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앞에 선 오랑우탄, 인간우월주의를 깬다

입력 2015. 10. 24.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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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생명
동물 거울실험 프로젝트

다음달 서울대공원에서 이뤄질 오랑우탄 거울실험에 대해 거울실험의 최초 설계자 고든 갤럽 미국 뉴욕주립대 교수(심리학)가 실험 과정에 대한 의견을 담은 이메일을 보내왔다. 그는 이메일에서 오랑우탄이 거울에 대해 탐구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한겨레> 토요판은 국립생태원 김예나 박사와 서울대공원 사육사들과 함께 새달 11일부터 서울대공원 오랑우탄 보라, 보석, 보람이에 대해 거울실험을 진행할 예정이다. 코끼리에 대해서도 거울 설치 및 동물 안전 등 실험 조건 충족이 확인되는 대로 실험에 들어갈 계획이다. 동물보호단체인 동물자유연대는 동물복지의 관점에서 실험 과정을 모니터링한다.

세상을 바꾼 침팬지

1970년 과학전문지 <사이언스> 167호에 실린 ‘침팬지: 자의식’을 통해 발표된 침팬지 실험은 동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동물은 감정과 의식, 마음이 없는 단순한 기계일 뿐’이라는 데카르트의 주장이 학계 전반에 퍼져 있을 때였다. 이 논문은 지금까지 1380여회 인용된 세상을 바꾼 ‘세기의 실험’ 중 하나로 꼽힌다.

이 실험을 고안한 이는 미국 뉴올리언스의 툴레인대학에서 심리학을 연구하던 20대 교수였다. 그는 유아의 발달단계를 알기 위해 하는 심리학 실험을 동물에게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가 선택한 건 거울이었다. 거울을 주면 동물은 어떻게 반응할까? 보통 두 살 즈음에 아기는 거울 속의 이미지를 자신으로 인식한다.

고든 갤럽 교수는 침팬지 암컷과 수컷 각각 두 마리에게 거울을 갖다주었다. 모두 야생에서 태어나 거울을 본 적이 없는 개체들이었다. 당연히 자신의 모습도 알 리가 없었다.

거울을 갖다주자 침팬지들은 갑자기 위아래로 뛰거나 소리를 지르고 위협하는 행동을 보였다. 거울 속의 자신을 다른 침팬지라고 생각한 것이다. 실험 셋째날에 이르자 이런 행동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닷새째에는 아예 사라졌다. 대신 다른 행동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침팬지는 이빨에 낀 먹이찌꺼기를 찾아보고 코딱지를 제거하고 입으로 거품을 만들었다. 어떤 때는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몸을 다듬고 잘 보이지 않는 항문과 생식기를 관찰했다. 침팬지는 거울 속의 이미지가 누구인지 아는 듯 보였다. 첫 단계에서 나타난 위아래로 뛰거나 소리지르고 위협하는 행동은 ‘사회적 행동’이었다. 반면 둘째 단계에서 나타난 행동은 ‘자기인식 행동’이었다.

동물은 ‘자동반응 기계’인가
경험하고 성찰하는 주체인가
오랑우탄 보라, 보석, 보람
다음달 국내 최초의 거울실험
1970년 침팬지 거울실험한
갤럽 박사도 ‘한겨레’ 응원
거울실험과 다큐 지원하려면
‘펀딩21’에서 후원 가능해

갤럽 교수는 침팬지가 ‘자기인식’을 할 줄 안다는 것을 좀더 명확히 하기 위해 2차 실험에 들어갔다. 그는 침팬지들을 마취시킨 뒤 눈썹과 귀 위쪽 부분에 빨간 물감을 칠했다. 거울 앞에 선 침팬지는 이젠 어떤 반응을 보일까? 침팬지는 거울 속의 자신을 기억했다. 그리고 빨갛게 표시된 눈썹과 귀를 만지고 긁어댔다. 침팬지는 거울을 도구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침팬지가 본 건 자신이었다. 자신을 타자(거울)의 눈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자의식이 있다는 것이었다.

갤럽 교수의 논문이 선풍을 일으킨 뒤, 동물행동학과 심리학계에서는 유인원에 대한 거울실험이 진행됐다. 침팬지에 이어 오랑우탄이 자기인식 행동을 하는 것이 밝혀졌다. 같은 영장류인 고릴라와 긴팔원숭이는 연구에 따라 결과가 엇갈렸다. 어쨌든 유인원과 유인원 아닌 동물들 사이에는 ‘의식의 루비콘강’이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2000년 돌고래가 루비콘강을 건너면서 유인원의 우월성은 깨졌다. 다이애나 리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로리 마리노 에머리대 교수가 뉴욕 아쿠아리움 풀장에 약 1m의 거울을 설치하자, 돌고래는 눈 위에 그려진 표지를 보기 위해 고개를 끄덕거렸다. 2006년에는 코끼리도 자의식의 동물 대열에 합류했다. 2008년에는 일군의 학자들이 조류인 유럽까치도 거울을 볼 줄 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인간을 최고 정점으로 인간 비슷한 동물이 ‘고등동물’이라는 선입견은 이렇게 천천히 깨지고 있다.

