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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모와 태아가 숨졌다' 내가 산 살균제 때문에.."

CBS노컷뉴스 장규석 기자 입력 2015. 11. 23.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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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유족 안성우 씨가 자전거 행진에 나선 사연

◇ 내러티브 리포트: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유족 안성우 (39) 씨

자전거 행진 중인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유족 안성우 씨. 지난 20일 세종정부청사(환경부)에 도착했다. (사진=장규석 기자)
2011년 2월. 설날을 이틀 앞둔 평온한 오후였다. 3살 아들의 낮잠을 재울 무렵이었다. 갑자기 아내한테서 큰 소리가 났다. 방 밖을 뛰쳐나가보니 아내가 숨을 못 쉬었다. 임신 7개월의 아내. 무슨 일이 있어서도 안 되는 시기였다. 바로 119를 불렀다.

병원 응급실. 심장초음파와 폐 엑스레이를 찍었다. 이상이 없었다. 손가락 끝에 달린 맥박측정기에서는 위험상황을 알리는 버저가 계속 울렸다. 의사는 측정기가 고장난 줄 알고 측정기를 3번 바꿨다. 하지만 버저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의사도 원인을 못 짚어냈다. 그러고 이틀, 삼일 만에 허파에서 섬유화가 진행되는 것이 엑스레이로도 잡히기 시작했다. 급속한 진행이었다. 산소호흡기를 댔는데도 아내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만 갔다. 다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중환자실로 건너간 3일 뒤 아내와 뱃속 아기는 함께 세상을 떠났다. 아내는 마지막까지 숨이 막혀 아무말도 못했다. 마지막 목소리도 듣지 못했다. 의사들은 손 쓸 틈도 없이 폐가 망가졌다고 했다. 당장 어린 첫째에게 어떻게 얘기해야 하나 눈앞이 캄캄해졌다. 의사들도 모르는 무서운 증상의 원인을 내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몇 달 뒤, 서울의 한 병원에서 임산부 5명이 아내와 비슷한 증상으로 잇따라 사망했다. 조사결과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 때문이라고 했다. 뉴스를 보다 가슴이 무너졌다. 내가 그것을 사서 그렇게 됐다는 것인가. 집사람하고 아기 때문에 구입했는데… 내가 왜 저걸 샀을까… 부산 본가에 맡겨놓은 첫째를 보러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첫째 아이도 조금만 뛰어놀면 입술이 파래졌다. 한번 걸린 감기는 약을 써도 낫지 않았다. 건강하게 잘 자랐을 아이. 내가 그걸 사는 바람에 그 아이 인생도 뒤바뀐 것이다… 죽고 싶었다.

내가 산 가습기 살균제는 덴마크에서 개발한 원료라 인체에 무해하다고 광고했다. 육아 카페에서도 입소문으로 알려진 제품이었다. 마침 공동구매를 한다고 해서 고르고 골라 산 가습기 살균제였다. 기업들이 독성에 관해 몰랐을까. 나는 기업들이 절대 모른다고 생각지 않는다. 지금까지 제조사들은 한마디 사과도 없다. 피해보상 소송은 4년째 진행 중이다. 내가 살균제를 사면서 번 돈으로 기업들은 소송을 벌인다. 기가 막힌 일이다.

늦었지만 검찰이 조사를 시작했다. 사건 발생 4년만이다. 4년 동안 기업들은 철저히 준비했을 것이다. 다니던 회사를 사직했다. 자전거를 꺼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는 길목마다 사람들에게 알린다. 여기 고통받는 피해자들이 있고, 사건은 해결되지 않았다고. 검찰이 기업들에게 면죄부를 주지 않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그렇게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아내를 살려내라'는 글귀를 가슴에 품고.

