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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뉴스]"국정교과서 반대하는 제가 왜 찬성 명단에 들어가 있나요?"..'지식인 500인 선언'의 진상

정대연 기자 입력 2015. 10. 22. 17:49 수정 2015. 10. 23.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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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진보를 떠나서 국정교과서는 상식적으로 반대해야 하는 문제죠. 나중에 정권이 바뀌면 또 교과서가 바뀔 거 아닙니까. 왜 학생들만 피해를 보게 만드나요. 저는 국정교과서의 내용을 떠나서 한번도 동의한 적이 없습니다. 너무 황당합니다. 주최 측에 명의를 도용 당했습니다.”

21일 밤 <경향신문>으로 목사 한 분이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그는 지난 19일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지지하는 공동선언문에 이름이 오른 ‘좋은 교과서, 정직한 교과서, 올바른 교과서를 지지하는 지식인 500인’ 중 한 명입니다. “심지어 내가 속한 단체 이름도 틀리게 나갔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사람 중 아는 사람이 한 명 있는데, 그분이 맘대로 이름을 올린 것 같다”고 했습니다.

지난 21일 오후 이 공동선언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지식인 500인’을 분석한 기사(▶“역사교과서가 청년 자살 원인”이라던 ‘지식인 500명’, 알고보니···)가 나간 뒤 “공동선언문에 이름을 올려달라는 연락을 받은 적이 없다. 주최 측에 명의를 도용 당했다”는 전화가 밤까지 <경향신문>에 이어졌습니다.

본인이 직접 또는 다른 사람을 통해 “국정화 지지 성명에 이름이 오른지 전혀 몰랐다”고 연락해 온 사람이 15명에 이릅니다. 이들은 목사, 교수, 의사, 병원·의료단체 관계자, 보수단체·경제단체 관계자, 언론사 간부 등 다양합니다. 한두 명의 이름이 잘못 실린 것이 아니라 명단 전체가 잘못일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21일 오후 9시20분쯤 이 기사에 붙인 명단을 삭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명단에 속한 것으로 알려졌던 노환규 전 의사협회장은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금시초문이다. (국정화 지지 선언에 관한)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처음 500인 명단을 올린 <뉴데일리> 측은 노환규 전 협회장에게 “취재기자가 기자회견 현장에서 주최 측으로부터 명단을 받아 올린 것이다. 하지만 참여한 적 없다고 항의하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뉴데일리> 측은 이날 <경향신문>에도 “주최 측으로부터 직접 받은 명단이 맞다”고 확인해 줬습니다.

|노환규 전 의사협회장 페이스북 갈무리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명단을 취합한 것으로 알려진 관계자에게 연락했지만 “이번 일은 나와 무관하다”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19일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들도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오마이뉴스> 보도(▶‘국정화 지지 선언’은 유령 명단? “이름 도용 당했다”)를 보면, 서석구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 대표는 “제가 명단을 정확히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고, 이계성 반국가교육척결국민연합 대표는 “다른 분이 명단을 작성했다. 저는 기자회견에 나오라기에 참석만 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조우석 문화평론가도 “500명을 모으다 보면 한두 사람 착오가 있을 수는 있다. 명단을 여러 명이 모으다 보니 누가 했다고 하긴 어렵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명단 취합에 관여했다는 한 사람은 21일 밤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지인을 통해 수합하는 과정에서 언론에 공개되는 줄 모르고 본인 확인을 하지 않고 명단에 넣은 것 같다. 아는 분이라서 될 걸로 생각하고 마음놓고 넣은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500인 명단에 속한 이들 중 본인 확인을 거치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을 수 있음을 시사하는 발언입니다. 노환규 전 협회장도 “명단을 작성할 때 알음알음 하는 게 관행이다보니 항의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의 이름을 마구잡이로 넣은 것 같다”고 했습니다.

애초 공개된 명단에도 문제가 많습니다. 언뜻 봐도 중복된 이름이 상당했고, 직업·직책이 분명하지 않은 경우도 많았습니다.

얼마 전에도 같은 문제가 벌어졌습니다. 지난 16일 국정화 지지 기자회견을 진행한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지지하는 교수 102인 모임’ 주최 측 관계자는 “선언에 참여한 교수 이름 외에 소속 학교, 직함이 포함된 명단은 아직 취합 중이라 줄 수 없다”고 합니다. 기자회견이 끝난 뒤에 “취합 중”이라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데다, 동명이인에 따른 피해자가 계속 발생하고 있습니다. 국정화 지지 세력이 세를 불리려다 애먼 피해자만 낳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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