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궁예도성(弓裔都城)

선우정 논설위원 2015. 12. 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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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철원 평화전망대에서 북녘을 바라보면 눈이 탁 트인다. 한반도 정중앙 풍천원(楓川原) 고른 벌판은 만주까지 이어질 듯 지평선에 닿아 있다. '대(大)동방국'을 꿈꾼 풍운아 궁예가 이곳에 도성을 만든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한눈에 봐도 진취적인 땅이다. 궁예가 만든 도성 둘레는 고구려 국내성의 다섯 배에 달했다고 한다. 야심이 지나쳤던 것일까. 궁예는 '외눈박이 폭군' 오명을 뒤집어쓰고 여기서 몰락했다. 고려사는 이렇게 평했다. '국토는 황폐한데 궁궐만 크게 지어 원망과 비난이 일었다.'

▶그 후 천 년 동안 시인들은 이 도성에서 권력 무상(無常)을 노래했다. "궁왕(弓王) 대궐터에 오작이 지저귀니 천고흥망을 아난다 모르난다."(정철) "성곽은 황량하게 숲을 이루고 옛 궁궐은 사람 없는 폐허 되었네."(김창립) 이런 노래조차 6·25전쟁 후 시인이 접근할 수 없는 비무장지대(DMZ) 안에 도성이 들어가면서 뚝 끊겼다. 5년 전 한국 언론 사상 처음 이곳을 탐방한 본지 취재팀은 이렇게 전한다. "성벽 가장 아래와 위 꼭짓점이 각각 DMZ 남·북방 경계선과 맞닿으면서 도성은 DMZ 안에 쏙 들어간 형태가 됐다."

▶게다가 군사분계선과 경원선 철도에 의해 도성이 네 쪽으로 갈렸다고 한다. 지나치게 처량한 모습이다. 도성 주변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철의 삼각지대'가 펼쳐진다. 서쪽 백마고지에선 열흘 동안 스물네 번 주인이 바뀌는 접전 속에서 1만4000여 청춘이 목숨을 잃었다. 이곳에서 전투를 지휘하던 김일성이 패배 후 사흘 내내 울었다는 김일성고지도 솟아 있다.

▶엊그제 역사학자와 정치인들이 남북 공동으로 궁예도성을 발굴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수십 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많은 유적이 보존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역사를 복원하는 동시에 남북 교류의 가교로 삼자는 것이다. 비운(悲運)의 황성옛터를 통일의 구심점으로 만들자는 것이니 철원 사람들에게 이보다 반가운 구상이 없을 것이다.

▶조선의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철원에 대해 '들판이 넓고 산이 낮아 평탄하고 명랑하지만 메마르고 돌이 벌레 먹은 듯하니 이상하다'고 평했다. 사십 년 전 대규모 저수지 건설로 땅의 메마름은 풀렸고 '벌레 먹은 듯 이상한' 용암은 오히려 관광 자원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여기에 궁예도성 발굴로 남북 화해가 실현된다면 '한반도 명당(明堂)' 철원은 일약 통일 수도의 후보지로 떠오를지도 모른다. 천 년 전 궁예는 이런 날을 내다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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