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트랜스젠더로 산다는 것?'.."제 3의性, 마치 없는 존재처럼 여겨"

임재희 2015. 12. 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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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선택한 길, 후회는 없지만 사회적 고립 괴로워
전문가들, 이들을 위한 법과 제도 개선 필요

【서울=뉴시스】임재희 기자 = 한국에서 트랜스젠더는 사회구성원으로서 환영 받지 못한다. 시대가 변해 인식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자신이 원하는 성(性)을 선택했지만 정작 얻은 것은 없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하나다. '트랜스젠더'라는 딱지를 떼고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사춘기에 찾아온 성 정체성 고민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일본 이름은 소라고 한국 이름은 미나(가명)야. 소라가 무슨 뜻인지 알고 싶어?"

'소라'는 일본말로 '하늘'이란 뜻이다. 지난 10일 새벽 서울 용산구에서 40대 초반의 성노동자 A씨를 만났다. 트랜스젠더인 A씨는 한국보다 일본이 친숙하다. 방 안 액자엔 일본에서 찍은 사진들이 걸려있다. 휴대전화 컬러링도 일본 노래다.

"몇 년 전까지 일본에 드나들었던 이유는 한국 사회에 적응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야. 시장에 가면 사람들이 손가락질했어.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이 겉으로 드러나 항상 남의 시선을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이 싫었어."

A씨는 단기체재 비자(90일)를 발급받으며 일본 곳곳의 성매매업소를 돌아다녔다. 3개월에 한 번씩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지낸 시간이 총 8년에 이른다.

"일본 사람들은 남의 일에 간섭하지 않아. 그런 문화가 좋아서 일본에 간거야. 물론 그 곳에서 돈도 많이 벌었지만 노름으로 다 썼어. 외로움을 달랠 곳이 파친코밖에 없었거든."

A씨는 사춘기에 갑자기 찾아온 성 정체성 혼란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어렸을 때부터 여성 호르몬이 많았던 거지. 성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남성을 좋아하는 감정을 느꼈어. 그런 느낌을 참지 못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여성으로 살기 시작했어."

A씨에게 직업 선택의 자유는 사치였다. 성매매에 뛰어든 까닭도 금전적인 어려움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수술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수천만원에 달하는 수술비도 필요 없었다. 단지 먹고 살기 위해 직업이 필요했다. 하지만 번번이 퇴짜 맞기 일쑤였고 결국 성매매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A씨를 받아준 곳은 이태원의 트랜스젠더바가 전부였다.

"갈 수 있는 곳이 이태원에 있는 유흥업소밖에 없었어. 그때는 트랜스젠더들이 일할 수 있는 업소도 손에 꼽을 정도였거든. 그 곳에서 사장을 엄마라고 부르고 나이랑 상관 없이 누구한테나 언니라고 부르면서 일을 시작했어."

과거를 회상하던 A씨는 인터뷰 내내 "세상이 달라졌다"는 말을 반복했다.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른 채 수술부터 하고 호르몬 주사 맞아가며 고생했는데 요즘은 달라. 커밍아웃하고 세상에 나오더라. 옛날 같으면 상상도 못했을 일인데 말이야."

◇내가 선택한 길… "후회는 없다"

20대 중반 나래(가명)씨는 최근 중대한 결심을 했다. 중학교 때부터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성정체성으로 인한 혼란이 오자 괴로웠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관련 정보를 얻기 위해 인터넷을 뒤졌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 달랐다.

인터넷에선 대부분의 트랜스젠더들이 성(性)을 팔면서 쉽게 돈을 벌었다. 그들과 동질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트랜스젠더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성 정체성 혼란은 심해져갔다. 결국 중대한 결심을 하고 2년 전부터 여성으로 살겠다고 마음먹고 여성 호르몬제를 먹기 시작했다.

나래씨는 여성으로 살아가기 위해 다시 한 번 큰 결심을 했다. 바로 성전환수술이다.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지난 몇 년간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했다.

수술에 필요한 2000여 만원을 모으고 성전환수술로 입지를 굳히고 있는 태국으로 눈을 돌렸다. 그는 3개월 후에 수술을 받는다고 말했다.

"수술 예약을 잡았어요. 그 동안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잠을 설쳐가며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이제야 꿈을 이룰 수 있게 됐어요. 혼자 가야된다는 사실이 두렵지만 포기할 수 없어요."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위해 나래씨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서 자신의 이야기와 트렌스젠더와 관련된 갖가지 정보 등을 공유하고 있다. 때에 따라선 조언도 해주고 있다. 나래씨는 상담을 요청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주된 고민은 '호적정정 문제'라고 말했다.

"주민번호를 바꾸려면 부모의 동의서가 필요해요. 하지만 쉽지 않아요. 부모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힘들거든요. 그래서 주민번호를 바꾸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많아요. 은행이나 병원처럼 신원을 드러내야 하는 곳은 껄끄러울 수밖에 없어요. 특히 경찰서가 가장 불편하죠. 안 좋은 기록이 남을까봐 부당한 일을 당해도 그냥 참고 살아요."

나래씨는 주민번호를 바꾸지 못하면 취직이 어려워 경제적으로 자립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음지에서 양지로… 전문가들 "사회적 인식 바꿔야"

전문가들은 트랜스젠더들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참여하려면 법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 입을 모았다.

성적지향·성별정체성 관련 민간 연구회인 'SOGI법·정책연구회' 김현경 연구원은 "트랜스젠더들 상당수가 눈에 보이는 성별과 주민등록번호상 성별이 달라 신분증 확인이 없는 직장을 찾는다"며 "본인이 원하는 성별로 정정이 가능한 법적인 뒷받침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현재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정을 위한 법률은 따로 없다. 지난 2006년 대법원이 성별 정정을 허가한 뒤 만든 지침에 따라 각 법원 별로 판단하고 있다. 의사의 성전환시술 소견서와 생식능력 제거 진단서, 부모의 동의서 등을 첨부해야 한다.

이준일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가인권위원회법상 차별 행위 19개 중 동성애에 해당하는 '성적지향' 항목은 포함시켰지만 트랜스젠더를 가리키는 '성별정체성' 항목이 빠져 있다"며 "기존 법에 추가하거나 차별금지법을 만들어 트랜스젠더 보호 조항을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랜스젠더를 '제3의 성'으로 분류해 숨기거나 억압할수록 이들이 겪는 고통은 커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김지혜 강릉원주대 다문화학과 교수는 "트랜스젠더들이 모욕과 비난, 폭력에 의해 한국 사회에서 마치 없는 존재처럼 여긴다"면서 "어렸을 때부터 교육을 통해 성별 정체성에 대해 이해하고 포용성도 높여 트랜스젠더들의 사회적 참여가 가능한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limj@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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