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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에게 공정한 출발선을 ⑤ "딱 170만원만 벌었으면" 청년 절반 근로빈곤 위기

입력 2016. 01. 17. 19:26 수정 2016. 01. 18.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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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더불어 행복한 세상]
방과후교사·안내원·공장…
일해도 가난한 정애씨
해외여행 한번 가보는게 꿈

지난 7일 안정애(가명)씨가 경기도 안산시의 한 포장마차에서 부모님의 장사를 돕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A href="mailto:bong9@hani.co.kr">bong9@hani.co.kr</A> '>

지난 7일 경기도 안산시의 한 포장마차에서 안정애(가명·28)씨가 손님들에게 떡볶이를 덜어주고 있다. 포차 안쪽의 오뎅통 위로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그 사이로 정애씨의 부모님이 보인다. 부모님의 포장마차는 밤 9시 무렵이 가장 붐빈다. 그는 종종 퇴근 뒤 이곳에 들러 일을 돕는다.

수도권 전문대를 졸업한 정애씨는 한 공공기관 안내데스크에서 일한다. 한달에 130만원을 받는 파견사원이다. 2009년 직장생활을 시작한 정애씨는 그동안 다섯 군데나 회사를 옮겼다. 방과후교사(월급 70만원)→백화점 카드고객센터(월급 130만원)→공공기관 고객안내(월급 120만원)→살충제 생산공장(시급 5580원) 등을 전전했는데 모두 계약직이나 파견직이었다. 정애씨는 “200만원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한달에 딱 170만원만 벌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여행을 가보는 게 꿈이다. 아직 여권을 만들어본 적도 없다.

네 식구인 정애씨 가족의 월소득은 정애씨 월급에 부모님의 포장마차 수입 150만원을 합쳐 280만원 정도다. 정애씨보다 두살 어린 여동생은 대학을 나온 뒤 중소기업을 다니다가 그만둔 뒤 몇달째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50대 중반인 정애씨 아버지는 “애들 대학 보낼 때만 해도 식당을 하고 있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는 몇해 전까지 식당을 운영하다가 실패한 뒤 포장마차를 차렸다. 지난해 정애씨네는 갑자기 1억원의 빚까지 지게 됐다. 월세를 21만원에서 60만원으로 올려달라는 집주인 요구에, 울며 겨자 먹기로 은행 대출을 받아 집을 샀다. 가족은 정애씨가 기댈 수 있는 ‘안전망’이 아니다.

정애씨는 우리 사회 ‘가난한 청년’의 전형이다.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 의뢰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11월말 작성한 ‘청년 근로빈곤 사례 연구’ 보고서(초안)를 보면, 19~34살 청년층 가운데 ‘근로빈곤 위기계층’이 47.4%(2013년 기준)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보고서는 취업자, 실업자, 취업준비자, 구직활동 포기자 중 중위소득 50% 미만자인 ‘근로빈곤층’이거나, 불안정 취업과 실업의 반복으로 미래에 빈곤해질 징후가 보이는 이들, 즉 임시·일용직과 실업자, 취업준비자, 구직활동 포기자, 무급 가족종사자 등 ‘불안정 근로빈곤 상태’에 있는 이들을 ‘근로빈곤 위기계층’이라고 정의했다. 언제든지 빈곤층으로 추락할 위험이 있는 청년들이 절반에 육박한다는 의미다.

1990년 33.2%였던 우리나라 대학진학률은 2008년 83.8%까지 올라갔고 이후 내림세를 보였지만 지난해에도 70.8%에 이르렀다. 현재 청년세대는 70~80%가 대학을 나왔고 나머지도 거의 고등학교 교육을 마친, ‘고학력 세대’다. 하지만 사회는 이들에게 ‘학력인플레’만 강요했을 뿐, 삶을 안정적으로 꾸릴 수 있는 일자리는 주지 않았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말이 통용됐던 것은 지금은 힘들어도 성실히 일하면 월급이 오르고 삶의 기반이 튼튼해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과 때로는 가족들의 빚까지 껴안고, 기약없이 저임금·불안정 일자리를 떠돌아야 하는 이들에게는 ‘먼 옛날 이야기’일 뿐이다.

학자금대출 ‘빚의 시작’…“돈 벌어도 내돈이 아냐”

지난 7일 안정애씨가 안산시의 한 포장마차에서 부모님을 돕고 있는 모습.(위) 이승철씨가 지난 9일 서울 마포의 옥탑방에서 책을 보고 있는 모습. (오른쪽 아래) 한영수씨가 지난 8일 지방의 한 호텔에서 야근을 하고 있는 모습.(왼쪽 아래) 김봉규 김경호 선임기자 <A href="mailto:bong9@hani.co.kr">bong9@hani.co.kr</A>, 한영수씨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8년 일해도 월급은 130만원 정애씨가 8년째 회사를 다니면서 받는 월급 130만원은 최저임금(월 126만원가량, 주 40시간 근무 기준)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올해 기준으로 1인가구 중위소득(전체 가구를 줄을 세웠을 때 가운데 있는 가구의 소득)은 162만원이다. 빈곤선인 중위소득 50%보다 아래에 있는 건 아니지만, 실직이나 질병 등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면 정애씨는 언제든지 빈곤층으로 밀려날 수 있다.

