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주의 저널리즘이 언론을 망치고 있다"

이승환 미디어 칼럼니스트 입력 2015. 12. 14.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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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미디어] '비욘드 저널리즘' 번역한 김익현 지디넷 미디어연구소 소장

[미디어오늘 이승환 미디어 칼럼니스트]

“기자는 ‘너는 개자식’이라고 쓰면 안 돼. 그렇게 쓰면 그 자식은 개자식이 안 되고, 내가 개자식이 되는 거지.”

기자 출신의 소설가 김훈은 지난 2006년 7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그의 거친 표현을 정제해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기자는 의견이나 주장 보다 ‘사실’을 전면에 내세워 써야 한다.

김훈은 또 이 인터뷰에서 이렇게도 말했다. “그 자식이 개자식이라는 말을 입증해야 해. 입증하려면 수많은 사실들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해.”

이 같은 주장은 한국 언론이 금과옥조로 삼는 원칙이다. 요컨대 ‘객관주의 저널리즘’이다. 표면적으론 사실을 내세우고 기사의 이면에 당파적인 목적을 숨기는 게 현실이지만, 일단 편의상 그렇다고 하자.

미국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객관주의 저널리즘은 미국 언론 보도의 전통이자 지향점이다. ‘인용 저널리즘’이 대표적이다. ‘어느 교수가 뭐라고 말했다’는 식의 인용 문법은 미국 언론 보도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전통 저널리즘(객관주의 저널리즘)은 저널리스트들이 말할 수 있는 것뿐 아니라 그들이 제시하는 세계관까지 걸러낸다...(중략)... 저널리즘에서 객관주의, 공정성, 불편부당 그리고 균형은 저널리즘을 통해 세상을 알게 되는 우리 능력을 제한할 수 있다.”(비욘드 뉴스: 지혜의 저널리즘, 166쪽, 미첼 스티븐스 지음, 김익현 옮김)

 
 
'비욘드 뉴스: 지혜의 저널리즘' 저자 미첼 스티븐스 뉴욕대학교 아서카터연구소의 저널리즘 담당 교수
 

그런데 한 권의 책이 최근 국내에 출간했다. 도발적일 만큼, 객관주의 저널리즘에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미첼 스티븐스 뉴욕대학교 아서카터 연구소의 저널리즘 담당 교수가 쓴 ‘비욘드 뉴스: 지혜의 저널리즘(BEYOND NEWS: The Future of Journalism‧비욘드 뉴스)’이다.

‘그가 개자식인 사실을 입증’하는 데 골몰하는 언론에 저자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기자라면 그가 ‘왜’ 개자식이 되었는지 설명하라는 게 스티븐스 교수의 주장이다. 해설과 관점을 당당히 기사에 내세우고 ‘개자식이다’는 주장도 내라는 것이다. 이른바 ‘지혜의 저널리즘’이다. 물론 이를 위해 기자의 해석과 관점을 뒷받침할 만한 사실 확보를 전제해야 한다.

“인터넷 시대(모바일 웹 시대)가 본격화됐다. 저자가 던진 화두 중 ‘기존 사실 보도는 이 시대에서 더 이상 경쟁력을 갖기 힘들게 됐다’는 부분에 주목해야 한다. 국내 언론인들은 객관보도라는 미명 하에 생각과 비판을 방기한 측면이 많다.”  

이 책을 한국어로 옮긴 김익현 지디넷코리아 미디어연구소장(52)의 설명이다. 김 소장과 인터뷰를 하기로 한 건 그가 저자의 거리낌없는 주장을 가장 잘 이해할 사람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김 소장은 ‘비욘드 뉴스’를 포함해 ‘하이퍼텍스트 3.0(번역서)’과 ‘웹 2.0과 저널리즘 혁명(저서)’ 등 그간 단독 저서 5권‧번역서 8권‧공저 4권을 냈고, 지디넷코리아 연구 소장 재직 전 전자신문‧디지털조선일보‧아이뉴스24 등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지난 10일 서울 상수동의 한 카페에서 김 소장과 1시간 가량 대화를 나눴다.

 
 
김익현 지디넷코리아 미디어연구소장(52)이 '비욘드 저널리즘'를 포함해 그간 낸 번역서 등을 모아두고 사진 촬영에 임하고 있다.
 

- 책의 원제는 ‘지혜의 저널리즘’이 아닌 ‘미래의 저널리즘(The Future of Journalism)’이다. 지혜의 저널리즘으로 제목을 바꾼 이유가 있는가?

“출판사와 상의해 제목을 바꿨다. 지혜의 저널리즘이라고 쓰는 편이 저자의 주장이나 책의 핵심 내용을 더욱 잘 드러낸다고 판단했다.”

