가 그것이다.

"죽은 과거는 과거사에 대한 인식입니다. 이것은 역사가의 영역으로 남겨두는 게 좋습니다. 과거에 무슨 일들이 일어났고, 어떻게 진행됐는가는 역사 연구가들이 서로 맞추면 됩니다. 살아있는 과거는 피해자가 살아있는 과거입니다. 위안부, 사할린 강제노역 이주민, 원폭 피해자 등 피해자가 살아있는 과거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미래까지 남을 과거는 재일교포 문제입니다. 갈등의 크기는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앞으로도 계속될 문제입니다. 역사가에게 맡길 부분과 지금 정부가 치열하게 협상으로 해결할 문제, 장기적인 플랜을 갖고 접근할 문제로 나눠 봐야 합니다."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일본의 태도 변화도 필수적이다. 박 소장은 "전범국가인 일본을 국제사회가 받아 준 이유는 전전(戰前)의 일본과 전후(戰後)의 일본이 바뀌었기 때문"이라며 "전전의 일본을 연상시키는 지금의 행태는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후의 일본은 군국주의에서 평화주의로, 파시즘에서 민주주의로, 군사대국에서 경제대국으로 바뀌었다는 전제 하에 국제사회에 받아들여졌다.

중국과 미국, 제3국과의 관계 설정도 놓쳐선 안 된다. 흔히 국제사회에서의 한국을 논할 때면 열강(列强)들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박 소장은 샌드위치적 특성을 잘 이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미국이 안보 제공자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됩니다. 국제정치학 용어로 얘기하면 미국은 역외 균형자죠. 국외에서 한국의 균형을 잡아주는 나라인 것입니다. 과거에는 한국을 도와줄 나라가 없었어요. 서구 열강이 모두 일본 편이었죠.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국가인 미국과 한국이 손을 잡고 있어요. 동아줄처럼 꼭 잡고 있어야 하는 것이 바로 미국입니다. 중국은 우리나라에 굉장히 큰 경제적인 이익을 주고 있죠. 북한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는 점도 중국과 협력을 중요시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한국은 중국과 일본, 양쪽을 끌어당겨서 한·중·일이 협력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박 소장은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정치네트워크의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과거 1970년대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종필, 박태준을 중심으로 한 개인적 네트워크가 한일외교의 또 하나의 채널이었다. 공식적인 채널 이외의 비공식적인 소통의 채널로 한일관계를 긴밀하게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정치네트워크의 기능이 거의 상실됐다는 게 박 소장의 설명이다.

박 소장은 "지금은 공식적인 외교 채널인 외교부도, 정치네트워크도 교류가 잘 안 되고 있다"며 "바람직한 방향은 공식적인 외교라인을 살리고, 그것이 가다가 골절됐을 때 한국과 일본을 이어줄 수 있는 정치네트워크도 활성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철희 소장은 "한국은 샌드위치적 특성을 잘 이용해 중국과 일본, 양쪽을 끌어당겨서 한·중·일이 협력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보수화 우려할 문제 아냐"박 소장은 몇몇 언론에서 '일본이 우경화, 군국주의화되고 있다'고 바라보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언론에 비춰지는 일부 일본 우익세력의 과격한 행동은 일본 전체를 대변하지 않는다. 일본은 '우경화'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보수화'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박 소장에 따르면, 1990년대 초 일본의 혁신정당은 서서히 몰락하기 시작했다. 온건 보수, 강경 보수 등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하고 있던 자민당에서도 90년대 들어서면서 온건 보수 세력이 약해지고 강경 보수 세력이 일어나는 현상이 발생했다.

일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던 혁신적인 시민사회도 세력이 분열되며 뿔뿔이 흩어졌다. 보수가 강화되고 혁신이 약화되면서 일본은 점점 더 보수화의 길로 가고 있다.

"일본의 보수화는 한국에 그다지 큰 위협은 아니라고 봅니다. 일본은 이미 국제사회에 진출해 있고 다른 보편적인 원칙에 맞춰 가야 하기 때문에 일부 우경화, 우익 세력이 주류가 돼서 일본의 시스템을 움직일 순 없습니다. 한국은 우익 세력과 한국에 우호적인 세력을 준별(峻別)해 우익 세력만을 차단할 수 있는 정교한 전략을 펴야 합니다.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일본인들은 끌어안고 가야 하는 거죠."

기자는 두 시간에 걸친 인터뷰 동안 한일 간에 얽혀 있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해법이 머릿속에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

"결국 한일관계 개선은 일본을 잘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고 일본을 잘 알아야 일본을 상대할 수 있어요. 우리처럼 일본을 모르는 나라가 없습니다. 일본을 알려고 하기보단 자꾸 무시하면서 깔보고 있죠. 일본이 추락하고 있다고 해도 여전히 국내총생산(GDP) 세계 3위 국가입니다. 1억2700만명이라는 인구와 일본의 기술력을 생각해야 합니다. 감정적으로 일본을 보고 우리만의 착각을 해서는 안 돼요. 일본을 정확히 알아야 한일관계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습니다."

▒ 박철희 소장은…1963년생. 86년 서울대 정치학과 졸, 88년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98년 미국 컬럼비아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91년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95~97년 일본 세계평화연구소 객원연구원, 99~2002년 일본 국립정책연구대학원 조교수, 현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국제학과 교수, 서울대 일본연구소 소장, 한국대통령평가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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