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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징금 무리하게 때렸다가.. 세금 1070억 날린 공정委

곽창렬 기자 입력 2015. 10. 16. 03:14 수정 2015. 10. 1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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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수 둔 '경제검찰', 로펌·기업 연합팀에 번번이 패배] 기업들에 敗訴, 이자·소송費 물어 여론 의식해 '과한 과징금' 기업에 올 벌써 패소율 21%.. 작년 취소과징금은 1479억

2011년 공정거래위원회는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SK 등 3개 정유사가 담합했다"며 25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정유사들은 이에 불복해 법원에 소송을 냈다. 긴 소송 끝에 2015년 2월 대법원은 "자진 신고한 정유사 직원의 진술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며 정유업체들 손을 들어줬다. 공정위는 이들이 낸 과징금 대부분을 돌려준 것은 물론, 300여억원에 이르는 이자까지 물어줘야 했다.

불공정 거래를 감시하는 공정위가 기업에 과징금을 부과했다가 기업이 낸 소송에 패해 과징금을 돌려주는 사례가 늘고 있다.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 액수는 2012년 5106억원, 2013년 4184억원에서 지난해 8043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그런데 이에 불복한 기업들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승소하면서 취소된 과징금 액수가 2012년과 2013년 각각 111억원에서 지난해 1470억원으로 급증했다.

소송에서 패하면 기업이 낸 과징금만 되돌려주는 게 아니다. 이자도 덧붙여 줘야 한다. 지난 5년간 법원에서 패소해 기업에 지급한 이자(환급 가산금)가 992억2400만원에 달했다. 공정위가 기업들과 소송하는 데 쓴 돈도 5년간 78억원이다. 이자 및 소송 비용 1070억원이 국민 세금에서 축난 것이다.

'경제 검찰'로 불리는 공정위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기업의 불공정 행위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했지만, 이를 취소하라는 법원의 판결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법원이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고 불만이지만, 공정위의 부실한 조사와 무리한 과징금 부과가 자초한 결과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11년 정유사 담합 건의 경우, 공정위는 정유사들이 자진 신고한 내용을 바탕으로 각자 점유하는 주유소에 대해 서로 기득권을 인정해주고, 사업주가 사업을 접더라도 침범하지 않아 담합이라고 심결했다. 하지만 공정위 결정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던 한 정유업체 관계자는 "공정위는 정유사별 주유소 수가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것이 담합의 근거라고 했는데, 정유사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며 간판을 바꿔 달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일 뿐"이라고 억울해했다.

문제는 소송에서 패할 경우 기업들로부터 징수한 과징금만 토해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자도 물어야 한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공정위가 과징금을 물렸다가 돌려주게 될 경우 최초 납부받은 날부터 환급 시까지 연 2.9%의 이율을 적용해 이자를 주어야 한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법원에서 패소해 기업에 지급한 이자(환급 가산금)가 992억2400만원에 달했다.

◇공정위, 갑질 논란 남양유업에도 과징금 대부분 돌려줘

지난 2013년 이른바 갑질 논란으로 전 국민의 비판을 받은 남양유업에 대해 공정위는 과징금 124억원을 부과했다. 1800여개 대리점에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과 대리점이 주문하지 않은 제품 등을 강제 할당해 구입하도록 하고, 판촉사원 임금을 대리점에 절반 이상 부담토록 한 행위가 불공정 행위라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갑질 논란이 언론의 관심에서 멀어진 그해 말 남양유업은 "공정위가 구입을 강제했다고 보기 어려운 부분까지 매출액을 산정해 과징금을 과다하게 매겼다"며 이를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법원에 냈다. 2년여 소송 끝에 대법원은 지난 7월 남양유업의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였다. 과징금 124억원 가운데 119억원을 취소하라고 판결 내린 것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전 국민적 관심을 끈 사건이었으면 (공정위가) 좀 더 치밀하게 대응했어야 하는데, 남양유업에 패해 면죄부만 준 꼴"이라고 말했다.

◇여론·감사원 의식, 무리한 과징금

이처럼 공정위가 여론을 의식해 과징금을 무리하게 부과함으로써 위기를 자초하는 측면이 있다. 대기업 관계자는 "우리 판단에는 그 정도로 과중한 사안은 아닌 거 같은데 공정위가 경제 민주화 같은 것을 의식해서 과하게 과징금을 때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 공정위 직원도 이를 인정한다. 한 공정위 관계자는 "과징금을 적게 부과하면 '봐주기 아니냐'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라 부담스럽다"며 "반면 법원은 증거를 요구하며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 공정위 조사관은 "자칫 과징금을 적게 부과했다가는 감사원의 감사를 통해 징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일단 높게 때리고 보자는 생각이 있다"고 했다.

◇기업과 로펌 연합 공세에 밀려

소송이 잇따르면서 소송 관련 비용도 적지 않게 소요되고 있다. 공정위가 기업들과 법원 소송을 벌이면서 쓴 비용이 지난해에만 21억원에 이른다. 그럼에도 공정위가 기업과의 소송전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은 기업의 자본력과 인력 공세에 밀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물어야 할 과징금 규모가 커지자, 기업들은 거액을 들여 고위급 법조인 출신 변호인을 선임하고 있다. 법원행정처가 펴낸 최근 10년간 서울고등법원 공정위 소송 전담재판부 현황 자료에 따르면 공정위 전담재판부 출신으로 개업한 변호사 중 75%에 해당하는 12명이 국내 10대 로펌에 영입됐다. 최근에는 공정위 출신 전직 직원들을 채용해 이른바 전관을 이용해 각종 정보를 빼 간다는 소문도 나돈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상직 의원에 따르면 공정위에서 퇴직하거나 공정위 민간 자문위원으로 활동한 인사 63명이 김앤장 등 국내 10대 로펌에 취업해 공정 거래를 담당하는 변호사나 고문 또는 전문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실제로 이들 로펌은 지난 5년간 공정위와의 소송에 변호인으로 참여해 공정위가 패소한 55건의 사건 중 80%인 44건을 기업 측 승리로 이끌었다.

공정위의 과잉 과징금에 대해 국회 정무위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신학용 의원은 "공정위 제재가 법원에서 번번이 뒤집힐 경우 공정위에 대한 전체 신뢰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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