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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화 다음엔 슬슬 민영화 나서볼까

김태훈 기자 입력 2015. 10. 31.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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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서비스법’ 처리 강조… 교육·의료 등 공공부문 시장화 추진

“우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한 중요한 경제활성화 법안들이 수년째 처리되지 못하고 아직까지 국회에 계류되어 있습니다. 대통령으로서 너무나 안타깝고 가슴이 타들어가는 심정입니다. 서비스산업은 내수 기반을 확충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핵심 산업이며, 청년들이 일하고 싶어하는 대표적인 분야입니다. … 3년째 상임위에 묶여 있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 처리되면, 가계소득이 증가하고 새로운 일자리가 크게 늘어날 것입니다.”

10월 27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조속히 통과시켜 달라고 말했다. 이날 시정연설의 주된 열쇳말은 ‘경제’와 ‘청년’이었다. 시정연설 동안 경제는 56번, 청년은 32번 언급됐다. 특히 청년은 박 대통령의 연설 속에서 나이 많은 노동자들과 낡은 ‘철밥통’ 공공부문의 기득권 때문에 일자리 문제를 겪고 있는 나약하고 가녀린 대상으로 묘사됐다. 이 청년들을 위해 서비스산업의 발전을 꾀해야 하고, 그 시작은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국회 통과여야 했다.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한 행정부 수장이 서비스산업 시장은 되레 ‘민영화’하겠다고 밝힌 역설적인 내용의 연설이었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제정안(이하 서비스법)은 박 대통령이 국회에 처리를 요청한 ‘경제활성화 3법’ 중 가장 핵심적인 법안이다. 내용을 얼핏 봐선 법의 이름처럼 서비스산업 발전방안을 추진하기 위한 법으로 보인다. 서비스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서비스산업선진화위원회’라는 기구를 신설해 서비스산업에 대한 규제완화 등 각종 지원을 하게 하는 내용이 중심에 있다. 이 선진화위원회를 통해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본뜬 ‘서비스산업발전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고, 의료·보건 분야는 물론 교육·복지를 비롯한 공공서비스 영역까지 포함한 광범위한 서비스산업 영역을 신성장동력으로 확보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광범위하게 포괄적으로 서술되어 있는 조문 뒤에 숨어 있는 적잖은 쟁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서비스법이 통과되면 교육이나 의료와 같은 공적 사회복지의 영역까지 서비스산업의 범위 아래 놓이게 된다. 기획재정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선진화위원회가 단순한 규제완화를 넘어 민영화로까지 이어지는 공공부문 시장화 작업에 대해 사실상 전권을 부여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비스법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문제는 위원회를 구성하는 방식이다. 민·관합동위원회이긴 하지만, 먼저 각 부처의 장관이 민간위원을 추천한 뒤 위원장인 기재부 장관이 위촉하는 형식은 다른 어떤 공공정책 분야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교육 또는 의료정책 주무부처인 교육부와 보건복지부의 역할마저도 축소하면서, 기재부가 막강한 권한을 이용해 공공영역에 시장논리를 도입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 조항들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관련 분야에서 활동하는 비판적 전문가들의 참여 역시 실질적으로 배제될 수밖에 없어 폐쇄적인 위원회가 구성될 공산이 크다.

2014년 5월 의료민영화 정책에 반대하는 대학생들이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정문 앞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위원회 구성부터 ‘폐쇄적’ 공산 커 공공영역이 규제완화가 필요한 서비스산업 분야의 한 부분으로 흡수되고 나면 그나마 취약한 공공성이 경제논리에 따라 재단되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큰 내용이 없을 법한 법안을 대통령까지 나서서 통과를 종용하고, 야권과 시민사회가 이에 맞서온 배경에는 이처럼 공공영역에 대한 분명한 시각차가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이 법안이 발의된 것은 2012년 7월의 일이다. 이미 전 정권인 이명박 정부에서도 일부 세부 내용을 제외하곤 내용 대부분이 비슷한 법안이 발의된 바 있다. 그러나 ‘의료민영화’의 초석을 놓는 시도라며 야권과 시민사회단체는 물론 의사협회 등 의료분야 전 직능단체들까지 반대에 나서 회기를 넘기지 못하고 폐기됐다. 2012년 박근혜 정부가 19대 국회에 다시 발의한 서비스법 역시 2년 넘게 기재위 법안심사소위에도 상정되지 못했다.

올해 3월 의료·보건 분야를 제외하는 조건으로 여야 합의가 이뤄졌지만 정부와 여당은 돌연 재차 ‘의료·보건 분야 포함’ 방향으로 선회했다. 한동안 잠잠했던 서비스법 관련 논쟁이 박 대통령의 8월 대국민 담화와 9월 국무회의 언급에 이어 이번 국회 시정연설에서까지 전면에 등장하면서 새롭게 부각되는모양새를 띠고 있다.

