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에 걸친 마라톤 협상 끝에 지뢰와 포격 도발에 대한 북측의 사과를 이끌어 낸 ‘숨은 주역’은 국민의 성숙한 대응이었다. 박근혜 대통령도 협상이 타결된 직후인 어제 오전 민경욱 대변인을 통해 “정부와 군을 믿고 큰 동요나 혼란 없이 차분하게 일상생활에 임해 주신 국민의 단합되고 성숙한 대응이 당국자 접촉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가져왔다”며 감사의 뜻을 밝혔다.
이번 남북 고위급 접촉 과정에서 국민이 보여 준 성숙한 시민의식은 괴담과 유언비어를 몰아내고 북한의 전쟁 위협마저 물리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과거 천안함 도발이나 대북전단 살포 때 보수와 진보, 여당과 야당으로 갈려 대립하고 분열하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전시(戰時)를 방불케 할 정도로 수십 발의 포격이 오가는 엄중한 상황에서도 국민은 우왕좌왕하거나 유언비어에 동요하지 않았다.
북한의 대남 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 TV’가 “남조선에서 전쟁 공포증이 만연했다”며 “아침부터 라면·음료수 등 식료품을 사려는 사람들로 인해 백화점이 아수라장이 됐다”는 얼토당토않은 동영상 방송을 내보냈지만 사재기는커녕 오히려 이런 내용을 조롱하는 글들이 인터넷·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퍼져 나갔다. 또 “군 입대를 기피해 해외로 떠나는 사람이 2~3배 늘었다”는 북한의 선전 내용을 비웃기라도 하듯 제대를 앞둔 사병들의 전역 연기 신청이 줄을 이었다. “전우들과 함께 위중한 지금의 상황을 함께할 것”이라며 전역을 보류한 젊은이들의 건강한 안보의식과 전우애가 “전쟁도 불사하겠다”며 위협하던 북한 당국의 손을 들게 한 원동력이 된 것이다.
정치권이 이례적으로 한목소리를 내며 초당적으로 협력하는 모습을 보인 것도 평가할 만하다. 특히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지난 22일 북한의 서부전선 포격 도발 직후 긴급 회동을 하고 ▶북한의 추가 도발 중단 ▶남북 당국 간 대화 촉구 ▶여야 간 정쟁 중단과 초당적 협력을 다짐하는 등 기민하게 움직였다.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여야가 협력하며 똘똘 뭉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북한의 오판을 막고 정부의 협상팀에 힘을 실어 주는 지렛대 역할을 한 것이다. 이런 선제적 대응이 있었기 때문에 ‘징집 명령’ 운운하는 SNS 괴담과 유언비어가 설 땅을 잃고 말았다는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가적 위기상황과 안보에 있어 정치권이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야말로 남남 갈등을 막고, 나아가 북한을 대화의 테이블로 나오게 하는 데 결정적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교훈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Copyrightⓒ중앙일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