- 지혜의 저널리즘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쉽게 말해 분석‧해설 기사를 의미한다. 세계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보도다. 출입처 보도 자료로 비유하면, 해당 업체가 보도 자료를 낸 배경을 설명하는 분석한 기사다. 또는 보도 자료가 기술한 사실 이면에 숨은 의미‧맥락‧배경을 파헤치는 분석‧해설 보도를 가리킨다. 저자의 주장은 웹이 기본 플랫폼으로 자리 잡으면서 저널리스트의 역할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 저자가 18~19세기 저널리즘 태동기에서 영감을 얻은 것 같다.

“스티븐스 교수가 18~ 19세기를 얘기하는 건 현재의 보도 형태가 저널리즘이나 기사쓰기의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오히려 저널리즘의 태동기를 좇다보면, 사실 전달에 구애받지 않는 보도 형태가 근원적인 미디어상이라는 의미다. 이는 저자의 전작인 ‘뉴스의 역사’에서도 잘 나온 부분이다.”

저자는 책 초반부에 18~19세기 저널리즘을 소개하는 데 70여 쪽의 지면을 쓴다. 벤자민 프랭클린 등 “가장 뛰어난 저널리스트들이 스스로를 문학과 철학자로 생각”하던 시기를 들춘 것이다.

또 19세기는 대중을 상대로 쉽고 간결하게 보도하는 페니신문(Penny Paper)이 등장한 시기다. 페니 신문의 보도는 생선뼈를 발라내듯 사실만 추려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스트레이트 기사의 효시로 평가된다.

하지만 그 무렵 주류 미디어는 ‘소설’이었다. 스트레이트 기사 문법에 얽매이지 않고 사상이나 현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글쓰기에 대중은 환호했다. 빈민의 억눌린 삶을 그린 영국 찰스 디킨스의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 미국 소설가 마크 트레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 등이 부당한 권력을 폭로하는 언론의 역할을 했다. ‘자본론’의 저자 칼 마르크스도 19세기에 언론인으로 활동한 바 있다.

- 저자는 20세기에 꽃피워 현재 기사쓰기의 원칙으로 인정받는 ‘인용 저널리즘’에 비판적이다.

“취재원을 인용 보도하는 자체를 비판하는 건 게 아니다. 저자가 비판하는 건 ‘맹목적 인용’이다. 아무런 가치 판단 없이, 그저 취재원의 말을 옮기는 보도를 문제 삼는 것이다. 우리 기자들에게 그런 습속이 있지 않은가. 단순히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전문가의 멘트를 아무런 가치 판단없이 기사에 옮기지 않은가. 전문가의 멘트라고 꼭 전문적이지는 않다. 기자 자신이 ‘전문가적인 수준’에 도달해 가치 판단을 한 뒤 인용할 때 신중을 기하라는 게 저자의 메시지다.”

 
 
 
 

- 현실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주문이다(웃음).

“당연히 저자의 주장은 이상적이다. 기준도 상당히 높다. 책에서 미국 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먼을 자주 인용하는데 기자가 크루그먼 수준의 전문가적 식견과 통찰을 갖기는 사실상 힘들다(웃음). 한국 언론사 종사자들이 이 책을 읽을 땐 문제의식을 받아들여야지, 해법에 주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현재 한국 언론의 문제에 해답을 제시하는 책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긴 해도, 책을 보면 미국과 한국 언론은 상황이 비슷하다. 특히 국내 언론은 제대로 된 분석‧해설 기사를 쓰기에 더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다. 주요 언론사를 목표로 삼고 성장하는 중소 언론사의 경우 더욱 그렇다. 하루에 속보도 쓰고 보도 자료도 쓰고 기획 기사도 써야 한다. 한마디로 시간이 없다. 물리적 한계 때문에 ‘지혜의 저널리즘’은 시도조차 힘들다.

“조직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 한 지혜의 저널리즘을 도입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언론사 사주 등 최고 경영자의 인식 변화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익구조’ 등 현실적인 부분을 생각하면 지혜의 저널리즘을 당장 언론사에 도입하라고도 말 못하겠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제대로 된 분석 기사, 소위 말하는 수준 높은 기사가 나오면 주목을 끈다. 독자도 주목하고 출입처 관계자도 주목하고 타사 기자들도 주목한다. 지혜의 저널리즘, 즉 기자의 전문가적 관점이 담긴 분석 기사들은 중소 매체들이 성장하는 데 디딤돌이 된다. 기사야말로 해당 매체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핵심적인 기여를 하기 때문이다. 국내 언론 생태계를 고려하면 저자의 주장은 주요 매체 보다 성장 중인 중소 매체 언론인들이 귀담아 들을 부분이 많다.“

 
 
비욘드 뉴스 : 지혜의 저널리즘 표지.
 

