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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기자들 "국정화는 자유민주주의에 어긋나는 것 아닌가"

이하늬 기자 입력 2015. 10. 17.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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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국정교과서 외신기자 브리핑에서 동문서답, “자료 없다” 반복

[미디어오늘 이하늬 기자]

정부가 외신기자들을 상대로 한 역사교과서 국정화 관련 기자회견에서 외신 기자들의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못하면서 망신을 당했다. 이날 외신 기자들은 “국정화는 오히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논리에 어긋나는 것 같다” “문제가 있으면 검정에서 떨어뜨리면 되지 않나” “왜 모든 사람들이 한 가지 의견을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나” 등의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는 지난 16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한국 프레스센터에서 외신 기자들을 상대로 ‘역사 교과서 개발체제 개선 관련 브리핑’을 열고 “현행 교과서에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오류와 이념 편향성을 불러 일으키는 표현들이 담겨 학생들이 역사를 공부하는데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며 “더군다나 분단 상황에서 잘못된 역사 인식은 국가 안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국정화와 관련해 실무 총괄책임을 맡고 있는 김동원 교육부 학교정책실장은 “이런 교과서를 그대로 두고 우리는 통일 시대를 대비할 수 없다”며 “국정교과서는 무엇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헌법적 가치를 토대로 쓰일 것이다. 특별한 역사관을 공유하는 소소의 집필진들이 편향적 서술과 이념 주입을 하지 않도록, 우수한 학자로 충분한 집필진을 구성할 것”이라고도 밝혔다. 

 

 
 
▲ 이화여대 총학생회와 교내 30여개 학생단체는 14일 오전 이화여대 정문앞에서 한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참가학생들은 회견후 학생문화관 내에 설치된 반대서명지에 서명하고 반대 대자보를 붙였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일본기자 “설명을 들어도 납득이 안된다”

정부 검정을 통과한 현재 교과서를 폄하하는 등 문제가 많은 설명이었지만, 더 큰 문제는 이후 질의응답 시간에 발생했다. 정부의 브리핑을 들은 외신 기자들이 날카로운 질문을 쏟아냈지만 김동원 학교정책실장과 진재관 국사편찬위원회 편사부장은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정부 입장만을 반복했다. 심지어 한 기자가 같은 질문을 수차례 반복하고, 브리핑장에서 한숨이 터져나오는 일도 벌어졌다. 

일본의 한 외신기자는 “설명을 들어도 여전히 납득이 안된다”며 “검정에 통과된 교과서들이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면 검정 과정에서 이것을 걸러내지 못한 게 문제다. 검정 기준을 바꿔야 했을텐데 여태까지 왜 그런 걸 안 했는지 의문이다. 그리고 문제가 있으면 검정에서 그냥 떨어뜨리면 되는데 왜 국정화까지 하는지 이해가 안된다”라고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교육부의 검정 기준에 대한 답이 아니라 집필진과 학생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답변을 했다. 이 관계자는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에 대해 수정 명령을 했는데 집필진들이 수정 명령을 거부하고 현재 상고까지 하고 있는 상태”라며 “학생들은 왜곡된 논리에 대한 취사선택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교과서를 올바르게 해줘야 하는데 수정명령까지 거부하는 사태가 있어서 국정화를 검토하게 된 것”이라고 답했다.

 

 
 
▲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
 

영국 기자 “역사에서 완전한 균형은 존재하지 않아”

정부가 말하는 ‘객관적인 역사’ ‘편향되지 않은 역사’에 대한 질문도 쏟아졌다. 영국의 한 외신기자는 “(한국 정부는) 편향이라는 단어를 부정적으로 사용하는데 역사에서 완전한 균형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스페인 외신기자도 “지금 교과서가 좌편향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정부가 제대로 된 교과서를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나”라고 질문을 던졌다. 

또 다른 외신기자도 “교육부 장관이 역사교육이 사회의 큰 문제라고 말했고 박근혜 대통령도 사회 분열을 일으키면 안 된다고 말했는데 어떤 사회에서도 사람들이 다양한 의견을 갖고 있는 것이 바람직하거나 너무 당연한 일이다. 왜 (한국 정부는) 모든 사람이 한 가지 의견을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일본의 한 외신기자는 “(한국 정부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논리를 강조하겠다고 했는데,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오히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논리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며 “자유민주주의는 다양성을 보장하는 것이고 시장경제는 선택권을 주겠다는 것인데, 국정화는 공급을 단일화 시켜서 이것만 보게 하겠다는 것이어서 시장경제 원리에 어긋나는 것 같다”는 질문을 던졌다. 

한국 정부 “역사라는 과목만큼은 특별하게 관리해야”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한 사회가 다양한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맞는데 사회 분열을 확산시키는 방향으로 교육이 이뤄질 수 있느냐, 이것이 통합의 방향으로 교육이 이뤄지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한국이 가진 특수성에 의해 역사는 분열을 통합으로 바꾸는, 역사라는 과목만큼은 특별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역사에 있어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또 정부 관계자는 “현재 검정교과서는 교과서마다 서술의 차이가 매우 크다. 학생들은 그 다양한 교과서를 놓고 배우는 게 아니라 그 중에 한 교과서만 선택해서 배운다”며 “이는 학생들이 다양한 학설 중에 어느 하나만을 사실로 아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통합해서 서술하는 방식을 택하기로 했다”라고 답했다. 역시 애초 질문했던 다양성과 선택권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 전국 466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회원들이 지난 7일 서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한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시민선언을 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브리핑장 곳곳에서 한숨이…

정부가 계속해서 “현재 교과서가 편향돼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국정화를 하게 됐다”는 식의 답변을 반복하자, 외신기자들은 증거를 요구하고 나섰다. 한 외신기자는 “어떤 출판사 어떤 교과서에 북한 주장을 그대로 인용한 내용이 있는지 말해달라. 보도를 하려면 그 자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외신기자도 “모든 교과서가 북한의 주체사상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어느 교과서의 어느 부분이 문제인지 알려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는 “주체사상이라든지 북한의 항일운동 이라든지 이런 부분을 북이 주장하는 선전문구를 그대로 따오면서 저자들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학생의 입장에서 오해의 소지를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도 구체적인 답변은 하지 못해 빈축을 샀다. 계속해서 결국 정부 관계자는 자료를 요구하는 외신기자들에게 “저희들이 교과서를 준비하지 못했다”며 “죄송하다”고 사과하자 브리핑장 곳곳에서는 한숨이 터져나왔다. 

그러면서 정부는 이후 브리핑이 끝나고 구체적인 자료를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브리핑이 끝난 다음 한 외신기자는 “현행교과서가 죄편향됐다고 주장하면서 자료를 하나도 제시하지 못했다. 여러 기자들이 어느 교과서 몇 페이지에 그런 이야기들이 나오냐고 물었지만 나중에 제시하겠다는 말만 했다”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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