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두산인프라코어 사태는 '한국 사회의 축소판'

입력 2015.12.17. 20:16 수정 2015.12.18.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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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두산인프라코어 구조조정 통해본 실태·문제점
희망없는 ‘희망퇴직’…쉬운 해고로 이어진다

두산그룹 계열사인 두산인프라코어가 취업난을 뚫고 갓 입사한 20대 정규직 사원들까지 감원 대상에 포함시킨 데 대해 사회적 공분이 일어난 것은 30대부터 50대까지 저마다 같은 불안감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구조조정·희망퇴직·비정규직이라는 단어는 일상화됐고, 노동권은 그만큼 후퇴를 거듭해왔다. 두산인프라코어의 구조조정 행태는 노동권이 무시되고 있는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라 할 만하다.

쉬운 해고로 악용
노동자 동의 받아 규제 안받아
대규모 정리해고 우회수단으로

■ ‘희망’ 없는 희망퇴직

희망퇴직은 무엇보다 쉬운 해고의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 비교적 까다로운 제한 조건을 둔 정리해고나 징계해고, 일반해고에 견줘 희망퇴직은 노동자의 동의를 받아 진행되는 탓에 아무런 제도적 제한이 없다. 결국 ‘강요된 희망퇴직’은 대규모 정리해고의 우회로인 셈이다.

실제로 두산인프라코어에서도 회사 쪽이 희망퇴직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는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이 회사 직원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이미 희망퇴직 신청을 2번 받았으니 이제 정리해고 요건이 된다. 다음에 정리해고로 가면 위로금도 못 받는다는 식으로 압박해 희망퇴직 서명을 받아낸 부서가 있었다”고 말했다. 두산인프라코어가 희망퇴직을 거부하는 직원들에게 대기발령을 낸 뒤 ‘회고록 쓰기’ 등 인권 침해적인 교육을 시키고 있는 것도 사실상 희망퇴직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보인다.

노무법인 참터의 유성규 노무사는 “희망퇴직은 노동자의 동의를 받아 근로계약을 해지하는 겉모양 때문에 해고 절차를 우회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앞서 희망퇴직이 시행된 다수 기업들에서 업무를 주지 않거나 사내 왕따를 시키는 등 희망퇴직에서 강제수단이 활용됐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두산인프라코어 홍보팀 관계자는 “희망퇴직 신청은 근로자 개개인의 자발적인 의사에 따라 받고 있다. (각 팀장들이) 면담을 하는 과정에서 개인마다 느낌이 달랐던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상시 비정규직화 우려
‘저성과자 일반해고 지침’ 맞물려
명퇴시킨 자리에 기간제 채용

■ 비정규직의 일상화 가능성

이런 희망퇴직 압박은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저성과자 일반해고 지침’ 마련과 맞물려 ‘비정규직의 상시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먼저 희망퇴직을 강하게 압박한 뒤 이를 버텨낸 대상자들을 저성과자로 몰아 해고하는 ‘2단계 비정규직화’로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기업이 저성과자 일반해고라는 칼자루까지 쥐게 되면, 통상 억대에 이르는 위로금을 제시하는 희망퇴직의 유혹은 더 강해지게 된다. 명확한 요건도 없는 희망퇴직이 상용화되면 상시적인 구조조정이 시행되는 셈이고, 이는 결국 비정규직이 일상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두산인프라코어에서는 정규직 희망퇴직자들이 기간제 노동자로 재고용된 사례가 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경영난을 이유로 올해 2월과 9월 사무직 노동자들을 권고퇴직시켰다. 11월엔 생산직 노동자 460명을 추가로 내보냈다. 이런 대규모 감원으로 현장 일손이 부족해지자, 올해 11월 두산인프라코어는 이미 내보냈던 생산직 노동자 가운데 170여명과 한달짜리 기간제 근로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드러났다. 손원영 민주노총 금속노조 두산인프라코어 지회장은 “누가 봐도 일손이 부족할 수준까지 인력을 감축하더니 그 자리에 기존 정규직을 한달짜리 기간제 노동자로 다시 채웠다. 희망퇴직과 구조조정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라고 지적했다.

제도적 보호 어려워
합의 형태…법·노조 보호 힘들어
“노동인권·조건의 문제” 지적 높아

■ 제도적 보호는 난망

희망퇴직이 이런 부작용을 낳고 있는데도 현실적으로 이를 제한할 제도적 장치는 사실상 없다. 희망퇴직이 회사와 노동자라는 두 당사자의 합의로 다뤄지고 있는 탓이다. 노동법 전문가인 최은배 변호사는 “법원은 대부분 희망퇴직을 당사자의 합의에 따른 고용계약의 해지로 보고 있다. 사실상 해고임이 분명한 경우를 제외하면 희망퇴직에 서명한 당사자가 이를 다툴 방도는 없다”고 말했다.

노동조합이 있더라도 희망퇴직에 대해서는 문제제기가 어렵다. 희망자에 한해 퇴직 신청을 받는데다 위로금 등 경제적 보상이 뒤따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노사 교섭 대상으로 보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실제 두산인프라코어에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 지회와 기업노조가 복수로 있지만, 이들은 희망퇴직에 대해 노사 교섭을 요청하지 못했다. 김종진 연구위원은 “희망퇴직은 당사자 쌍방의 문제가 아닌 노동 인권과 노동 조건의 문제이다. 간접적 고용조정을 제한할 수 있는 희망퇴직 규제법안 마련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노현웅 박현정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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