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과자는 개선되지 않는다.” 지난 9월 한국경영자총협회는 ‘2015년 저성과자 관리실태 조사’를 발표했다. 전국 30인 이상 380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 조사에서 기업의 51.1%는 저성과자가 경영활동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응답했다. 또한 조사 기업의 51.8%는 저성과자가 개선되는 비율이 20% 미만이라고 응답했다. 직무교육을 강화해도 개선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응답자 대다수는 만성적인 저성과자가 해고되는 비율은 낮다고 말했다. 조사 기업의 77.3%는 만성적인 저성과자가 고용조정되는 비율은 ‘20% 미만’이라고 답했다.

| 12월 29일 이기권 장관과 각 분야 전문가들이 성과평가해고제와 취업규칙 간담회를 열고 있다. / 이준헌 기자 |
정리해고는 노사분쟁 발생 등 부담 지난 12월 30일 고용노동부는 ‘저성과자 해고 지침’을 발표했다. 지난 9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가 저성과자에 대해 해고가 가능하다고 합의한 후에 나온 지침이다. 지침은 해고 대상자의 선정을 다음과 같이 전제하고 있다. “근로자의 업무능력 결여를 이유로 한 해고의 정당성은 업무능력 부족으로 인하여 사회통념상 근로관계의 유지를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판단하여야 함.” 업무능력 개선을 위해 개선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사용자는 제시한 정당성 요건을 갖춘 이후, 교육훈련 등의 기회를 제공했음에도 개선의 여지가 없는지, 배치전환 등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부여하였음에도 개선의 여지가 없는지, 회사 업무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하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해고 여부를 결정해야 함.”
고용노동부의 지침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저성과자 해고는 있었고, 늘 논란을 빚어 왔다. 정부는 저성과자 해고와 관련해 사회적 논란이 있어 왔기 때문에 이를 정리한 가이드북이라고 말했다. 내용도 그동안 법원의 판례를 정리해놓은 수준이다. 그러나 저성과자 해고와 관련돼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사례들은 기업의 주장이나 정부의 입장과는 다르다. 그간의 저성과자 해고는 저성과자에 대한 불가피한 해고라기보다는 상시적인 구조조정을 통한 고용유연화 전략에 가까웠다.
IMF 사태 이후 한국 사회에서는 구조조정, 정리해고 등 집단을 중심으로 한 고용유연화가 빈번히 이루어졌다. 그러나 집단을 대상으로 할 경우 대형 노사분쟁이 발생하는 등 기업들의 부담이 컸다. 김혜진 장그래운동본부 팀장의 말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노동자를 함부로 해고할 수 없다. 이는 분명히 적시돼 있다. 이에 대한 예외적 조항이 정리해고 제도다. 정리해고 제도는 노동자에게 귀책사유가 없다고 해도 기업이 경영상의 이유로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다고 한 제도다. 여기에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 정리해고를 쉽게 적용할 수 없었던 기업들은 집단이 아닌 개인을 대상으로 한 고용유연화 전략을 강화했다. 바로 ‘저성과자 해고’다. 기업들은 저성과자 해고지침의 근거로 고용경직성이 높다는 것을 든다. 그러나 수치는 그와 정반대임을 보여준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2월 22일 ‘통계로 보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모습’을 발간했다. 자료집에 따르면 2014년 우리나라 임금노동자 근속기간은 5.6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근속기간보다 낮고 OECD 회원국 25곳 중 꼴찌다. 은퇴 연령도 높다. 우리나라 은퇴 연령은 2007~2012년 평균 71.1세로, 34개 회원국 중 멕시코(72세)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근속기간이 낮고 은퇴 연령도 높다는 것은 불안정한 단기 노동을 고령까지 해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나라 임금노동자 근속기간 5.6년 정부의 지침에도 나와 있지만 ‘저성과자 해고’에는 전제조건이 있다. ‘교육훈련의 기회를 제공’하고 ‘배치전환’을 하는 등 새로운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훈련의 기회’는 흔히 성과향상프로그램(PIP·Performance Improvemenet Program)이라고 불리며 기업에서 시행돼 왔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향상프로그램이 저성과자의 성과를 향상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라 노동자들의 고립, 공포, 굴욕, 수치감을 자극해 노동자들이 결국 퇴직을 선택하게끔 유도했다는 이야기는 흔히 알려져 있다. 2008년부터 퇴출 프로그램으로 논란이 됐던 KT가 대표적 사례다. KT는 저성과자 직원이나 노조활동을 하는 직원들을 성과 향상과 직무전환이라는 명분으로 1~2명만 근무하는 섬으로 발령을 내 논란이 됐다. 해당 직원들에게 업무를 주지 않고 사무실에 책상만 놔두거나 시간마다 일기를 쓰고 반성문을 쓰게 해 결국 못 버티고 나가도록 해 많은 비판을 받았다.
