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한겨레

"국정교과서, 사학자도 모르는 내용을 역사적 사실로 서술"

입력 2015. 09. 08. 10:20 수정 2015. 09. 08. 10:20

기사 도구 모음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한겨레] 박근혜 정부 첫 국정교과서 보니

'초등 5-2 사회' 분석역사교육연대회의 중간 발표고구려 비사성 위치 틀리고노비 신분 풀어주는 문서 사진을'노비문서'라고 잘못 설명'귀족 반대로 시험 못치러' 부분엔신라사 연구자 "처음 듣는 얘기"도종환 의원, 비문·오탈자 등 지적

"교학사 교과서 파동도 있고 해서 <초등 5학년 2학기 사회(역사)>는 깔끔하게 발행됐으리라 기대했는데 정반대였다. 전공자인 나조차 알지 못하는 내용이 역사적 사실인 양 서술됐다."(하일식 연세대 사학과 교수)

일곱개 역사 관련 단체 모임인 '역사교육연대회의'(연대회의)가 7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흥사단에서 '<초등 5-2 사회> 교과서 분석 결과 중간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교과서는 박근혜 정부의 첫 국정교과서로 이번 2학기부터 전국의 모든 5학년 학생이 사용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역사적 사실에 입각한 오류 없는 교과서'를 표방하며 중·고교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고 밝혔으나 정작 그 첫 작품부터 '오류투성이'인 것으로 나타났다. 새정치민주연합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 특별위원회' 도종환 위원장도 이날 같은 교과서의 교열·교정을 전문가한테 의뢰해보니 수십개의 비문과 오탈자, 띄어쓰기 오류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이런 사정 탓에 <초등 5-2 사회>는 정부가 내세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리의 허구성을 반박하는 '살아있는 증거'라는 지적이 나온다.(<한겨레> 1일치 1면 참조)

연대회의는 "(초등 국정교과서의) 충격적인 실상에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정부와 여당이 그토록 국정제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교과서의 꼴을 제대로 갖출 최소한의 책임감과 시스템을 결여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방지원 신라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초등 교과서를 읽다 아이들 말로 '멘붕'(심리적 붕괴)이 왔다. 다섯줄 이상을 편하게 읽을 수가 없는 교과서였다"고 말했다.

이 교과서엔 명백한 오류조차 바로잡히지 않은 채 버젓이 실려 있다. 152쪽을 보면 "노비는 주인의 소유물이나 재산으로 취급되어 매매나 상속의 대상이 되었다"는 설명과 함께 '노비문서' 자료사진이 실렸다. 그러나 이 사진은 몸값을 내면 노비의 신분을 풀어 양민이 되게 한다는 '노비 속량 문서'다. 교과서 마지막 장 '문화재 지도'에서는 고구려 비사성의 위치를 중국 진저우에 점찍어 놨다. 전문가들은 비사성은 그보다 아래쪽, 현재의 다롄에 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정확한 역사 이해에서 비롯된 오류도 많다. 89쪽을 보면 "(신라 때) 나라에서는 국학에서 공부한 학생들 중에서 시험을 치러 관리를 뽑으려고 하였지만, 귀족들의 반대로 시험을 치를 수 없었다"고 쓰여 있다. 연대회의는 "통일신라의 독서삼품과는 중하급 실무자를 선발하는 정도였고, 높은 벼슬은 진골이 독차지했다는 점을 제대로 서술해줘야 한다. 귀족들의 반대로 시험을 치르지 못했다는 건 신라사 연구자도 처음 듣는 이해할 수 없는 서술"이라고 비판했다.

역사 인식을 왜곡할 정도의 '과도한 축약'도 문제로 지적됐다. 부여와 삼한에 대한 설명이 없이 고조선에서 바로 삼국시대로 건너뛴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연대회의는 "고조선 단원에 이어 바로 삼국과 가야가 등장한다. 고구려·백제의 기원이 되고 5세기 후반까지 존속한 부여에 대한 서술이 전혀 없다"고 짚었다. 하일식 교수는 "이 교과서만 보면 학생들은 고조선에 이어 바로 삼국시대가 시작된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며 "아무리 초등학생용 교과서라고 해도 타당하지 않다"고 짚었다.

도종환 의원실은 21쪽 '나무로 성벽을 세워'(성벽이 아니라 울타리가 맞는 표현), 55쪽 '지난번 고구려에게 당한 치욕을'(지난번 고구려에 당한 치욕을) 같은 오류를 찾아냈다. 도 의원은 "박근혜 정부는 대통령 임기 내인 2017년부터 국정교과서를 적용하겠다고 하는데, 1년6개월도 남지 않은 기간에 졸속으로 만들 교과서가 어떤 모습일지는 불 보듯 뻔하다"며 국정화 추진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Copyrights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