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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아빠 때문에 해외여행도 못가요"

세종 입력 2015. 08. 15. 11:00 수정 2015. 09. 03.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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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우의 '관심(官心)']공무원들의 휴가

[머니투데이 세종=정진우 기자] [편집자주] 관료들의 생각과 얘기를 통해 어려운 정부 정책을 쉽게 알아보는 코너입니다. 정책 기사에 직접 담지 못한 관료들의 고민도 전합니다. '관료들의 마음'(官心)을 통해 관료사회와 더불어 정책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보여드립니다.

[[정진우의 '관심(官心)']공무원들의 휴가]

'해외여행 금지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3개월도 안 된 지난해 7월 초. 한 정부부처 공무원에게 날아온 휴대폰 메시지입니다. 같이 식사를 하다가 우연찮게 봤습니다. 해당 부처에서 단체 발송한 문자였습니다. '금지'라는 단어에 깜짝 놀랐습니다. 독재국가도 아닌데...너무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무리 공무원이라도 본인 휴가를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건 문제가 있다'는 게 제 생각이었습니다. 곧바로 기사를 썼습니다. 머니투데이 보도참조 [단독]공무원·공기관, 여름휴가 해외여행 자제령

공직사회에 난리가 났습니다. 국민들도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날 인터넷 포털 사이트엔 실시간 검색어(공무원 해외여행 금지)로 등장했습니다. 공무원들은 사실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저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저 멀리 전라남도에서 근무하는 선생님의 전화도 받았습니다. 시아버지 칠순을 기념하기 위해 가족끼리 해외여행을 가려고 했는데, 예약을 취소해야하냐고 물어왔습니다. 이메일도 많이 받았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선 해명자료를 배포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여파로 경기가 침체됐기 때문에, 공무원들이 가급적 국내여행을 하기 바란다는 취지였지 금지하진 않았다'는 게 골자였습니다. 문체부는 각 부처에 국내여행 독려를 전달하는 과정에 오해가 생겼다고 항변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그 문자를 보여준 관료를 비롯해 많은 공무원들 사이에선 해외여행은 사실상 금지된다고 했습니다. 장차관을 비롯해 실국장 등 대다수 관료들이 해외여행을 가지말고 국내여행을 가라고 하는데 어떻게 해외로 나갈 수 있냐는 얘기입니다. 어쨌든 그날의 헤프닝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정확히 1년 후. 이번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여파로 국내 경기는 더욱 위축됐습니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각 부처는 공무원들에게 앞다퉈 국내여행을 독려했습니다. 100만명에 달하는 공무원이 내수활성화에 적극 나서야한다는 논리였습니다. 지난해 헤프닝을 의식해서였을까요. 제가 알아본 결과 이번엔 '해외여행 금지' 문자를 보낸 부처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일부 부처에선 볼멘소리가 나왔습니다. 한 부처는 휴가기간에 직원들에게 어촌마을을 다녀오도록 했습니다. 메르스로 타격을 입은 지역에 경제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강제사항은 아니라고 했지만, 일부 관료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휴가는 말그대로 리프레쉬입니다. 미지의 세계 혹은 그동안 가고 싶었던 곳에 가보는 게 휴가입니다. 왜 휴가지를 정해주나요?"라고 말이죠. 공무원은 국민과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긴하지만, 휴가라는 건 공무원 이전에 인간으로서 누려야할 인권이란 논리였습니다. 격무에 시달리며 매일 야근하고, 주말도 없이 일하는 관료들에게 주어지는 며칠간의 휴가 만큼은 제대로 보장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중앙부처 한 관료는 "아들녀석이 아빠 때문에 가고 싶은 곳도 못간다"며 "휴가만이라도 마음 편하게 가고싶다"는 속내를 꺼냈습니다.

휴가와 관련해 관료들의 불만은 또 있습니다. 바로 다음주 17일부터 20일까지 진행되는 을지연습(훈련)입니다. 매년 8월 셋째주. 광복절이 지나고 일주일 정도 실시하는 전쟁대비 비상훈련입니다. 이 훈련때문에 휴가 사용에 제약이 많다고 하네요. 50만명에 달하는 중앙·지방공무원을 비롯해 공공기관 직원들은 이때 모두 정상근무를 합니다.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미군과 함께 군사훈련을 병행하는 기간으로 정해져 을지훈련 시기는 항상 이때로 정해진다고 합니다. 일부 부처에서 국방부 등에 훈련시기 조정을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하네요.

가족 여행을 위해 휴가를 맞추다보면 항상 이 기간을 제외해야하는 탓에 불만이 많습니다. 이를테면 기획재정부의 경우 매년 세법개정안(매년 7월말~8월초)과 예산안(9월초) 작업 등으로 휴가를 8월에 다녀와야하지만 한 주를 빼고 잡아야하니 선택의 폭이 좁습니다.

관료들은 내수를 살린다는 정부가 여름 휴가철에 50만명(가족까지 포함하면 최대 200만명 이상)의 발을 묶어 놓는 건 문제가 많다고 입을 모읍니다. 더구나 14일부터 코리아 그랜드세일이 시작됐지만, 관료사회는 훈련 준비에 여념이 없다고 하네요. 경제를 살리기 위해 법까지 바꾸며 많은 정책을 쏟아내는 정부가 왜 훈련 날짜 하나 바꾸지 못하느냐는 한 관료의 푸념이 미묘한 여운을 남깁니다.

"전쟁에 대비한 비상훈련이라면 8월보다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이 적합하지 않나요? 훈련 날짜를 바꾸면 내수활성화에 분명 도움이 될텐데, 왜 못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네요."

세종=정진우 기자 econpho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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