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민 칼럼] 단군에서 근대화까지

한국일보 입력 2015. 10. 4. 10:13 수정 2015. 10. 8.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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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이 뚜렷해서였을까. 광물의 표본실여서였을까. 환웅은 이 땅에 내려왔다. 그가 내려온 이래 무슨 일들이 일어났나? 짐승들이 갑자기 인간이 되려고 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도대체 왜? 그 이유는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도 알 수 없다. 곰은 짐승답지 않게 어둠 속에서 쑥과 마늘을 먹었다. 한갓 인간이 되고자 곰이 겪었을 고통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어쨌거나 놀라운 곰은 원하던 인간이 되었다. 뜬금없이 인간이 된 곰과 결혼하려 나서는 사람은 없었기에 환웅이 “잠시” 웅녀와 결혼했다. 그리하여 태어난 단군은 이 땅을 다스렸다. 그 말로는 비참했다. 단군은 “중국”에서 제후로 파견한 기자(箕子)에 의해 산 속으로 쓸쓸하게 쫓겨났다. 그러나 인내력이 놀라운 곰의 후손답게 그는 포기를 모르는 존재였다. 산 속에서 오랜 시간을 버틴 끝에 산신이 된 단군은, 현재 사직공원 모퉁이에 있는 단군성전에 모셔져 있다.

반면 사직공원 한 가운데 남아 있는 사직단의 양식과 체제는, 과거 이 나라가 단군을 몰아낸 “중국”의 제후국이었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그 사실이 싫었던 제국주의 일본은 사직단을 파괴하고 대신 사직공원을 조성했다. 일제가 물러간 지 70년, 사람들은 이제 그곳에 조공국의 상징인 사직단 복원을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조공국 군주의 전례 공간이었던 사직단이 타율적으로나마 시민의 산책 공간으로 변할 무렵, 최초의 현대적인 도서관인 경성도서관이 멀지 않은 곳에 들어섰다. 이 경성도서관은 해방과 더불어 시립 종로도서관으로 이름을 바꾸고, 단군성전, 사직단과 더불어 사직공원 내에 자리하게 된다.

입시공부가 싫었던 나는 고교 시절 매주 토요일이면 이 종로도서관에서 열리는 독서모임에 나갔다. 남녀공학이 드물었던 그 당시에 타 학교 여학생들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였고, 다양한 배경을 가진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많지 않은 기회이기도 하였다. 모인 우리들은 매주 한 권씩 책을 읽었고, 성선설이니 자존심이니 하는 주제들을 골라 토론을 일삼았다.

거기서 우리는 장용학의 ‘원형의 전설’을, 김성한의 ‘바비도’를, 김승옥의 ‘환상수첩’을, 카프카의 ‘성’을,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를 읽었다. 보나마나 어설픈 독해였을 것이며, 치기 어린 토론이었을 테지만, 우리의 토론을 도왔던 선배들이라고 탁월한 혜안을 보여주었던 기억도 없다. 그래도 꾸준히 읽었고, 열심히 토론했다. 우리는 삼중당 문고 목록에 줄을 그어가며 군사정권이 경제개발 하듯 읽어나갔다.

그 모임을 통해서 처음으로 소주라는 것을 마셔보기도 했다. 어느 선배가 중국집으로 우리를 데려가서 소주를 한 잔씩 돌렸을 때, 망설이다 내가 침묵을 깨고 먼저 훅 마셨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아?하고 이어졌던 여학생들의 탄식. 우리는 매주 읽었고, 매주 만났고, 철마다 야유회와 체육대회를 했고, 연말이면 문학의 밤을 했다. 멋진 행사였다. 포스터와 유인물을 만들어 돌리고, 색종이로 행사장 길안내 표시를 하고, 종로도서관 시청각실을 빌려, 성대한 축제를 했다.

그리고 그 축제가 끝나면 문집을 만들었다. 그 문집의 제목 가지고 설왕설래하기도 했는데, 내가 제안한 문집 제목은 “글떼”였다. 개떼, 메뚜기떼 할 때의 그 떼 말이다. 어이없게도 이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이 독서모임에 대한 기억은 그 밖에도 아주 많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녹음도서 제작, 시시콜콜한 연애사, 너무 일찍 세상을 등지고 만 선배에 이르기까지…. 그 이후 나의 동기들은 어떻게 되었나. 혹자는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이민을 갔고, 혹자는 영화판에 뛰어들었다가 꿈을 접고 술집을 열었고, 혹자는 일본에 가서 국제결혼을 하였다 하며, 혹자는 극렬 운동권이 되기도 하였고, 혹자는 자기 동네에 제과점을 열었다고 한다.

사직공원을 지날 때면, 뜬금없이 인간이 된 곰이나, 상당수가 노비나 소작농이었던 어떤 조공국 왕조의 정치신학이나, 일제가 진행한 타율적 근대화 시도 대신, 입시교육을 벗어난 몇몇 학생들의 조촐하지만 자발적인 “근대화” 시도를 지원했던 시립도서관을 기억한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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