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동성결혼 소송, 사회가 받아들여야

곽이경 입력 2015. 8. 10.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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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곽이경 기자]

지난 6월 26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동성결혼이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백악관뿐만 아니라 내 페이스북 친구들의 프로필 사진도 속속 무지개빛으로 물들었다. 먼 나라의 일이지만 세상은 바뀌고 있다고 믿을 수 있을 것 같은 날이었다. 어느 정도냐면, 공중파 예능프로에서 연예인들이 동성결혼은 축하할 일이라며 함께 출연한 홍석천씨에게 "결혼하면 축의금을 50만 원 내겠다"는 약속까지 했으니 말이다.

단지 미국 때문만은 아니다. 현재 동성결혼을 제도화 한 국가는 21개국이다. 다양한 방식으로 동성 간 결합을 보장하는 나라는 더 많다. 가깝게는 대만이 동성간 결합 법제화에 착수했는데, 대만에서 동성결혼이 제도화된다면 이는 아시아 최초가 된다. 이런 흐름 속에 우리 사회에서도 지난 7월 6일 한국 최초의 동성결혼 소송의 첫 심문기일이 있었다. 질문이 시작되고 있다. 세상이 변할 수 있을까? 나도, 행복할 수 있을까?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 그것을 인정받지 못할 때

결혼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떠나서,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관계를 지켜보는 것이 기분 좋다. 내가 사랑하고 있을 때에는 행복하고, 누군가와 어려움 속에서 서로를 지켜주기로 약속할 때에는 안정감을 갖게 되고, 내가 맺는 관계가 이웃과 가족의 삶과 연결되면서 비로소 사회적으로 소속감을 갖고 존중받고 있다고 여기게 된다.

반면 제도적 차별은 성소수자들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성소수자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성소수자를 혐오하고 비정상으로 여기는 말과 행동은 정당성을 얻는다. 내가 사는 곳 어디에서도 나의 존재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하면 방법은 하나다. 자신을 숨기는 것. 그러면 내가 누리고픈 행복감, 안정감, 소속감과 자기존중감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 동성 간의 결합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은, 바로 이런 당연한 것들을 느낄 권리를 빼앗겠다는 것과 마찬가지 말이다.

관계를 법으로 보장받기 위한 법정에서의 고백

7월 6일, 한국 최초의 동성혼 소송 당사자인 김조광수와 김승환 부부는 긴장된 표정으로 변호인단과 함께 법원으로 들어갔다. 몇 시간 후 우리는 눈가가 벌겋게 된 이들을 다시 만났다. 부부는 성소수자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보장받는 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증명하기 위해 몇 시간동안 법정에 서서 내밀한 삶의 고백을 이어가야 했을 것이다.

만나고 사랑하고 결혼한 이야기, 가족들 이야기, 성소수자로 살면서 상처받았던 이야기, 배우자가 아파서 병원에 간 이야기, 노후 걱정…. 성소수자만 아니었다면 별다를 것 없는 스토리가 관계를 법으로 보장받기 위한 증거가 되었다. 법적으로 다투는 것과는 별개로, 그 순간 함께 눈물을 흘렸던 변호인단과 증인, 당사자들은 고백 끝에 놓여 있는 기막힌 차별에 깊이 공감하고 있었을 것이다.

수십 년 서로를 돌보고 의지하며 살아온 동성 가족이 있었다. 그런데 한 명이 먼저 죽었다. 남은 한 명은 혈연가족들에게 쫓겨나서 결국 자살했다. 동성 간 결합이 보장받지 못하는 한국사회에서 최근에 일어난 비극이다. 이렇게 사랑한 사람이 동성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삶을 통째로 부정당하기 일쑤였다.

나의 예전 파트너는 병원 신세를 많이 졌다. 내가 가족이 아니라 보호자가 못 되니까 보증금을 내고 입원하라는 말도 들었다. 투병 기간 동안 내가 실질적인 보호자였고 각종 치료를 결정하고 돈을 냈지만 병원은 내게 의료기록을 보여주지 않았다.

사망 후 각종 절차에서도 배제되었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가족을 이룬다는 것은, 법적 보장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어려움들을 대비하기 위해서인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김승환-김조광수 부부의 소송은 나의 소송이기도 하다.

