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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대포'에 쓰러진 아버지에게 딸이 눈물로 보내는 편지

입력 2015. 11. 18. 12:06 수정 2015. 12. 07.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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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백남기씨 막내딸 백민주화씨
“해야할 일 한건데 왜 차가운 바닥에 누워있어?”
“눈 번쩍 떠서 다시 제자리로 꼭 돌아와줘. 꼭.”

그의 이름은 민주화(民主花)이다. ‘민주주의 세상에 꽃이 되어라’란 의미로 아버지가 지어줬다. 그는 한국 사회의 민주화 운동이 막 꽃을 피우기 직전인 1986년 태어났다. 그랬던 그가 29살이 되었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백민주화(29)씨는 지난 14일 민중 총궐기 대회에서 경찰이 쏜 캡사이신 물대포를 맞아 중태에 빠진 농민 백남기(68)씨의 막내딸이다. 네덜란드인과 결혼해 네덜란드에서 사는 민주화씨는 민중 총궐기 대회에 참가했다가 중태에 빠졌다는 아버지 소식을 듣고 만리타향에서 애를 태우고 있다. 오는 20일 귀국 예정인 민주화씨는 지난 16일과 18일 자신의 페이스북(▶바로 보기)에 아버지 백남기씨에게 보내는 편지를 실었다.

민주화씨는 18일 올린 편지에서 “아빠, 아빠가 건강할 땐 맨날 보고 싶진 않았거든? 그런데 지금은 한 시간에 한 번씩 보고 싶다. 원래 막내딸들이 이렇게 못났지”라고 시작했다. 이어 “얼른 일어나서 내가 며칠 간 쏟은 눈물 물어내 아빠. 그렇게 누워만 있으면 반칙이야 반칙”이라고 했다.

그는 “지오(두 돌이 지난 민주화씨 아들)한테 ‘할아버지 일어나세요’ 이거 열 번 연습시켰는데 완전 잘해”라며 “도착하자마자 달려갈게. 거칠지만 따뜻한 손 하나는 딸이 하나는 손자가 꼬옥 잡아줄게. 춥고 많이 아팠지? 아빠 심장에 기대서 무섭고 차가운 기계들 말고 우리 체온 전달해줄게”라고 썼다.

“물대포 영상 못봐…사진만 봤는데도 심장이 땅에 떨어지는 느낌”
“독재정부에 맨몸으로 싸울 정도로 강한 분…일어날 거라 믿는다”

민주화씨는 16일 올린 편지에서도 “아빠는 세상의 영웅이고픈 사람이 아냐.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지”라며 “그런데 아빠가 왜 저렇게 다쳐서 차갑게 누워 있어? 시민이자 농민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한 건데 왜 저렇게 차가운 바닥에 피까지 흘리며 누워 있어? 뭘 잘못한 건지 난 하나도 모르겠는데 누가 그랬어?”라고 썼다. 이어 “핸드폰 액정 속에 있는 아빠 얼굴 비비며 훌쩍이며 한국 가는 날만 기다리고 있는데 하루가 십년 같아. 기도 소리 들려? 절대 놓으면 안돼. 정말 많은 분들이 기도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백남기씨는 18일 현재까지 의식이 없는 상태로 외부 영양제와 약물에 생명을 의존하고 있는 위독한 상태다.

민주화씨는 <한겨레>와의 페이스북 인터뷰에서 “저는 아직 (경찰이 아버지에게 물대포를 쏘는) 비디오를 보지 못했다. 단지 사진만 봤는데 심장이 땅에 떨어지는 느낌”이라며 “아빠는 독재 정부에 맨몸으로 싸울 정도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모두 강한 분이기 때문에 일어날 거라고 믿고 그것이 제가 원하는 전부”라고 했다. 그는 이어 “아버지는 교육면에서 엄격하셨지만 그 밖에는 사랑이 넘치는 분”이라며 “‘사교육은 없다’는 교육관 아래 직접 삼남매를 가르쳤고, 마지막 선택은 늘 저희에게 맡기셨던 분이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하는 백민주화씨 18일 페이스북 편지 전문

마지막 편지.

아빠. 이제 이틀 남았어.

아빠가 건강할 땐 맨날 보고싶진 않았거든? 근데 지금은 한 시간에 한번 씩 보고싶다. 원래 막내 딸들이 이렇게 못났지. 에휴.

오늘은 좀 덜 울었어. 아빠 똑 닮아서 넙대대 하자나. 거기에 떠블호빵마냥 부었었거든? 아빠가 나 못 알아 볼까봐 오늘은 참았지 좀.

그거 기억나? 애기 때부터 우리한테 이유없이 징징 대지말라구 호랑이 눈 뜨고 어허!! 했었잖아ㅎ

그래 놓구선 막내 딸 다 크니 전화하면 아빠가 먼저 훌쩍거려서 언니가 우리 둘이 똑같이 울보라고 놀리잖아 지금도.ㅋ

얼른 일어나서 내가 며칠 간 쏟은 눈물 물어내 아빠.그렇게 누워만 있으면 반칙이지 반칙.

지오한테 할아버지 일어나세요! 이거 열번 연습시켰는데 완전 잘해. 아빠 손자라 똑 부러져 아주 그냥. 지오가 할아버지랑 장구치고 춤 출거라는데 안 일어날 수 없을걸. 세상 전부를 줘도 안 바꿀 딸이라고 이십 년 넘게 말하더니 그말 이제 손자한테 밖에 안하잖아!!!!ㅎ

도착 하자마자 달려갈게. 거칠지만 따뜻한 손 하나는 딸이 하나는 손자가 꼬옥 잡아줄게.

춥고 많이 아팠지? 아빠 심장에 기대서 무섭고 차가운 기계들 말고 우리 체온 전달해 줄게.

오늘도 하루도 평온하길...사랑해요.

*응원해주시는 한분 한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16일 페이스북 편지 전문

나는 삼십 년간 진행중인 아빠 딸이니 내가 잘 알아.

아빠는 세상의 영웅이고픈 사람이 아니야.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한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지.

근데 아빠..왜 저렇게 다쳐서 차갑게 누워있어? 시민이자 농민으로서 해야할 일을 한건데 왜 저렇게 차가운 바닥에 피까지 흘리며 누워있어? 뭘 잘못 한건지 난 하나도 모르겠는데 누가 그랬어?

수많은 사진들 다 뚫고 들어가서 안아주고 싶고 피도 내 손으로 닦아주고싶어 미치겠어...

핸드폰 액정속에 있는 아빠 얼굴 비비며 훌쩍이며 한국 가는 날만 기다리고 있는데 하루가 십년같아. 기도 소리 들려? 절대 놓으면 안돼. 정말 많은 분들이 기도해 주고 있어.

아빠 이제 진짜 영웅이 될 때야. 지오랑 장구치며 춤추고 잡기놀이 하던 우리 가족의 영웅. 눈 번쩍 떠서 다시 제자리로 꼭 돌아와줘. 꼭.

사랑하고 많이 보고싶어.

ㅡ막내딸 지오애미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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