◇ 태아는 사망자 집계 빠지고, 지원 대상도 안 돼

안성우씨와 최예용 소장의 자전거 행진 경로 계획 (환경보건시민센터 제공)
안성우(39)씨는 지난 16일 부산에서 자전거·도보 항의행동을 시작했다. 부산을 시작으로 울산, 경주, 대구, 구미, 대전, 세종, 청주, 천안, 오산, 평택, 수원, 안산, 인천, 서울까지 이르는 11일 간의 여정이다.

들르는 지역마다 검찰청에 들러 피해자 민원을 접수하고, 각 지역의 피해자들과 연대해 대형마트 앞에서 항의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25일에는 여의도 옥시 본사 앞에서 24시간 철야농성을 벌일 예정이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이 안 씨와 전체 여정을 함께 하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11월 현재까지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1차와 2차 피해조사가 완료됐다. 530명이 신청해, 살균제 피해가 거의 확실하거나 높은 것으로 인정된(1, 2등급) 사람은 221명에 이른다. 또 이들 피해자 가운데 사망자는 95명이다. 현재 3차 피해조사를 신청한 111명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며, 올 연말까지 4차로 피해신고를 접수 중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자로 인정된 95명에는 산모와 함께 사망한 태아는 집계되지 않았다. 안성우 씨의 둘째도 사망 피해자에 들어가지 못했다. 안 씨는 "태아를 생명으로 보고 낙태도 금지하고 있는데, 사망 피해자로 집계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최예용 소장은 "집계에 포함되지 않은 태아 사망자가 10명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뒤늦게나마 시작한 피해자 의료비와 장례비 지원도 여전히 구멍이 많다. 앞서 언급한 대로 태아사망에 대한 지원비는 전혀 없고, 지방에 있는 피해자들이 서울에 있는 단 하나의 지정병원에 정기검진을 받기 위해 쓴 교통비도 지원 대상에 빠져있다. 수많은 피해자들과 유족들이 살균제를 '구매한 죄'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지만, 정신치료나 심리상담 비용 또한 지원되지 않는다.

◇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지원 거부한 답답한 사연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아픔을 딛고 페달을 밟는 안성우 씨 (사진=장규석 기자)
그리고 이것보다 피해자와 유족들이 더 걱정하는 것은 정부의 지원 기준이 가해 기업들의 방패막이로 사용될 가능성이다. 정부의 비용지원은 직접적인 폐 질환에만 국한돼 있다. 가습기 살균제가 다른 장기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정부는 관련 연구나 재조사 계획이 없다.

또, 정부는 의료비와 장례비를 지원한 뒤, 해당 비용을 기업들에게 구상권을 신청해 받아낼 계획이다. 가해기업들이 정부의 지원 기준을 방패로 삼아 3, 4 등급 피해자나 다른 질환으로 고통받는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을 회피할 가능성이 그래서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안성우 씨는 1등급 피해자로 분류된 첫째 아들에 대해서는 정부에 비용지원 신청을 하지 않았다. 지금도 정기검진을 받기 위해 부산에서 서울까지 아들을 데리고 지정병원에 가야하고, 비염과 천식, 떨어지지 않는 감기로 많은 비용이 들어가고 있지만, 지원을 거부했다.

안 씨는 "나중에 그 아이 인생에 어떤 질환이 올지 모르는데, 폐 질환에 대해서만 인정하고 지원을 받아버리면 나중에 당연히 받아야할 검사를 제한할 수 있다는 걱정이 있다”며 “아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거부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에게 전혀 우호적이지 않다. 소송이 4년째 늘어지면서 피해자들은 지쳐가고 있다. 최예용 소장은 "기업들이 물 밑으로 이런 피해자들을 접촉해 보상비를 후려치면서 소 취하를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환경부도 올 연말을 끝으로, 더 이상 피해조사 신청을 받지 않기로 했다. 피해가 추가로 발생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계획에 변화는 없다. 지금으로선 검찰조사가 피해자들의 유일한 희망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4년이나 지난 상황에서 제대로 된 수사가 될 수 있을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안 씨의 자전거 행진은 그래서 더 절실하다.

[CBS노컷뉴스 장규석 기자] hahoi@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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