적용받아야할 사람이 있기 때문에 제도를 고치고 새로 만드는 것

나는 아픈 파트너를 간병하는 동안 특히 더 불행했다. 성소수자로서의 내가 특히 더 불행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같아서 한동안 이런 이야기를 꺼린 적도 있다. 나는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불행했다. 병원에서는 관계를 숨겨야 했고, 가족들 사이에서는 유령처럼 지내는 시간이 지속됐다.

이제 나는 사회적 관계를 맺고 그대로 존중받는 것이 사람이 사는데 꼭 필요한 권리임을 안다. 나는 지금 노동조합에서 일하고 있다. 나는 여기서 모두에게 커밍아웃했고 나의 동료들은 내 파트너를 존중하고 자주 안부를 묻는다. 그리고 최근 규약을 개정하여 여기서 일하는 상근자들은 동성 배우자에 대해서도 가족수당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유는 간단했다. 성소수자가 이곳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소수자가 가족을 구성했는데 '너는 동성애자니까 안 된다'고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적용받아야 할 사람이 있기 때문에, 제도를 고치고 새로 만드는 것이다. 나의 성소수자 친구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대목은 내가 직장 동료들에게 자연스럽게 관계를 오픈한 것이다. 참으로 소박한 꿈이다.

인간으로 존중받고 살아내겠다는 의지는 혐오의 대상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동성애 때문에 가족제도가 무너진다거나, 조상이 피땀 흘려 세운 나라를 붕괴시킨다"는 혐오 선동을 용납할 수가 없다. 굳이 말하자면 성소수자들도 피땀 흘려 일하고 생계를 꾸려가는 평범한 노동자들이자 시민들이다.

공고한 가족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며 성소수자들에게 핏대를 세우고, 여성은 애 낳고 집에 들어앉아야 한다며 저임금, 비정규직을 강요하는 자들이야말로 우리의 정당한 피의 대가를 뺏은 자들이지 않나. 지독하게 차별적인 성역할을 강요하면서 부당한 대우에 순종할 것을 강요하는 자들 아닌가. 저들이야말로 낡은 고정관념에 기대어 세상의 혼란이 성소수자들에게서 비롯한다고 공격하는 자들이지 않았나.

우리 사회의 썩은 고정관념과 그에 기초한 제도가 성소수자에게, 이주민에게, 장애인에게, 여성들에게 얼마나 차별적인가. 그래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고 쓰레기처럼 취급되었는가. 이들은 우리를 제물 삼아 기득권을 유지하고 분노를 엉뚱한 데로 돌렸다. 내가 사회 속에서 한 인간으로 존중받고 살아내겠다는 의지가 찬반의 문제로, 혐오선동으로 둔갑하는 것을 어떻게 참을 수 있겠는가.

성소수자들의 '인간선언'-사랑하는 인간으로, 존엄한 인간으로 살겠다는 외침

물론 이 소송이 이런 문제를 다 해결하진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소송을 통해 세상에 물음표를 던질 수 있다. 무엇이 정의로운가? 한 인간의 삶을 존중한다는 것은 어떤 변화를 통해 가능한가? 우리의 존재를 인정하라는 것은 우리가 동등한 권리를 누리겠다는 요구와 동떨어져 있지 않다.

이 소송은 성소수자들이 사회 속에서 자존감이 무너진 채로 살지는 않겠다는 선언이다.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존중하고 불편함 없게 바꾸자는 것이 얼마나 당연한 건지 사회가 납득하도록 하는 과정에 이 소송이 있다. 이미 많은 성소수자들이 이웃과 정을 쌓고, 가족들에게 축복을 기대하며, 가면을 벗고 살겠다는 '인간선언'을 이어가고 있다.

얼마 전 시청광장에서 열렸던 퀴어문화축제와 자긍심으로 가득했던 도심 행진을 떠올려본다. 우리의 투쟁에 가장 큰 희망이라면 그것은 우리가 사랑을 원한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인간으로, 존엄한 인간으로 살겠다는 선언, 이것이 성소수자들이 벽장을 나와 행진하는 이유다. 성소수자들의 평등을 보장하는 권리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지금이지만, 그럼에도 사랑을 누가 막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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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곽이경은 성소수자가족구성권보장을위한네크워크 소속입니다.
- 천주교인권위원회 월간 소식지 <교회와 인권>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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