‘불안정 노동’ 정애씨

8년 일해도 월급은 130만원
비정규 탈출못해 ‘빈곤의 늪’

빚에 짓눌린 승철씨

학자금대출에 신용대출까지
“결혼? 또 빚내는 일은 절대 안해”

‘가난 대물림’ 영수씨

190만원중 100만원 가족 부양
“햄버거 사 먹는게 유일한 사치”

정애씨의 첫 일자리는 초등학생을 돌보는 방과후 교사였다. 하루 5시간씩 일하고 한달 70만원을 받았다. 1년의 계약기간이 끝난 뒤 미련없이 다른 곳을 알아봤다. 남들처럼 하루 8시간 일하고 제대로 된 월급을 받고 싶었다.

두번째 직장인 한 백화점의 카드고객센터에선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 고객들을 응대하는 일을 했다. 온라인 구직사이트에 나온 파견회사를 통해 들어갔다. 명절이 되면 카드회원을 직원 1인당 4~5명씩 늘려 오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월급은 130만원으로 시작해, 6개월마다 5만원씩 올려줬다. 정애씨는 “그나마 여기서 일할 때는 여름휴가비도 5만원 정도 나왔고 명절 선물도 줬다. 지금 회사에선 추석에 김이나 참치세트도 안 준다”고 말했다. 공공기관과 계약을 맺는 파견회사가 3년마다 교체되는데, 이번 회사는 “월급이 짜기로 유명한 곳”이라고 했다. 구내식당에서 먹는 점심식사비도 대주지 않는다. 월급에서 고스란히 8만원가량이 나간다.

1년8개월 만에 정애씨는 다시 일을 그만뒀다. 백화점은 2년이 지나면 법에 따라 파견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해야 한다. 하지만 그 기간을 채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돌아가는 분위기’가 그랬다. 이후 들어간 곳은 지금 일하는 곳과는 또 다른 공공기관이었다. 한달 120만원을 받으며 2년 가까이 일했다. 2년이 가까워오자 역시 그만둬야 했다. 일하는 동안에 2년을 다 채우고 정규직이 된 사례는 들어보지 못했다.

지난해엔 제조업 생산현장에서도 일했다. 바퀴벌레 살충제를 만드는 회사에서 제품포장 업무를 맡았다. 최저시급 5580원(2015년 기준)과 주휴수당만 달랑 주는 곳이었다. 정애씨는 “일이 있으면 나가고 일이 없으면 나가지 않는 불규칙한 곳이었다”고 말했다. 2주씩 혹은 한달씩 일이 몰릴 때만 일하는 파견사원이었다.

정애씨는 ‘서비스 매니저’(고객 관련 업무를 분석·관리하는 일)로 경력을 쌓아가고 싶은 바람이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으로 회사에 취업할 때 그런 지원 동기를 물어보는 곳은 없었다. 그는 “회사를 너무 많이 옮기다 보니 사람이 점점 소심해지고 내가 부적응자인가 싶은 자책이 들 때가 있다”고 말했다.

정애씨는 앞으로 퇴근 뒤 아르바이트를 할 계획이다. 남자친구와 늦어도 4년 뒤에 결혼을 하고 싶어서다. 그러려면 지금부터라도 ‘저축’을 시작해야 한다. 그는 “대략 계산해보니 한달에 70만원정도는 적금을 들어야 결혼을 할 수 있겠더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청년층 절반가량이 ‘근로빈곤 위기계층’으로 분류된 가장 주된 원인은 불안정 노동으로 첫 일자리를 얻은 이후 이를 벗어나지 못하는 청년들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통계청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2015년 8월)를 바탕으로 분석한 자료를 보면, 20대 임금근로자(348만4천명) 가운데 비정규직은 45.9%(160만명)에 이른다. 비정규직은 일자리가 불안정할 뿐 아니라 임금 수준도 낮다. 정규직의 절반 수준(49.8%)이다. 정애씨의 경우에서 보듯 이런 임금 수준은 시간이 흘러도 오르지 않는다. 취업, 결혼, 출산, 내집 마련 등의 정상적인 삶의 경로를 밟기 어렵다.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과거에는 노인·장애인 등 근로능력이 없는 이들에 대한 빈곤 개념만 있었는데 외환위기 이후 일을 해도 가난한 근로빈곤 개념이 생겨났다”며 “우리나라의 근로빈곤은 저임금 고용(중위임금 3분의 2 미만)에서 비롯되고 있는데 이 비중이 국제적으로도 매우 높은 수준이다. 90년대 초반까지 낮아지다가 외환위기 이후 다시 높아진 저임금 고용 비중은 현재 80년대 후반 수준으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2015년 8월)를 바탕으로, 청년층(15~29살·시간당 임금 기준) 저임금 고용 비중은 28.1%에 이른다. 이 비율을 국제비교 기준인 15~24살로 보면 46.1%나 된다.

