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취-질병에 우는 '출산공장의 개들'

고은경 2015. 11. 20. 0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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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한 환경 속 방치… 평생 출산 반복

동물자유연대, 77마리에 새 삶 찾아줘

번식장 내 개들은 죽을 때까지 1년에 2번씩 출산을 반복한다. 경기도 남양주 진전읍의 한 번식장 내 뜬 장 속 개가 밖을 바라보고 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대형 마트의 반려동물 매장 진열장에 나와 있는 강아지들부터 인터넷 반려동물 분양 카페에 올라온 강아지들까지. 당장이라도 데려오고 싶을 만큼 귀여운 이 강아지들은 대부분 공장식 ‘번식장’에서 태어난다. 번식장 내 종모견(種母犬)들은 뜬장(배설물을 쉽게 처리하기 위해 바닥에서 띄워 설치한 철창) 속에 갇혀 지내며 1년에 두 번씩 기계처럼 출산을 반복한다. 대부분 불법으로 운영되는 번식장의 어미개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지 못한 채 유선종양, 자궁축농증 등 생식기 관련 질병에 달고 산다.

경기 남양주 진전읍 철거 명령이 내려진 개 번식장 내 강아지들이 뜬장 밖을 바라보고 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가 지난 4일 신고를 받고 찾아 간 경기 남양주 진전읍의 개 번식장에는 77마리의 개들이 방치돼 있었다. 뜬장 아래는 수개월간 청소를 하지 않아 배설물로 가득 차 있고, 비닐이 다 뜯겨나간 하우스 견사에선 개들이 쌓이고 쌓여 굳은 배설물 더미 위에서 살고 있었다. 대부분은 반려견으로 인기가 있는 시추 몰티즈 포메라이언 스피츠 푸들 슈나이저 종이었다.

번식장 주인은 농사를 짓다가 돈이 된다는 얘기를 듣고 1년 반 전 부업으로 번식장을 시작했다. 하지만 판로를 찾지 못하고 사료비조차 감당하기 힘들게 되자 개들을 방치하기 시작했다. 보다 못한 이웃 주민들이 시청에 신고했고, 시청은 이 번식장이 불법으로 운영돼 온 사실을 확인하고는 다음달 중순까지 철거할 것을 명령한 상태다.

경기 남양주 진전읍 개 번식장 내 개들이 뜬장에 방치되어 있다. 구조한 77마리 대부분은 시추 몰티즈 등 이른바 품종견이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동물자유연대와 시민들은 주인이 개들을 다른 번식장이나 식용농장에 팔아 넘기지 않도록 설득했고, 지난 10일 77마리를 모두 구조해 남양주의 보호소로 옮겼다. 이들 중 암컷 60마리는 대부분 생식기 질병을 앓고 있었다. 5마리는 한쪽이나 두 눈 다 실명한 상태였고, 이들은 현재 치료를 받고 건강을 회복하면서 새 가족을 기다리고 있다.

국내 강아지들 대부분을 공급하는 이 같은 공장식 번식장은 1,000~3,000여개로 추정된다. 하지만 동물생산업으로 정식 신고를 하고 영업하는 곳은 89곳에 불과하다. 적게는 100마리, 많게는 300~500마리의 모견을 확보해 새끼를 낳게 하고, 더 이상 출산하기 어려운 개들은 이런 사실을 감추고 다른 번식장에 팔거나 식용으로 넘긴다.

윤정임 동물자유연대 국장은 “전문 번식업자들이 출산하기 어렵게 된 모견을 처분하기 위해 번식업이 돈이 된다고 농민들을 속여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며 “불법으로 번식장을 운영하다 적발돼도 100만원 이하의 벌금만 내면 되기 때문에 극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개들을 사육하고 착취한다”고 말했다.

이런 환경에서 태어난 강아지들의 건강 상태가 좋을 리 없다. 대형 마트나 이른바 펫샵에서 데려온 강아지들 가운데 1,2주도 지나지 않아 죽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번식장은 치료비가 많이 든다며 병든 개를 버리기도 한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번식장에서 기계처럼 생산되는 강아지의 무분별한 공급은 사람들이 쉽게 개를 사고 버리는 문화로 이어지고 있다”며 “반려동물 생산업에 대한 관리와 규제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영상편집=원민우 인턴PD minoo4170@gmail.com

방치된 번식장에서 구조한 강아지. 동물자유연대 제공

▶ 번식장 영상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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