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에 웬 빨간 김치?..'오류투성이' 국정교과서

2015. 9. 1.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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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초등 5학년 사회교과서 살펴보니

대전까지 고조선 세력권 서술 등

사실 오류에 맞춤법 오기 곳곳에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들은 이번 2학기부터 학교에서 정식으로 쓰기 시작한 5학년용 사회 교과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110쪽 '문화재를 통하여 고려 문화의 우수성을 알아봅시다'에 수록된 삽화(사진)를 보니 밥상 위 고려청자 식기 안에 붉은 반찬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이 학교 교사 5명이 이구동성으로 "김치"라고 말할 정도로 '김치 그림'처럼 보이는데, 고추는 조선 후기에야 국내에 들어왔다는 게 역사학계의 정설이다. 익명을 요구한 이 학교 교사는 "김치라고 단정할 순 없지만, 학생들한테 고려 시대에 빨간 고춧가루 김치를 먹었다는 혼란을 줄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한겨레>가 31일 박근혜 정부 들어 처음으로 발행된 국정교과서인 '초등 5학년 2학기 사회'를 살펴보니, 명백한 사실 오류, 혼란을 줄 수 있는 모호한 표현, 비문 등이 여러 곳에서 발견됐다. 초등학교는 5학년 2학기(전근대)와 6학년 1학기(근현대)에 배우는 사회 교과서가 '역사' 과목이다. 박근혜 정부는 학생들의 혼란을 막겠다며 현행 검정제인 고교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검토하고 있는데, 정작 국정으로 발행한 초등 역사 교과서가 학생들한테 큰 혼란을 주고 있는 셈이다.

같은 교과서 27쪽을 보면 학계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모호한 서술이 문제가 된다. 지난해 5월 보물 1823호로 지정된 농경문 청동기(농경무늬 청동기)의 사진에 '이를 통해 고조선 사람들의 농사짓는 모습을 짐작해 볼 수 있다'는 설명이 덧붙여져 있다. 그러나 농경문 청동기는 대전에서 출토된 것으로 알려진 유물로, 대전은 고조선의 세력권 밖에 있었다. 요컨대 농경문 청동기는 고조선 유물로 보기 어렵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한 연구자는 "고조선을 대전까지 확대해서 보지는 않는 게 연구자들의 일반적인 견해"라며 "농경문 청동기는 '고조선 시대'보다는 '청동기 시대'라는 표현이 정확하다"고 짚었다.

이 연구자는 다만 "고조선과 청동기가 동시대니까 동시대 유물을 통해 고조선 사람들의 농사짓는 삶을 미루어 유추해 보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사실관계와 맞춤법의 오류도 여럿이다. 91쪽을 보면 '송은 당 말기의 혼란기를 이겨내고 중국을 통일하였다'는 설명이 나온다. 역사적으로 당은 907년 멸망했고, 송은 960년 건국했다. 송은 '당 말기'가 아니라 '당 멸망 뒤' 중국을 통일했다는 표현이 맞다. 88쪽엔 '생각을 버려야겠구만'이라고 돼 있는데 이는 '생각을 버려야겠구먼'의 틀린 표현이다.

편수용어와 교과서의 표현이 달라 혼란을 주는 사례도 있다. 국사편찬위원회의 편수용어는 '팔만대장경'인데, 이 교과서 112쪽에서는 별도의 설명 없이 팔만대장경을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이라고만 해놨다. 문화재청은 "국가지정문화재 체계상으론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이 맞고, 학술적으론 재조대장경판 등으로 불리고, 일반인들은 팔만대장경으로 부르는데 어떻게 통일할지는 정리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역사 과목에 관심이 많은 한 초등학교 교사는 "초등 교사들은 중·고교와 달리 해당 과목 전공자가 아니라 교과서의 오류를 짚어내기가 힘든데 교과서의 정확성이 떨어져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국정 집필 체계가 체계적이지 못하다 보니 오히려 경쟁이 치열한 검정보다도 못한 교과서가 나오는 것 같다"며 "중·고교 교과서를 국정화할 게 아니라 초등도 검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한경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은 "오류는 정오표를 배포해 바로잡는 것이 역사를 처음 배우는 초등학생들의 혼란을 최소화하는 길"이라고 밝혔다. 역사교육연대회의는 다음주 초 초등 5학년 2학기 사회 교과서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기자회견을 연다. 도종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도 이 교과서의 맞춤법 오류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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