거울실험을 통과한 동물들은 전형적인 네 단계를 거친다고 조슈아 플로트닉 여키스 영장류센터 연구원, 다이애나 리스 컬럼비아대 교수는 말한다. 이들은 2006년 뉴욕 브롱크스동물원에서 코끼리 거울실험을 마쳤다. 거울 속에 낯선 이미지를 다른 개체로 인식하는 행동을 벌이고(1단계), 그다음에는 거울이라는 물체가 도대체 무엇인지 검사하고(2단계), 이어 거울의 작용을 천천히 깨닫는 과정을 거친다(3단계). 마지막으로 자기를 인식하고 거울을 이용하는 명확한 행동에 돌입한다(4단계). 유럽까치도 자신의 턱밑에 칠해진 물감을 발을 들어 긁적였다. 연구팀은 “거울실험은 높은 형태의 감정과 이타적 행동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거울실험이 의미하는 바는 도대체 무언가? 갤럽 교수는 <사이언스>에 이 논문을 실으면서 “유인원의 자의식을 처음으로 실험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밝혔다.

자의식은 자신을 타자화해 인식하는 능력이다. 이를테면 갤럽 교수는 의식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다고 1977년 <미국 심리학회지>에 실은 ‘영장류의 자의식’에서 설명한다. 하나의 차원은 주체가 감각을 통해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차원은 자신이 그런 경험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당신이 배가 고파서 사과를 훔친다. 이것은 의식의 첫번째 차원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다. 그러나 당신은 동시에 사과를 훔치는 자신을 목격하고 의식한다. 이것이 의식의 두번째 차원에서 벌어지는데, 자의식을 통해 작용한다. 자의식이 없다면 동물은 즉자적으로 반응해 세계를 경험하는 자동기계일 뿐이다. 이 때문에 자의식이 있느냐 없느냐는 동물의 윤리나 태도, 사회성의 수준을 논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인간의 ‘의식’은 침팬지의 ‘의식’과 똑같은 구조와 형태를 갖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의식이 어떤 물체로 표현될 수 있다면, 인간과 침팬지의 의식은 생각의 매질이 통과하는 전혀 다른 삼차원적 공간이다. 둘은 긴 시간 동안 다른 형태를 갖는 의식으로 진화했을 것이다. 인간의 의식은 침팬지보다 유럽까치와 더 다를 것이다. 진화적 거리가 더 멀기 때문이다. 인간과 침팬지 그리고 유럽까치는 각각 다른 진화의 사다리를 탔다. 다만 거울실험을 통해 우리는 가장 기초적인 자의식의 형태를 침팬지와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거울실험에 대해 연구하는 다이애나 리스, 로리 마리노 교수는 ‘비인간 인격체’(nonhuman person) 운동의 주창자이기도 하다. 비인간 인격체는 생물학적으로 인간은 아니지만(비인간·nonhuman), 인간이 독보적으로 가졌다고 알려진 태도와 성격, 윤리 등 인격성(인격체·personhood)을 일부 동물이 지녔다는 개념이다. 이들은 거울실험에서 자의식이 있다고 알려진 동물만큼이라도 우선 동물실험이나 전시·감금 등에서 점진적으로 해방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사회운동단체 ‘논휴먼 라이츠 프로젝트’는 침팬지가 인격체인 만큼 헌법의 기본권을 누릴 수 있다면서, 동물실험실의 인신구속을 멈춰달라는 소송을 진행중이다.

동물은 기계인가, 주체인가

<한겨레>가 오랑우탄의 거울실험에 돌입한 이유는 동물을 진지하게 탐구하는 과정 속에서 인간의 우월성과 동물에 대한 편견을 하나씩 지워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고든 갤럽 교수는 지난 17일 <한겨레>에 이메일을 보내 서울대공원에서 벌어질 오랑우탄 거울실험에 대해 몇 가지를 충고했다. 그는 “오랑우탄을 좀더 광범위하게 거울에 노출시킬 필요가 있다. 거울을 처음 설치한 1단계에서 오랑우탄의 행동을 세심히 모니터링하고, 특히 자기인식 행동은 면밀히 관찰, 기록해야 한다”고 말했다. 거울을 이용해 자신의 몸을 본다거나, 맨눈으로 잘 보이지 않는 부위를 보지 않는지 잘 살펴야 한다고 갤럽 교수는 덧붙였다.

이렇게 자기인식 행동이 확인되면, 빨간 물감 등을 몰래 칠해놓고 오랑우탄의 거울 반응을 보는 표지 테스트가 진행된다. 갤럽 교수는 “오랑우탄이 친구 오랑우탄에게 칠해진 빨간 마크(표지)를 보면, 이것에 적응되어 자신의 표지에 아무 반응을 나타내지 않을 수도 있다. 표지 테스트는 개체별로 진행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과연 동물은 소리없는 사물의 세계에서 ‘자동 반응’하는 기계일 뿐일까? 왜 우리는 동물이 고통스럽게 우는 소리를 들으면 마음 아파하면서도 동물을 가두고 쇼를 시키고 학대하는 걸까? 거울실험은 그들도 우리와 동류의 존재임을 보여주는 첫걸음이다.

거울실험의 전 과정은 카메라로 기록·편집되어 10~15분 분량의 단편 다큐멘터리로 제작·상영된다. 거울실험 취지에 찬성해 다큐 제작을 도우려면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인 펀딩21(funding21.com)에서 1만원 이상을 후원할 수 있다. 후원자는 다큐 엔딩크레딧에 이름이 올라가거나 상영회 초대권 등을 받는다. 토요판 생명면 등을 통해 관련 연작 기사가 소개되고, 펀딩21에서 지속적으로 실험 준비와 진행 경과를 설명할 예정이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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