대통령의 담화·연설에서 점차 서비스법 처리문제가 부각돼 오는 동안 정부 각 부처도 ‘민영화’ 이슈로 촉발될 여론전에 대비해 왔다. 여기에서도 박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강조한 ‘청년’이 핵심 주제어였다. 10월 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국개발연구원(KDI)과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 국회 경제정책포럼의 공동주최로 열린 ‘서비스산업과 청년일자리에 대한 토론회’에서는 서비스법을 하루빨리 통과시켜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이 줄을 이었다.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의 발표가 대표적이었다. 청년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88.4%가 서비스법에 찬성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압도적인 찬성률 뒤에 가려 있던 사실은 이 설문조사에 응한 청년 중 90.7%가 ‘서비스법을 잘 모른다’고 답한 것이다.

청년층의 80%가 서비스업 일자리에서 일하고 싶다고 응답했다는 결과도 이 설문조사에서 나왔다. 하지만 농·임·어업 등 1차산업과 제조업 및 건설업을 제외한 나머지 업종을 몽땅 서비스업으로 묶어 분류한 결과다. 서비스법이 공공영역까지 서비스산업의 영역으로 포함시키려는 의도와 맥을 같이했다. 이렇게 분류된 서비스산업 가운데 공공영역과 중첩되는 분야는 공공행정, 보건업, 교육서비스업, 사회복지서비스업 등으로, 이들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고 응답한 청년의 비율은 42.2%에 달했다. 바꿔 말하면 공공영역을 제외하면 청년층의 서비스업 일자리 선호도가 37.8% 정도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청년층이 선호하는 서비스산업 일자리 중 절반이 넘는 공공영역의 안정성 높은 일자리가 서비스법 통과 여부에 따라 그나마 붙어 있던 양질의 일자리라는 장점을 잃을 수도 있게 되는 셈이다.

공공영역까지 서비스산업으로 포함 서비스법을 통해 서비스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연구자들이 공공영역의 직업 안정성을 희생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데에서도 서비스법의 파급력은 여실히 드러난다. 이 토론회에서 최경수 KDI 산업·서비스경제연구부장은 “서비스업이 경쟁적 생태계에서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며 “서비스업에서는 진입과 퇴출이 산업 생산성 향상에 크게 기여한다”고 밝혔다. 서비스법이 역동적인 기업경쟁 환경을 도입한다는 명목으로 공공영역을 포함한 서비스산업 전반에서 직업 안정성을 떨어뜨리는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서비스법이 통과될 경우 ‘서비스산업’이라는 범주가 적용되는 범위가 ‘엿장수 마음대로’라는 점도 시민사회단체 전문가들이 독소조항으로 지적하는 점이다. 지난 정부에서 내놓은 2011년 법안에서는 “제2조(적용범위) 이 법은 의료, 교육, 관광·레저, 정보통신서비스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서비스산업에 대하여 적용한다”고 되어 있던 것이 현 정부의 2012년 법안에서는 “제2조(정의) ‘서비스 산업’이란 농림어업이나 제조업 등 재화를 생산하는 산업을 제외한 경제활동에 관계되는 산업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산업을 말한다”고 바뀌어 오히려 서비스산업의 범위를 늘려놓았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대통령령으로 위임함으로써 이른바 ‘시행령 위임’이라는 ‘행정입법’과도 같은 꼼수를 통해 논란을 피해가려고 한다”며 “3권분립에 정면으로 맞서 입법부의 권한을 하위 시행령과 시행규칙으로 행정부에 넘기려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민영화 바람의 가장 선제적인 조치 문제는 이 법이 이전까지 지속적으로 제기되던 영리병원 도입과 같은 의료 민영화 문제, 경제적 여건에 따라 학생들의 학력을 서열화시킬 수도 있는 투자개방형 학교 설립 문제 및 국제학교 자율화 등의 문제에 더해 공공영역 전 부문에서 민영화 바람이 불게 하는 가장 선제적인 조치라는 것이다. 게다가 민간 서비스산업 영역까지 경쟁력을 높인다는 이유로 영세 자영업자들부터 산업 구조조정에 들어간다는 점도 위기감을 높인다. 자본의 국적을 가리지 않고 시장을 개방함에 따라 일부 대기업이 경쟁력을 가지게 되는 대신 동네 시장까지 국내외 서비스 대기업들이 장악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각 정부 부처는 영세 서비스업자들을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서비스산업 구조조정안을 세웠다는 점이 이런 전망을 뒷받침한다. 산업통상자원부의 ‘2014~2018년 유통산업발전 5개년 계획’에 따르면 “도·소매, 음식·숙박 등 생계형 서비스 업종의 퇴출전략 추진”이 정책목표 과제 가운데 하나로 세워져 있다. 유통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주요 내용 중 하나가 “드럭스토어, 복합쇼핑몰 등 신산업 육성”일 정도다. 영세 도·소매업주들이 시장에서 퇴출된 자리를 외국계 또는 국내의 대기업 복합품목 유통점이 메우는 방식이다.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 등 통상정책을 펼치면서 그나마 중소상인들의 요구로 제도화했던 각종 공정거래, 골목상권 보호 조치들도 완전 무력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각 지자체가 추진 중인 지역상권 살리기 관련 조례와 규칙을 규제완화라는 명목으로 폐지해야 한다고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대형마트가 신규 입점하거나 대형마트 판매품목을 늘리는 것을 제한하는 조치는 물론 지역 농산물 생산자를 우대하는 지자체의 정책도 공정위가 제지하고 있다.

