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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성매매 투자 사기'로 신고도 못하고 속병 앓는 조선소 직원들

전성필 기자 입력 2016. 01. 15. 14:25 수정 2016. 01. 15.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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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 경기 침체로 울상인 경남 거제에서 조선업체 종사자들이 대규모 사기 사건에 휘말렸다. 중소 조선업체 직원 A씨를 비롯해 조선업 근로자 10여명이 필리핀 유학파인 20대 남성 B씨에게 최대 수천만원 규모의 사기를 당했다.

피해자들은 ‘필리핀에서 성매매 사업을 벌여 수익금을 나눠주겠다’는 B씨의 말에 속아 돈을 맡긴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B씨는 필리핀으로 도주해 잠적했고, 불법인 성매매 사업으로 돈을 벌려던 피해자들은 경찰에 신고도 못 하고 ‘속병’을 앓고 있다.

필리핀에 살던 B씨는 2014년 여름 거제의 한 중소 조선업체에 입사했다. 필리핀 현지 대학을 나와 영어와 타갈로그어(영어와 함께 필리핀 공용어로 쓰이는 말)가 유창한 B씨는 현장에서 외국인 근로자 통역을 도맡았다.

B씨는 작년 초 다른 중소 조선업체에 다니는 A씨 등 조선업계 직원들에게 필리핀 원정 성매매 여행사업을 하자고 제안했다. B씨는 “조선소 근로자가 많은 거제에서 고객만 잘 모집하면 수익성이 높을 것”이라며 주변 근로자들에게 투자를 권유했다.

B씨는 “필리핀 현지 성매매업체와 계약을 맺어 성매매 관광을 시켜 주고, 여기에서 나오는 수익을 매달 투자자에게 입금해주겠다”고 했다. B씨의 제안에 솔깃한 사람들이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의 현금을 주씨에게 맡겼다.

현지 사정에 밝은 한 조선업체 관계자는 “B씨에게 현금을 건네준 피해자가 10여명 정도이고, 투자 명목으로 모인 돈이 억대에 이르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작년 9월 B씨는 필리핀 현지로 성매매 사업 답사를 간다며 A씨에게 300만원을 빌려 필리핀으로 출국했다. B씨는 다시 한국으로 와서 “돈이 더 필요하다”고 했고, A 씨는 자신의 신용카드를 넘겨줬다.

다시 필리핀으로 간 B씨는 A 씨의 신용카드로 현금 250만원을 인출했고, 투자자금을 몽땅 가지고 잠적했다. B씨에게 투자금을 맡긴 조선소 직원들이 필리핀 현지 한인들을 통해 B씨를 수소문했지만, 행방이 묘연한 상태이다.

조선업체 관계자는 “투자자들이 필리핀 한인 커뮤니티 사이트 등에 ‘사업 자금을 빼돌리니 사기꾼 B씨를 찾아달라’는 글을 올렸다”며 “B씨가 마카오에서 투자자금을 도박에 탕진하고 있다는 소문만 무성하다”고 말했다.

A씨 등 피해자들은 원정 성매매 사업을 빌미로 돈을 준 것이라 경찰에 신고도 하지 못하고 있다. 경찰이 정식 수사에 들어갈 경우 성매매 사업에 가담한 사실이 밝혀져 가족과 회사에서 ‘망신’을 당할 것을 걱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률 전문가들은 사기를 친 B씨 외에도 A 씨 등 투자자들도 처벌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불법인 성매매 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인지한 상태에서 투자했기 때문이다. 개입 정도에 따라 투자자들에게도 성매매 알선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재용 JY법률사무소 변호사는 “B에게는 사기죄를 적용할 수 있고, 돈을 맡긴 투자자들도 성매매 알선 공동정범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B씨를 붙잡으면 투자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 이 변호사는 “투자자들이 불법 사업에 쓰일 자금이라는 것을 미리 알았기 때문에 민사소송에 들어가더라도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선 B씨를 붙잡아 조사해야만 사법처리 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거제 조선소 업계에서는 이번 사건을 “3년 넘게 장기 불황을 겪고 있는 조선업계의 슬픈 현실”로도 해석하고 있다. 한 중소조선사 직원은 “성매매 사기 사건은 거제 조선업계에서는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멀쩡한 직원들이 오죽하면 이런 일에까지 투자를 하려 했겠느냐”고 씁쓸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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