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의 정치시평]이래선 하늘이 두 쪽 나도 못 이긴다

이철희 |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2015. 11. 2.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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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계절도 불쑥 등장하지 않고 미리 전갈을 보낸다. 흔히 봄의 전령은 개나리이고, 가을의 그것은 코스모스라고 한다. 문득 계절의 전령을 떠올린 것은 지난 10월28일에 있었던 재·보궐선거 결과 때문이다. 국회의원 선거도 없었고, 역사교과서 국정화 탓에 언론의 관심을 얻지 못했고, 투표율(20.1%)도 너무 낮았다. 이 때문에 지나친 해석은 금물이나 나쁜 조짐의 기운이 드는 건 사실이다. 따라서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10·28 재·보선이 내년 총선 결과를 알리는 전령이 아닐까?’

전국 24개 지역에서 치러진 이번 재·보선에서 새누리당은 기초단체장(경남 고성) 1곳, 광역의원 7곳, 기초의원 7곳 등 총 15곳에서 승리한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광역의원 2곳에서 이기는 데 그쳤다.

광역의원 선거가 치러진 9곳에서 새누리당이 7곳을 이겼는데, 선거 전과 비교할 때 이는 새누리당이 수도권 4곳에서 새정치연합으로부터 의석을 뺏은 것이다. 14곳의 기초의원 선거에서는 새누리당과 무소속이 각각 7곳에서 승리했고, 새정치연합은 단 1곳에서도 이기지 못했다. 인천 부평과 경기 광명 등 당초 새정치연합이 강세인 지역에서조차 패했고, 문재인 대표의 지역구에서조차 졌다. 새정치연합 후보들이 3등을 한 곳도 적지 않다.

답을 찾아보기 전에 먼저 분명하게 짚고 갈 게 있다. 새누리당 지지층은 언제나 열심히 투표하고, 새정치연합 지지층은 마음이 움직일 때 투표한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전체 투표율이 낮으면 절대적으로 새누리당에 유리하다. 통상 재·보선은 여당의 무덤이라지만 착각이다. 새누리당이 야당일 때 각종 재·보선에서 승리한 탓에 이런 오해가 생겨났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여당일 때나 야당일 때나 늘 재·보선에서 강세였다. 그것은 새누리당이 투표장에 열심히 나가는 지지층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투표율이 낮아도 너무 낮으니 이번 패배가 새정치연합에 별일 아닌 걸까? 아니다. 정당별 지지층의 특성 차이를 감안하면 새정치연합의 승리 문법은 분명하다. 대통령·정당 지지율에서 확인되는 40% 내외의 여권 지지층을 제외한 나머지 유권자들을 투표장에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슈나 인물, 또는 조직을 통해 그들에게 찍을 마음, 투표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이건 전적으로 새정치연합의 몫이다.

무릇 정당이라면 어쩌다 부는 바람에만 기대선 안 된다. 10·28 재·보선은 새정치연합이 지지층 동원에 실패하는 차가운 현실을 뼈저리게 보여준다. 이대로 가면 새정치연합은 총선에서 참패(shellacking)를 넘어 붕괴(debacle)할 수도 있다.

이번 선거 결과만 놓고 보면 새정치연합은 수권정당은 고사하고 제1야당이라 말하기도 어려운 지경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찬반이 성패를 가른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반대여론이 더 많은 상황에서 졌다는 점도 고려는 해야 한다. 이런 조건에서조차 턱없이 밀렸다는 사실을 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국정화 반대 등 새정치연합은 유리한 분위기를 투표로 연결시키지 못했거나 못하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호박이 넝쿨째로 굴러떨어져도 먹지 못할 정도로 무능한 정당, 선거치(選擧癡)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래선 하늘이 두 쪽 나도 못 이긴다.

강한 정당의 기본은 튼실한 풀뿌리 기반이다. 이게 없으면 아무리 좋은 정책이나 인물을 가져도 헛일이다. 유권자와 소통할 수 있는 독자 채널이 없으면 부득불 언론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새정치연합은 앞장서서 풀뿌리 조직인 지구당을 없애버렸고, 적극적으로 당원들을 소외시켰다. 그런데도 그들은 한가하게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집단난투극을 벌이고 있다. 선거 준비를 못할 정도로 흔들어놓고, 선거에서 졌으니 물러나라고 한다. 선거에서 화끈하게 붙어볼 노력은커녕 책임론에 휩싸이지 않도록 보신하는 데 급급하다. 양쪽 모두 비겁하고, 좀스럽다.

유방이 한 왕조를 창업할 수 있게 만든 장량, 그가 선택한 신의 한 수는 한신을 별도 세력으로 풀어준 것이다. 유방의 휘하에서 벗어난 한신은 마음껏 항우를 유린했다. 광대한 땅과 군사를 거느리게 되면 한신이 독립할 우려가 있음에도 장량은 유방을 설득해 한신이 자유롭게 놀게 해줬다. 그래서 숱한 전투에서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전쟁에서 이겼다. 지금 새정치연합엔 이처럼 담대한 전략이 필요하다. ‘장량’을 얻고, ‘한신’을 풀어주는 것, 이게 문재인 대표와 새정치연합이 할 일이다.

<이철희 |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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