때문에 서비스법이 국회를 통과하게 되면 공공과 민간을 가리지 않고 사회서비스 전 영역에서 체감 생활수준은 더욱 나빠질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임금수준이 낮은 나쁜 일자리가 느는 반면 고용은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재화와 서비스를 소비하는 과정에서도 대기업이 장악한 시장에서 가격 결정권을 잃게 된다. 제갈현숙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은 “인력 구조조정의 여파로 증가해 온 중소·영세상인들은 이미 치열한 경쟁구조에 노출되어 있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경제적 토대가 필요한데, 대자본과 대기업 중심의 법안으로는 이들의 생존권과 경제권을 보호하기 어렵다”면서 “나쁜 일자리만 늘리면서 고용률을 높일 수는 있겠지만, 결국 서비스산업 내부의 내적 통제가 심화되어 실업도 증대되는 등 부정적 결과가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10월 27일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하는 동안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민생우선’, ‘국정교과서 반대’라고 적은 종이를 붙여놓은 채 항의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박근혜 정부의 성동격서 전술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에 관한 언급은 가장 마지막에 있었다. 10월 27일 국회에서의 시정연설 거의 끝부분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논란이 되고 있는 ‘국정화’에 관한 연설에 들어갔다. 국회의 협조를 요청한다는 식의 부드러운 어조는 국정화 문제로 주제가 바뀌며 다소 단호한 어조를 띠기 시작했다. 전체 연설에서 차지하는 분량은 적은 편이었지만 주목도는 가장 높았던 부분이었다.

정책기조인 ‘4대 개혁’과 경제 문제, 청년실업 문제, 민영화 이슈와 관련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까지 건드리다 논란 중인 이슈에 대해서는 가볍게 언급하고 지나간 모양새다. 한창 뜨거운 주제 대신 또 다른 쟁점을 던진 이 ‘성동격서’ 화법은 효과가 있었을까. 단순 지지율 수치만으로는 성공적이었다. 여론조사업체 한국갤럽이 10월 30일 발표한 10월 넷째 주 정례조사 결과에 따르면, 박 대통령이 직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는 응답은 44%로 전주 대비 2%포인트 올랐다. 9월 첫주 54%를 기록한 이래 6주 동안 지속적으로 떨어진 지지율이 소폭 반등한 것이다. 직무를 잘 못하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도 44%로 같았다.

한국갤럽은 “이번주 직무 긍정평가 이유에서 ‘열심히 한다’ ‘경제정책’ ‘주관·소신’ ‘교과서 국정화’ 응답이 일제히 늘어 박 대통령 지지층은 시정연설에 어느 정도 반향을 보인 것 같다”고 밝혔다. 단단한 지지층을 다시 결집하는 데에 국회 시정연설이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특히 시정연설에서 나온 경제정책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 지지자들이 늘어난 점이 이 분석을 뒷받침한다. 다소 이념적인 색채를 띤 이슈 대신 민생에 관한 이슈로 눈길을 돌리게 해 지지층으로부터는 좋은 점수를 얻은 것이다.

반면 박 대통령 직무 수행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자들이 든 이유 가운데에서는 ‘교과서 국정화’(31%)를 지목한 비율이 가장 높고, ‘소통 미흡’(15%)이라는 답이 뒤를 이었다. 반대층에게는 국정화 이슈 대신 민생문제로 돌파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소통의 부족으로 읽힌 셈이다. 민주정책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장기적으로는 민생문제를 포함해 청와대와 여당이 유리한 판으로 옮겨가는 것이 그쪽에겐 유리하겠지만 당장 논의의 지점을 이동하려는 시도는 더 격렬한 반대를 부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현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10월 26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국정화에 반대하면 “국민이 아니다”라고 발언한 것도 박 대통령을 비롯한 정권 핵심층의 정국 인식을 반영한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이미 지지층과 반대층이 선명하게 대립하고 있는 이상 고정 지지층이 확고한 여권의 입장에서는 지지율이 다소 밀릴 때가 있더라도 충성도 높은 지지층을 우선하게 된다는 것이다. 국정화 논란을 거쳐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노동개혁’, ‘공공개혁’ 등의 주제로 넘어가면 ‘대기업·정규직 노조 대 그밖의 노동자’, ‘공무원 대 국민’의 구도로 반대층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여권의 한 인사는 “야당이 설령 국정화 싸움에서 이기더라도 현실적인 이익은 그리 크지 않겠지만, 여당은 이미 지지층 결집이라는 열매를 얻은 뒤에 야당의 국정화 ‘약빨’이 떨어질 총선 무렵 다시 한 번 우위에 서는 이슈를 개발하면 된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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