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時評>흔들리는 로스쿨, 위기의 法學교육

기자 2015. 9. 17.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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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수 / 고려대 명예교수·법학

최근 들어 사법시험 존치 문제를 놓고 법조계, 특히 법학계 내부가 술렁거리고 있다. 4년에 걸쳐 많은 법조인을 배출한 전국 25개 법학전문대학원(법전원)은 이미 지원율 하락과 합격률 저하로 일말의 위기의식마저 느끼는 게 현실이다. 그나마 사법시험이 내년과 내후년에 걸쳐 폐지된 뒤 법조 인력의 독점적 공급원으로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을 수 있으리라던 기대마저 무산되면 법전원의 퇴락에 가속이 붙을 건 불을 보듯 뻔하다.

한 해 수도권 법전원 1040명, 지방 법전원 960명, 모두 2000명의 정원 중 변호사시험 합격률은 벌써 60%대로 떨어졌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졸업생 중에서 취업의 좁은 문턱을 넘지 못해 낙심하거나 방황하는 젊은이들도 점차 눈에 띄게 늘어날 추세다. '고시낭인(考試浪人)'을 양산한다던 사시의 오명처럼 고급 전문직 실업자를 양산한다는 오명을 법전원이 피해 가기 어려울지 모른다.

문제는 법전원 공식 출범 7년, 준비 기간까지 합하면 10년이 훨씬 더 된 지금, 우리나라 법학 교육의 사막화 현상이 여기저기서 감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시험을 통한 법률가 양성이 아니라, 교육을 통한 법률가 양성, 국제경쟁력을 지닌 법률가 양성이라는 당초의 달콤했던 구호들이 실은 국가 백년대계(百年大計)인 법학 교육 정책을 위기로 몰아갈 수 있는 사탕발림이란 점을 예견하면서도, 출범 준비 당시엔 경고 사인을 주기도 쉽지 않은 형편이었다.

거의 변호사시험 학원으로 전락한 법전원 교수들은 깊어지는 양극화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변시(辯試) 과목 전공 교수들은 강의와 시험, 평가 등의 과중한 업무에 눌려 깊이 있는 학문 연구의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 반면 비(非)변시 과목 전공 교수들은 폐강의 위기에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성적 공개가 가능해짐으로써 이제 좋은 성적표를 받아들려는 수험생들은 필사적으로 시험 과목이나 연관 과목에 더욱 집중하게 될 테고, 그렇게 되면 학문 공동체로서의 법전원은 더욱 피폐해질 것이다.

법률가 신분의 특정 대학 집중화와 특권화 폐해를 개혁한답시고 당시 노무현정부와 대법원이 의기투합한 결과 현재의 법전원이 서둘러 탄생했다. '검사와의 대화'에서 정권의 살기를 느낀 대법원장은 급히 일본을 둘러보고 온 뒤 로스쿨 도입 등 선수를 침으로써 대통령의 예봉을 피하는 데 골몰했지 법학 교육이 로스쿨 시스템으로 나가면 큰 시행착오를 겪으리라는 점에는 관심도 없어 보였다. 조직의 위신과 안일에 급급한 나머지, 법학 교육의 문제까지 고민할 식견이나 여력이 없어 보였다.

우리 역사에 이런 근시안적이고 무책임한 발상이 반복돼선 안 된다. 우리 민형사 실체법의 틀은 대륙법, 특히 독일법의 개념과 체계를 많이 답습한 것이다. 종전 4년제 법학 교육에서는 법률의 해석·적용에 앞서, 개념과 체계를 익히는 데 많은 노력이 필요했고, 그 위에 사례 풀이와 판례 정보가 활용됐다. 이를 위해 기본 강의 외에 연습, 방법론 등 고급 수준의 강의와 법률 소양을 제공하는 기초법 강의들도 풍성했다. 그런데 3년제 법전원은 기초 개념과 체계 등의 법적 사고(思考)를 길들이기도 전에 어설픈 실무교육과 뒤섞어 실제 전문가 양성은 고사하고, 부실한 기초공사의 위험을 안고 있다.

더욱이 종전에 각광 받던 국제법, 상법 등이 시험 과목의 영향 속에 위축되는 기현상들도 나타나고 있다. 수입 법학에서 자생적인 법학으로 발돋움하던 '우리 법학'에 관한 논의도 지난 10여 년 법전원 체제에서 발전은커녕 되레 위축된 감이 없잖다. 새로운 정책은 시행한 지 10여 년이 되면 면밀히 분석하고 문제점을 개선해 나감으로써 미리 시행착오를 줄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것은 법학 교수들의 몫이기도 하지만 정부와 대법원, 국회 공동의 몫이기도 하다.

사시 존치 여부를 마치 밥그릇 싸움으로 볼 일이 아니다. 법학 교육의 비정상을 정상화하기 위해 문제를 원점(原點)에서 새롭게 논의해야 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우리의 법률 시장은 좁고, 머잖아 포화 상태에 이르면 잡일 하는 변호사도 생길지 모른다. 우리보다 먼저 로스쿨 제도를 도입한 일본의 이원적 법학 교육 시스템이라도 눈여겨보길 바란다. 로스쿨이 실패해도 법학 교육의 뼈대는 의연히 작동할 수 있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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