■ 빚으로 산 대학졸업장 비싼 등록금 때문에 지게 된 학자금 대출은 청년들이 가난에 허덕이게 되는 또다른 이유다. 경북지역에서 대학을 다닌 이승철(가명·32)씨는 8학기 내내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 했다. 미디어유통 분야에서 계약직 사원으로 일하는 그는 한달 200만원을 벌어서 원리금 상환에만 70만원을 쓴다. 졸업한 지 한참 지났지만 아직도 1200만원의 빚을 더 갚아야 한다. 그는 “이제 절반 정도 갚았다”고 말했다.

 몇해 전 “집 사는 데 돈이 부족하다”는 어머니에게 4천만원을 신용대출로 받아 드리면서 학자금 대출 상환은 더 늦어지고 있다. 승철씨는 “돈을 벌어도 내 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월급을 받으면 방세와 원리금 상환을 위한 돈을 떼어놓은 뒤 신용카드 선결제부터 신청한다. 그래야 소비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더 이상 대출을 받고 싶지 않아 적자가 날 것 같은 달엔 식비를 줄인다. 편의점에서 컵라면으로 배를 채우거나 삼각김밥을 사먹는다.

 승철씨는 3평(10㎡)이 채 안 되는 옥탑방 안에 등산용 텐트를 쳐놓고 산다. 그냥 자면 너무 춥기 때문에 외풍을 막으려고 텐트 안에서 잠을 자는 것이다. 서른을 넘긴 그는 결혼·출산 계획이 없다. 그는 “빚을 또 내야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에 있는 35살 이하 청년들의 대출 최초 발생 원인(2013년 토닥토닥협동조합 조사)을 보면, 학자금 대출이 44%로 가장 높다. 학자금 대출 상환을 여섯달 이상 밀린 신용유의자 규모도 2007년 3785명에서 2014년 4만635명으로 10배 이상 늘었다.(한국장학재단 자료)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 대학을 나왔지만 이를 상환하고 저축을 할 만한 안정적 소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빈곤의 늪에 빠질 우려가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자료(2014년 교육거품의 형성과 노동시장 분석)를 보면, 4년제 대졸자 하위 20%와 2년제 대졸자 하위 50%는 고등학교 졸업자에 견줘서도 임금이 낮다. ‘대졸 빈곤층’이 양산될 위험이 커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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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마저 어려우면… 가족부양까지 병행해야 할 경우 청년은 더 가난해진다. 수도권 3년제 대학을 나온 뒤 제주도의 한 중소호텔 시설관리팀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한영수(가명·25)씨는 한달에 190만원을 벌어 100만원을 집으로 보낸다. 빌딩 청소로 생계를 꾸리는 어머니를 도와야 하기 때문이다. 일을 하다가 다친 아버지의 병원비도 보태야 한다. 집에는 빚도 있다.

영수씨는 주야간 교대제로 고된 일을 한다. 길게는 하루 15시간을 일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회사는 야근수당을 통상임금의 1.5배가 아닌 1.25배만 준다. 호텔 쪽은 “다른 호텔과 다르게, 파견직이 아닌 계약직으로 직접 고용해주니 그 정도는 감수하라”고 말했다. 실제로 호텔업계에서 계약직이나마 신입사원을 직접 채용해주는 일은 많지 않아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가 지난달 쓴 돈은 30만5030원이 전부다. 월급을 받더라도 돈이 들어가는 일은 웬만해선 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외식비와 휴대전화 통신비, 교통비 등이 주요 지출내역이다. 옷은 거의 사지 않는다. 영화관에 가는 대신 마을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본다. 많이 돌아다니지 않아서인지 교통비는 4250원만 썼다. 집 앞 맥도날드에서 가끔 사먹는 햄버거가 그에게 최대 사치다. 지금 다니는 회사도 기숙사와 식사를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점 때문에 오게 됐다. 영수씨는 “늘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아서인지, 돈을 쓰지 않고 사는 일이 그닥 불편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원래 기자가 되는게 꿈이었다. 하지만 집안 사정으로 당장 돈을 벌어야하기 때문에 원하는 회사에 들어가기 위한 취업준비는 아직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영수씨는 “처음에는 제주도에 내려와서 올레길도 걸어보고 했는데, 요즘은 몸이 피곤해서 아무데도 가고 싶지 않다. 마음이 종종 우울해진다”고 말했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청년층이 대부분 부모와 같이 거주하고 있어서 비정규직 취업이 곧바로 빈곤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한국의 가족제도가 노동시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완충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하지만 가족이 이런 완충역할을 할 수 없거나 오히려 부양해야 하는 경우, 저임금일자리는 곧바로 빈곤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보건사회연구원은 이번 보고서에서 “청년의 노동시장 진입과 지위 유지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지만 현재 노동시장 상황을 볼 때 개선을 기대하기가 어렵다”며 “한번 빈곤을 경험하면 다시 빈곤을 경험할 가능성이 커지는 빈곤의 점착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청년 근로빈곤에 대한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황보연 최우리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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