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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일상 톡톡] "이런 XX, X같네" 악플러 이렇게 고소하라고?

김현주 입력 2015. 09. 04.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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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검찰청은 일명 ‘인터넷 악성댓글 고소사건 처리방안’을 시행했다. 다수의 악성 댓글작성자를 고소한 후 부당하게 합의금을 요구할 경우, 공갈죄 또는 부당이득죄로 형사처벌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당시 허위 인터뷰 논란을 일으켰던 당사자가 고소남용 사례자 중 하나로 지목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1500여명의 악플러를 모욕죄로 고소한 후 거액의 합의금을 종용했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모욕죄 관련 논란에 대해 알아본다.

상대방과 시비가 붙은 상황에서 상대를 지칭하지 않고 혼잣말로 욕설을 내뱉은 경우 모욕죄를 인정할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와 눈길을 끈다.

서울서부지법에 따르면 김모(35)씨는 지난 2013년 10월 어느 날 술을 먹고 밤늦게 지하철을 타고 있었다. 졸음 결에 그는 옆자리에 앉은 A씨의 허벅지에 자신의 MP3를 실수로 두 차례 떨어뜨렸다. 이 일로 김씨는 A씨와 시비를 벌이다 급기야 함께 지하철에서 내렸다. A씨는 김씨가 끝내 사과를 거부하자 역무실에 신고하려고 계단을 먼저 올라갔다.

그때 A씨보다 두세 계단 아래 서 있던 김씨가 갑자기 "이런 XX, X같네"라는 욕설을 내뱉었다. 당시 계단 주변에 있던 승객 몇 명이 열차를 기다리다 욕설을 듣고 김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A씨는 김씨가 자신을 공개된 장소에서 모욕했다며 그를 고소했다. 1심 재판부는 김씨에게 형법상 모욕죄를 적용해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

김씨는 억울하다며 항소했다. 그는 "이런 XX, X같네"라는 말을 한 사실이 없을뿐더러,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혼잣말을 내뱉었을 뿐이어서 A씨를 모욕한 게 아니라는 논리였다. 항소심인 서울서부지법 형사1부는 김씨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판단해 원심을 깨고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김씨가 '이런 XX, X같네'라는 말을 했고 당시 계단 주변에 여러 명이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되지만, 그가 피해자보다 두세 계단 아래 서 있었던 점 등을 고려할 때 욕설이 구체적으로 김씨를 향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김씨가 단순히 화가 나 욕설한 것으로 볼 수 있고, 모욕의 정도도 일상에서 상황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을 때 흔히 쓰는 수준이라는 점 등을 볼 때 A씨의 사회적 평가를 훼손할만한 모욕적인 언사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온라인 게임 중 채팅창에서 주고받은 욕설로 경찰서에 가는 일이 잦아지다 못해 아예 인터넷에 형사고소 요령을 안내하는 일종의 '매뉴얼'까지 돌고 있다. 가뜩이나 사소한 모욕죄 관련 사건으로 업무에 과부하가 걸린 경찰은 최근 이런 매뉴얼을 참고로 한 모욕죄 고소 사건이 몰려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후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온라인 게임을 다루는 한 유명 웹사이트에는 지난 7월 중순경 게임이나 인터넷상에서 채팅을 하다 지속적으로 욕설을 당하고서 모욕죄로 고소한 경험을 정리한 후기가 올라와 인기를 끌고 있다.

글을 쓴 누리꾼은 모욕죄가 성립하려면 피해자가 누구인지 드러난 '특정성'과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모욕을 당한 '공연성'이 성립해야 한다는 법 이론부터 제시한다. 그러면서 익명의 닉네임(별명)을 쓰는 온라인 게임 공간의 특성을 고려해 모욕죄 성립 요건 중 특정성을 갖추는 방법을 소개한다.

그는 채팅에서 자신에 대해 욕설이 나오기 시작하면 자신이 사는 곳과 이름·전화번호를 채팅창에 쳐서 신분을 밝히라고 조언한다. 이렇게 하면 자신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드러나 특정성이 성립한다는 설명이다. 게임 채팅방에는 보통 여러 사람이 참여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가해진 욕설을 제3자가 볼 수 있어 공연성도 성립한다고 이 누리꾼은 덧붙였다.

신고 방법에 관한 자세한 설명도 있다. 우선 그는 "경찰은 피해자 편이 아니다"라고 단언하고, "경찰이 아닌 거주지역 담당 검찰청의 사이버민원을 통해 신고하라"고 조언한다. 경찰에서는 인터넷상 모욕죄 고소가 들어오면 각하하는 경우가 많지만, 검찰이 고소장을 받아 사건을 경찰에 맡기면 어쩔 수 없이 수사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해당 게시글에는 욕설한 상대방이 확인되면 합의하는 요령, 합의하지 않고 소액 민사소송을 내는 방법까지 설명되어 있다.

실제 일선 경찰서에는 최근 이 누리꾼이 조언한 내용과 비슷한 방식으로 게임 중 욕설에 대응하고서 상대를 고소한 사건들이 계속해서 접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경찰은 고소인이 채팅창에 어떤 개인정보를 얼마나 노출했는지 등 상황을 종합적으로 따져보면 당사자가 특정됐다고 보기에 부족해 각하해야 하는 경우도 분명히 있어, 무조건 수사를 시작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이런 종류의 모욕죄 고소 사건은 가해자가 사과하거나 합의금을 주면 쉽게 취하되기도 한다. 꼭 상대방의 처벌을 요구하기보다 자신이 느낀 모욕에 대한 심리적·물질적 보상을 받고 끝내려는 이들이 많아 경찰로서는 ‘맥 빠지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런 탓에 모욕 행위를 형사처벌 대상에서 빼야 한다는 일부 법학계의 의견에 동의하는 경찰관도 적지 않다. 게임상의 욕설이 심각하긴 하지만 이는 문화적 성숙도의 문제일 뿐 국가가 처벌할 대상은 아니라는 견해다.

2013년 헌법재판소가 모욕죄를 합헌 결정했을 때 재판관 8명 중 3명은 "사이버 공간의 모욕적 표현은 주로 청소년들의 충동적 행위이며, 이들을 범죄자로 만들기보다 게시물 삭제나 게시판 접근 금지조치 등이 바람직하다"는 반대 의견을 낸 바 있다.

김현주 기자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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