- 사주들이 지혜의 저널리즘을 받아들일지 회의적이다. 일단 분석이나 해설 기사는 ‘큰 돈’이 안 된다. 거의 모든 언론사는 기업 광고나 협찬을 통한 수익 구조를 하고 있다. 오히려 기업의 사실상 홍보자료인 보도 자료를 공들여 쓰는 게 수익에 도움이 된다.

“맞다. 솔직히 말하면 지혜의 저널리즘이 잘 구현된 기사(분석 기사)를 쓴다고 트래픽이 갑자기 늘어나지 않을 것이다. 수익이 곧바로 따라오는 것도 아니다. 매체 인식이 달라지는 데 장시간이 필요하다. 문제는 현재 한국 언론사들이 그 긴 시간을 기다리면서 장기 전략을 수행할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자. 한 출입처에서 뿌린 보도자료를 처리한 기사들이 하루에 많게는 수 십 건이 쏟아진다. 이런 기사들에서 독자들은 무슨 유의미한 정보를 얻는가. 그런 기사들을 쓰는 기자 개인의 미래 역량 강화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 마디로 좀 더 부가가치 높은 곳에 집중하라는 의미다. 기자 개인을 위해서라도.“

- 전문기자만이 미래에 살아남는다는 전망은 많다. 그러나 반복해서 하는 얘기지만 전문기자가 되기 어려운 ‘현실’이라는 벽이 있다.

“예를 들어보자. 나는 정보기술(IT) 글로벌 뉴스 전문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글로벌 뉴스 전체에 대해 전문가 수준의 글을 쓰겠는가. 그건 불가능하다. 내 경우 몇 개의 주제나 현안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해봤다. 뉴스가치가 큰 것 중 주목했던 건 두 가지였다. 하나는 삼성과 애플의 특허소송이고, 또 하나는 미국의 망중립성 공방이다. 그랬더니 나름 성과가 있었다. 기자들도 ‘선택과 집중’을 해 전문성을 길러야 한다.”

김 소장이 말했듯 스티븐스 교수의 기준은 상당히 높다. 미국 권위지인 ‘뉴욕타임스’를  기준으로 삼은 그는 국내 언론에서 선보이는 분석‧해설 기사의 ‘수준’에 당혹스러움을 느낄 게 틀림없다. 무엇보다 문제는 당파성이다. 진보든 보수든 정치성 지향성이 뚜렷한 언론사일수록 관점이 담긴 기사들을 쏟아낸다. ‘선동적‧자극적‧선정적’ 보도의 사례로 꼽히는 기사들을 말이다. 스티븐스 교수도 21세기 초 이라크 전쟁을 편향적으로 보도한 미국 폭스 뉴스를 지혜의 저널리즘의 ‘나쁜 사례’로 지적한다.

“저자도 지혜의 저널리즘의 나쁜 사례들을 우려하지 않는가. 이라크 전쟁을 우파적인 관점에서 편향 보도한 폭스 뉴스도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의견을 직접 드러내는 보도는 편향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저자는 단순히 해석과 분석만 강조하는 게 아니다. 지혜의 저널리즘을 위해, 퀄리티 저널리즘을 위해, 양질의 분석 기사를 위해 언론사의 채용 및 교육시스템까지 다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게 조건이 돼야 분석과 해석이 가능하다.”

채용과 제도를 쏵 바꿔야 한다니, 저자의 주장은 분명 도발적이고 과감하다. 그만큼 미국 언론이 독자의 신뢰를 쌓지 못해 위기에 처했다고 진단한 것이다.

한국 언론의 사정은 미국 보다 결코 낫지 않을 것이다. 한국 사정을 생각하면 스티븐스 교수의 주장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만, 문제는 김 소장이 회의적으로 밝혔듯 국내 언론의 문제를 해결할 만한 현실적인 방안이 딱히 없다는 것이다. 현 시스템에서 기자 개인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독자적으로 전문성을 기르는 게 그나마 현실적인 대안일 터다.

한국의 기자들은 ‘개자식’ 만큼이나 심한 욕인 ‘기레기(기자와 쓰레기를 합친 용어)’라고 불리며 조롱당하고 있다. 한국에서 기자로 살려면, 평생 저널리스트로 살 마음이라면 저자의 다음 조언을 기억하자.

“그들은(저널리스트들은) 좀 더 큰 야심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새로운 환경에서는 더 큰 야심을 가져야만 한다.”(비욘드 뉴스, 241쪽).

그리고 생각해보니, 김훈이 기자 시절 이름을 알린 기사는 자신의 관점을 아낌없이 드러낸 칼럼이나 르포, 즉 ‘지혜의 저널리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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