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폐지 줍는 노인들이 사라진 이유

양영권 기자 입력 2016.01.20. 06:12 수정 2016.01.20. 07:5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우리가보는세상]

[머니투데이 양영권 기자]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 입니다.

[[우리가보는세상]]

가족과 함께 가끔 외식을 하러 가는 막국숫집 앞에는 폐지를 수집하는 고물상이 있었다. 안을 들여다 보면 박스용 골판지와 신문지, 헌 책이 어지럽게 쌓여 있고, 문 옆에는 낡은 리어커가 항상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얼마전 막국숫집을 들렀을 때는 고물상 앞이 말끔하게 치워져 있었다. 합판으로 된 출입문엔 자물쇠가 굳게 잠긴 채. 그리고 '폐지 가격 하락으로 채산성이 없어 문을 닫으니 더이상 폐지를 가져 오지 말라'는 A4용지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다.

생각해보면 지하철에서 폐지를 줍는 할아버지를 본지도 오래됐다.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이 신문을 대체했기 때문이라지만, 2,3년 전만 해도 배낭에 신문을 주워 담는 노인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승객들이 불편을 겪는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폐지를 팔아 쥘 수 있는 돈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먹고 사는 데 도움이 될 정도는 됐기 때문이다.

폐지 가격은 유가 등 자원 가격과 마찬가지로 최근 몇 년 동안 큰 폭으로 떨어졌다. 한국환경공단에 따르면 수도권 지역을 기준으로 폐지(신문지) 가격은 2011년 평균 킬로그램당 199원에 달했다.

하지만 2014년 12월 102원으로 반 토막 났다. 지난해 12월에도 110원에 머물렀다. 고물상에 신문 폐지 10kg을 들고 가면 2011년에는 2000원 가까이 받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고작 1100원이다. 박스용 골판지는 부피는 크지만 가격은 더 싸다.

전국적으로 재활용품을 수집해 생활하는 인구는 17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변에서 봐서 알겠지만 이들은 대부분 노인이다. 65세 이상 노인빈곤율이 49.3%(2012년 기준)에 달하는 상황에서 폐지 가격이 하락하는 사이 이들의 생계도 더 팍팍해졌을 것임이 분명하다.

휘발유값을 비롯한 저물가로 우리의 지갑에서 나가는 돈이 줄어드는 사이 우리 사회의 다른 한 쪽에서 벌어진 일이다.

인플레이션과 실업은 상충한다는 게 경제학의 일반적인 상식이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은사로도 알려진 앨런 블라인더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전 연준 부의장)는 인플레이션율의 상승보다는 실업률의 상승이 빈곤지수를 더 크게 증가시킨다고 했다.

실업률이 상승하면 약자가 먼저 일자리를 잃지만, 인플레이션으로 가장 큰 손해를 보는 사람은 금융자산을 다량으로 갖고 있는, 부유한 계층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경제현상에는 항상 이면이 존재한다. 그렇다고 폐지 가격을 임의로 올릴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하지만 저물가로 보는 혜택의 일부가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이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정책을 펴는 것은 가능하다.

이는 내수를 유지하는 데도 바람직하다. 원재료 가격이 상승할 때는 반대 방향의 정책도 가능하다. 일종의 보험과도 같다. 혜택을 보는 측의 배려와 정부나 국회의 섬세한 정책 결정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양영권 기자 indepen@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