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범은 남자" 말 못하는 미디어의 속사정

유성애 입력 2015. 9. 16. 17:14 수정 2015. 9. 16.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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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기사_남성성별_표기운동' 해시태그 화제.. "성별표기 하지 않는 게 바람직"

[오마이뉴스 유성애 기자]

▲ "뉴스기사_남성성별_표기운동" 해시태그 물결 최근 트위터 누리꾼 사이에서 '#뉴스기사_남성성별_표기운동'이라는 해시태그가 화제다. 뉴스 기사에서 대개 범죄 피해자로 나오는 여성은 나이와 성별이 특정되지만, 가해자인 남성은 그렇지 않아 범죄의 특성이 가려진다는 것이 운동이 일어나게 된 이유다.
ⓒ 트위터 화면 갈무리
"남성은 인간의 보편성 뒤에 숨고, 여성만 개별적인 성별로 전면에 내세우는 언어사용을 보면 너무 화납니다. 기사 쓸 때 성별을 아예 표기하지 말거나, 아니면 남성도 성별표기 해주세요." (ID @zr***)

"(기사에) 성별을 표기한다면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함께 표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여성과 남성이 각 절반씩을 차지하는 세상에서 남성을 보편적인 성이라고 하기는 힘듭니다." (ID ?@openKk*****)

최근 트위터 누리꾼 사이에서 '#뉴스기사_남성성별_표기운동'이라는 해시태그가 화제다. 문자 그대로 신문과 방송, 인터넷 등 뉴스 기사에서 남성의 성별을 표기해 달라는 요청이다. 뉴스 기사에서 대개 범죄 피해자로 나오는 여성은 나이와 성별이 특정되지만, 가해자인 남성은 그렇지 않아 범죄의 특성이 가려진다는 것이 운동이 일어나게 된 이유다.  

이용자들은 특정 기사 링크와 함께 '#뉴스기사_남성성별_표기운동' 태그를 붙인 뒤, 잘못된 기사제목·내용을 직접 고쳐 다시 트윗하는 식으로 표기 운동을 한다. 예를 들어 지난 15일자 연합뉴스 '취업실패 분노에 행인 묻지마 폭행 20대 벌금형' 기사제목에 가해자 성별을 넣어, '취업실패 분노에 행인 묻지마 폭행 20대 남성 벌금형'으로 고치는 식이다.

이런 보도 행태는 주로 성추행·성폭력 관련 보도에서 나타난다. 일부 누리꾼(@llap*****)은 "여성은 공들여서 'OO녀'라는 별명까지 붙여주면서 남성 가해자는 성별을 안 쓰는 이유가 뭐냐, 디폴트라서 그런 거냐"고 비꼬기도 한다. 성범죄 가해자 중 남성이 '기본값'이기 때문에 기사 속에서 이를 굳이 특정하지 않는 것이냐는 지적이다.

여성·인권운동가 리베카 솔닛도 최근 자신의 저서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2015, 창비)>에서, 미디어 속 범죄자인 '총잡이, 단독범' 등을 예로 들며 "미디어는 그가 남자라는 사실은 말하지 않는다(49p)"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미디어는 성폭력 보도에서 아예 남성을 지워버리거나, '벤츠 여검사', '악마 여고생'처럼 선정적이거나 불필요한 경우에 여성을 호명하는 경우가 많다.

이 해시태그를 써서 공론화를 시도한 트위터 이용자 므큐(@zrvqt)씨는 인터넷 커뮤니티 '메갈리안'에 이런 점을 지적하며 "한국의 현 뉴스기사 성별 표기 및 기사 작성 준칙에는 여러 문제가 있다"고 썼다. 그가 꼽은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 성별 표기가 없는 기사 속 인물은 대개 남성이며 ▲ 다수 기사가 여성 혐오 범죄의 죄명을 뭉뚱그려 표기하고 ▲ 가해자 입장에서의 기사 서술·사진 첨부를 하고 있다는 것.

그가 꼽은 사례에 따르면, 언론은 남성 성별은 지우면서도 여성의 폭력성은 부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MBC는 지난달 20일, 지적장애 남성이 감금·폭행·성적학대를 당했다는 뉴스를 카드뉴스로 만들며 이를 "여고생 3명 등 10대 5명이 저지른 범죄"라고 소개했지만, 가해자는 사실 남자 대학생 2명과 여자 고교생 3명이었다. 므큐씨는 "남성의 가해행위는 사건에서 싹 지우고 여성의 폭력성만 부각하는 이유는 무엇이냐"고 꼬집었다. 

