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표창원의 단도직입]'성 맹수' 범죄 피해, 국가가 사죄하라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2015. 8. 12.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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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발생해서는 안되는 일이 일어났다. 상습 성범죄 혐의로 징역 15년과 치료감호 처분을 받은 특수강간범 김선용(33)이 병원에서 탈출해 상점 여주인을 성폭행한 것이다.

그나마 피해 여성이 김선용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는 상담자 역할을 하면서 자수하도록 설득했기에 추가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스스로 성충동을 조절하지 못하고 강박적으로 성폭력을 지속하는 자를 범죄심리학에선 ‘성 맹수(sexual predator)’라고 부른다.

미국 애리조나, 캘리포니아, 뉴욕, 플로리다 등 20개 주에서는 ‘성 맹수’들에 대해, 형기 만료 이후에도 성범죄자들만을 수용하는 특수 폐쇄시설에서 ‘재범위험이 사라졌다는 진단이 내려질 때까지’ 감금치료할 수 있는 ‘성 맹수 법(Sexually Violent Predator Law)’을 시행하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성 맹수’는 “①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후 ② 스스로 성충동을 조절할 수 없는 정신장애 내지 인격장애 진단을 받고 ③ 그 정신장애 내지 인격장애가 완치되지 않는다면 재범의 우려가 있다”는 3가지 요건을 충족한 자다.

김선용은 조두순, 김수철, 김길태처럼 이 세 가지 요건을 모두 갖추었다. 2010년 6월 3차례에 걸쳐 흉기로 여성들을 위협해 성폭행한 혐의로 15년형을 받았고, 스스로 성충동을 조절하지 못한다는 호소에 따라 정신과에서 ‘성적선호장애’와 ‘경계성 인격장애’ 진단을 받았다. 이로 인한 재범우려가 확실하다고 판단한 사법부에선 ‘치료감호’ 처분을 내렸다. 인권침해 우려 등으로 인해 ‘성 맹수 법’을 제정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형집행과 치료감호 처분이 집행되는 동안이라도 철저하게 감금, 통제해야 한다.

피해자학에서는 일반적인 범죄 발생에 대해 ‘국가책임론’을 주장한다. 국가의 뚜렷한 고의나 과실이 없었다 하더라도, 국민을 범죄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한다는 헌법적 책무에 실패해 범죄가 발생했으며, 범죄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국가의 보건, 복지, 교육, 문화 행정의 실패가 상당부분 기여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 범죄피해자 보상제도’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하물며 이번 사건처럼 국가(법무부 치료감호소)의 명백한 중과실이 직접적인 원인인 범죄에서야 오죽하랴. 그런데 국가에서는 이 사건 피해자에 대해 지방자치단체에서 ‘생활비 명목의 보상’이 있을 것이라는 무책임하고 모호한 발언을 내놓고 있다. 피해자는 국가의 어처구니없는 중과실 때문에 날벼락 같은 피해를 입었다. 그 트라우마는 평생을 걸쳐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회복이 가능한 심각한 피해다.

게다가 피해자의 초인적이며 영웅적인 인내와 희생, 노력으로 추가 피해 없이 김선용의 자수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우선 법무부 장관이든, 보호관찰소장이든, 국민안전처장이든, 경찰청장이든, 국가의 대표가 피해자를 찾아가 무릎 꿇고 사죄하라. 관련법이 충분한 보상과 치료와 지원을 해 줄 수 없다면 국민에게 성금을 내주십사 간청이라도 하라.

이미 이런 상황을 대비해 ‘피해자 지원 기금’을 설립해 둔 지 오래다. 법과 규정, 선례를 입 밖에 꺼내는 것 자체가 무지요, 무례요, 무식이다.

국민은 국가를 위해 세금을 내고, 의무교육을 이수하고, 노동을 행하며, 남성의 경우 국방의 의무를 이행한다. 국가는 국민의 ‘안전과 복지’를 보장하고 증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국민은 국가를 위해 언제나 자신의 몫 이상을 해 왔다. 늘 문제는 국가나 그 대리인들이 야기했고, 그 뒤처리도 제대로 해오지 않았으며, 오히려 일부 사건에서는 피해자들을 능멸하고 모욕해 왔다.

이제 그래서는 안된다. 선진국의 상징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며 ‘아시아의 선도국’을 자처하는 대한민국,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단 한 사람에게라도 피해를 입혔다면 정중한 사과와 충분한 보상, 치료와 치유의 의무를 다하는 ‘제대로 된 국가’의 모습을 갖추어야 한다. 범죄 피해의 치유는 책임 있는 자의 반성과 사죄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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