성과향상프로그램이 해고로 이어지게 하는 또 다른 경우가 직무전환이다. <C-player 매니지먼트 매뉴얼>(김진술 저)은 ‘퇴출 중심의 관리제도’를 육성과 퇴출로 나눠 설명한다. 책은 퇴출 중심의 관리제도를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퇴출 중심의 관리제도는 육성 중심의 관리제도와 그 목적과 취지가 달라 법률적 측면에서 고려할 요소가 많다고 할 수 있다. 퇴출 중심의 관리제도는 저성과라고 하는 사유가 근로기준법상 정당한 해고 사유로 인정되기 어려운 점을 감안하여 저성과라는 사유를 객관적으로 명확히 하는 프로세스의 일환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근로기준법에 저촉되지 않게 성과향상프로그램이 퇴출의 근거를 쌓아가는 과정을 설명한 것이다. 퇴출을 목적으로 할 경우의 프로그램 진행과정은 다음과 같다. “교육훈련은 행동역량보다는 단기적인 성과 창출에 보다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 전문역량 위주로 진행되게 되며, 직무 부여의 경우에도 현재 수행 중인 직무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정량적 목표 설정 및 관리가 가능한 직무로의 배치전환도 적극적으로 고려하게 되는 것이다.” 객관적 수치로 드러나는 성과 목표를 제시하거나 기존 업무와 관련 없는 부서로 배치해 해고로 이어지도록 한다는 것이다. LG유플러스 서비스센터가 대표적 사례다. 김진억 희망연대노조 사무국장의 말이다. “개통기사와 같은 노동자들과 기술 서비스직 노동자들은 회사가 작정하고 저성과자로 만들기가 너무 쉽다. 일을 안 주면 된다. 성과가 날 수 없는 지역으로 보내버리면 된다. 사람만 찍어 내보내야겠다 싶으면 얼마든지 저성과로 만들 수 있는데, 정부 방침대로 진행이 되면 그 방침을 빌미로 해서 이제 이러한 해고가 더 쉽게 자행될 것이다. 자동차 공장처럼 라인작업이 아닌 기술서비스직에서는 얼마든지 회사의 의도대로 실적을 만들어낼 수 있다.”
김혜진 팀장은 “이번 정부의 지침은 지금까지 기업에서 근로기준법을 피해가며 해왔던 ‘저성과자 해고’의 길을 터준 셈”이라고 말했다.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경제불황에서 기업들이 노동자들을 손쉽게 해고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도가 있다는 게 김 팀장의 분석이다. “1998년 경제위기 때도 경험했지만, 실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이런 식으로 악화시키면서 기업이 이 상황을 벗어나는 게 장기적으로 경제상태를 안정화시킬 수 있는 길일까? IMF 사태 이후 고용유연화가 강화되면서 비정규직이 크게 늘어났고, 노동자의 소득은 줄어들었으며, 내수는 악화됐고, 불안정성은 높아졌다. 그런데 여기서 고용유연화를 더 강화시킬 게 뻔한 지침을 내린다는 것은 정부가 있을 수 없는 짓을 하는 것이다.”

| 12월 11일 민주노총·한국노총 조합원들이 정부가 ‘저성과자 해고’를 주제로 서울고용노동청에서 연 토론회에 들어가려다 경찰이 막아서자 손팻말을 들어올리며 반발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
노동부 자의적 해석으로 논란 부를 듯 이번 정부의 지침에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대한 지침도 포함돼 있다. 근로기준법 제94조는 취업규칙을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 과반수 노조 또는 노동자 과반의 동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때 노동자의 동의 방식은 사측의 부당한 간섭이 없는 상태에서 회의방식에 의한 집단적 동의여야 한다고 대법원 판례는 밝히고 있다.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조항은 경영진에게 걸림돌이 돼 왔다. 특히 임금피크제 도입을 앞두고 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를 둘러싼 노사 간 갈등이 심해졌다. 지난 11월 18일 민주노총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폭로 증언대회에서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문제가 사측에 의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보여줬다. 서울대병원에서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투표 과정에서 투표를 강요하고 부결된 결과안을 그대로 강행하는 등의 불법적 상황이 벌어졌다. 우지영 공공운수노동조합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분회 사무장의 불법적 상황에 대한 설명이다. “간호과장, 수간호사가 업무가 종료됐는데도 서명을 할 때까지 퇴근하지 못하도록 막거나 출근한 사람을 붙잡고 서명할 때까지 업무에 투입시키지 않겠다고 했다. 또 서명하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는 협박까지 했다.” 투표 결과도 자의적으로 해석했다.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따르면 근로자 과반의 동의가 있어야 취업규칙을 변경할 수 있다. 병원은 과반 이상이 투표하고 투표자의 과반 이상이 찬성했다는 결과를 근로자 과반의 동의라고 해석했다. 병원은 투표 결과 임금피크제 도입 의사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번 지침에서 고용노동부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조항을 적용하지 않아도 되는 예외적 상황을 제시했다. 노동자의 불이익 정도, 사용자 측의 변경 필요성, 변경된 취업규칙 내용의 정당성 등이다. ‘사회통념상 합리성’이라고 이름 붙여진 예외적 사항들은 노동계의 우려를 낳고 있다. 이미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조항이 있어도 이 조항이 공공연하게 지켜지지 않았는데, 정부의 지침을 통해서 더욱 길을 터주게 됐다는 것이다. 김혜진 팀장은 “법에는 분명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을 할 때 과반 이상의 찬성을 명시하고 있다. 만약 정부의 지침대로 하려면 법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법보다 하위인 시행령도 아니고 극단적인 판례로 지침을 만들어서 가인드라인을 제시한 것은 말이 안 된다.”
법조계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김진 변호사는 “이번에 정부가 낸 것은 가이드북이다. 지침도 아니다. 판례도 대법원 확정 판례도 아닌 것들을 인용했고, 또 인용할 때 왜곡해서 인용한 것도 많았다. 법원에서 확정되지도 않은 것들을 지침으로 내세워 자의적인 해석을 한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법적으로 소송이 더 많아지고 혼란스워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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