'강간'을 강간이라 안 쓰고, 가해자 변명 그대로 싣는 기사들  

▲ '왜 피해자 이미지만 부각시키나' 뉴스기사 성별표기 중 나쁜 사례들 좋지 못한 사례로는 '강간'이란 단어를 쓰지 않고 에둘러 '외도를 의심한 범죄', '거부하는 상대를 힘으로 제압해 강제로 성관계' 등으로 쓰는 기사들이 꼽혔다. 여기에는 '한순간 성욕에 의한 철없는 실수' 등 가해자 입장에서 서술하는 기사,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 이미지를 부각하는 사진 또한 포함됐다.
ⓒ 메갈리안 화면 갈무리
그는 또 여성·노인 등 신체적·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남성들의 '묻지마 폭행'을 뭉뚱그려 '묻지마 폭행'으로만 쓴다던가, 기사에 '강간'이란 단어를 쓰지 않고 에둘러 '외도를 의심한 범죄', '거부하는 상대를 힘으로 제압해 강제로 성관계' 등으로 쓰는 것도 좋지 못한 사례로 들었다. 여기에는 '한순간 성욕에 의한 철없는 실수' 등 가해자 입장에서 서술하는 기사,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 이미지를 부각하는 사진 또한 포함됐다.  

이런 지적은 트위터 뿐만 아니라 실제 사례 분석으로도 나온 바 있다. 지난 2009년 <한국언론정보학회>에 게재된 논문 '한국 신문에 나타난 강간보도의 통시적 분석(이정교 외 2명)'에 따르면, 조선·중앙·동아·한겨레 등 한국 주요 신문 4개사 강간 보도를 1990년부터 2007년까지 분석한 결과 강간 사건 관련 신문 보도는 주로 가해자 입장에서 서술됐다.

신문 내용을 분석한 논문에 따르면 "중립적인 입장(41.9%)과 가해자의 입장(39.5%)에서 서술된 기사의 비율이 모두 높게 나타난 반면, 피해자의 관점에서 서술된 기사는 전체의 18.6%에 불과"했다. 한국의 주요 신문들이 강간 피해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나타내는 증거인 셈이다.
 
이정교 경희대 교수는 이어 "부정적 의미에서 강간은 미디어의 입맛에 맞는 주제다, 이는 선정주의를 향한 미디어의 오랜 탐닉에 잘 들어맞고 서사적으로도 더 많은 재량권을 미디어 종사자에게 부여하기 때문"이라면서 "(그러나) 이런 흥미 위주 보도는 작게는 여성이 대부분인 범죄 피해자의 인격권을 말살하고, 크게는 강간에 대한 사회의 효율적 대응을 더디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므큐(@zrvqt)씨는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메신저 인터뷰에서 "궁극적으로는 성별을 아예 표기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는 게 바르다고 본다"며 "다만 이게 급진적이라면 우선은 남성·여성 성별을 모두 표기함으로써, 남성만을 보편적 인간으로 인식하게끔 하는 지금의 편견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언론은 어떻게 보도해야 할까.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가 발간한 '반(反) 성폭력 문화 확산을 위한 성폭력 보도 가이드라인(2006년)'에 힌트가 있다. 이에 따르면 미디어는 관련 보도를 다룰 때 ▲ 가해자 성욕의 문제로만 대하지 말 것 ▲ '피해자 유발론' 관점을 버릴 것 ▲ 가해자 변명을 부각하지 말 것 ▲ 심각한 성폭력 범죄를 가볍게 치부할 수 있는 단어('발발이' 등)를 쓰지 말 것 등을 유념해야 한다. 

이와 관련 이윤소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활동가는 "남성의 성별 표시를 안 하는 게 기사 매뉴얼처럼 굳어진 건데, 이것 자체가 성차별적"이라고 지적했다. 이 활동가는 "여성 성별이 보조적 혹은 부차적이기 때문에 따로 표기를 하는 것인데, 이런 관행들은 없어져야 한다"며 "성별이 중요하지 않다면 아예 표시하지 않는 게 낫다"고 덧붙였다.
○ 편집ㅣ박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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