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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 국정교과서 집필 거부 확산.."시대착오적 발상"

입력 2015. 10. 15. 16:51 수정 2015. 10. 15.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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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화여대·성균관대·중앙대·부산대 등 속속 동참
역사 전공 교수들 “모든 절차에 협력 거부” 선언

국정 역사 교과서 집필 거부 움직임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연세대(13일)와 고려대·경희대(14일)에 이어 15일에도 동국대·부산대·서울시립대·성균관대·이화여대·전남대·중앙대·한국외대의 역사 전공 교수들이 집필 거부 선언에 동참했다.

이화여대 역사학 관련 교수 9명은 이날 성명서를 내어 “정부의 국정화 정책은 시대착오적이며 비민주주의·비교육적이고 21세기 국제적 상식에 현저히 어긋나는 것”이라며 “ 집필을 포함해서 국정 교과서와 관련된 모든 절차에 협력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고대로부터 역사가들이 강조한 역사서술의 자세는 “술이부작(述而不作)”이었다. 사실과 근거가 있으면 서술하고 해석하지만, 만들어 짓거나 창작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공자시대의 역사학이 이러했으니, 역사학의 보수성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역사학자들은 ‘역사적 사실’을 중시한다는 얘기다.

이들은 이어 “역사학은 ‘달면 삼키고 쓰면 내뱉는(甘呑苦吐)’ 학문이 아니다. 사실이 있으면 쓰고, 지도자의 공과는 엄정하게 평가한다. 이것이 사관(史官)의 정신이고, 사마천이 궁형(宮刑)의 치욕을 당하면서 세운 기초”라며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정책에 이르기까지 정부와 여당이 보여준 태도를 보면 정부가 역사를 통제하고, 창조하고, 이를 후세들에게 강요하려 한다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서울시립대·성균관대·중앙대·한국외대 등 4개 대학 사학과 교수 29명도 이날 성명을 내어 “국정 교과서의 집필 참여를 거부할 뿐 아니라, 국정 교과서 제작과 관련한 어떠한 과정에도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역사를 국정화하는 것은 전제정부나 독재체제에서나 행하는 일”이라며 “정부의 일방적인 지침에 따라 편찬된 역사교과서는 학생들의 다양한 인식과 창의력 그리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포용하는 민주주의적 사고능력의 성장을 저해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어 “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는 치열한 학문연구에 기반한 역사교과서의 지속적인 발전을 저해할 뿐 아니라, 특정한 역사인식만을 강요하는 주입식 암기 교육으로 전락할 우려가 크고, 국가권력이 자신의 필요에 따라 역사를 농단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며, 시대착오적인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 조치를 철회하고 역사교육을 정상화시켜 줄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동국대 역사교육과와 사학과 교수 8명도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절대로 허용되어서는 안 될 학문적, 교육적 폭거로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며 “만일 정부 여당의 의도대로 국정화가 시행된다면 우리들은 그 집필 및 감수를 비롯한 어떤 과정에도 일절 참여하거나 협조하지 않을 것이며, 이후에도 국정화 철폐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정부와 여당이 일부 독재국가에서나 행해지는 국가 주도의 국정교과서로 역사 교육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려는 것은 기존 검인정 교과서들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검토 없이 일부 내용이 자신들에게 불리하다는 선입관에 의한 것이며, 그 배후에는 정치권에 영합하기 위하여 분명한 근거도 없이 역사 교과서의 내용을 좌파적, 친북적이라고 비방함으로써 개인적 영달을 추구하는 일부 순수하지 못한 출세주의 연구자들의 선동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집필 거부 움직임은 지역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부산대 역사 관련 학과 교수 전원(24명)은 이날 “정치적 중립성과 자주성이 보장되지 않은 조건에서 교과서 집필에 참여할 때, 역사학자로서의 전문성은 제대로 발휘될 수 없고, 학문·사상의 자유라는 헌법 정신에도 위배된다”며 국정 교과서 집필 거부를 선언했다.

이들은 “헌법은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명시하고 있고, 자주성, 전문성, 중립성 3자는 솥발처럼 정립(鼎立)해야 한다. 역사학과 역사교육에 전문성을 가진 인사가 외압에 휘둘리지 않고 자주적으로 역사 교과서를 쓸 때 역사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확보될 수 있다”며 “현 정부는 국정제를 강행함으로써 헌법의 세 원리가 균형을 이루어 정립할 수 있는 전제 조건을 부정했다”고 밝혔다.

국정화를 강행한 교육부도 강하게 성토했다. 정치적인 외압을 막아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확보해야 할 교육부가 앞장서서 헌법 정신을 훼손하고 나섰다는 이유에서디. 이들은 “교육부는 ‘균형 있는 역사인식’을 기르게 하여 헌법 가치를 지키겠다고 말하지만, 정치권력이 학계, 교육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정제를 강행하는 것 자체가 헌법 가치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남대 역사교육과와 사학과 교수 19명도 국정 교과서 집필 거부를 선언했다. 2개 학과 교수 21명 가운데 장기 출장 및 해외 체류자 2명을 제외하고 모두가 선언에 참여했다. 이들은 “우리는 정부·여당이 국정화를 추진하려는 의도는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고 남북분단을 고착시키는 데에 있으며, 궁극적으로 자유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행위라고 믿는다”며 “우리는 향후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와 관련된 집필·제작 등 일련의 모든 과정에 참여하지 아니할 것임을 엄숙히 천명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학자적 양심과 역사교육의 정상화를 바라는 충정에서 다시 한 번 정부·여당에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시도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집필 거부 선언과 별도로 국정화를 규탄하는 교수들의 성명도 나왔다.

이화여대 교수 74명은 이날 성명을 내어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는 한국사회가 이룩한 제도적 성취와 국제적 상식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정책의 중단을 요구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교육의 자율성·다양성·창의성을 부정하고 교육의 중립성을 보장하는 헌법 정신을 훼손하며, 나라의 국격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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