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제 교사의 인권 시계는 거꾸로 간다

김경준 입력 2016. 1. 30.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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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이천시 한 고등학교의 이른바 ‘교사 빗자루 폭행’사건.

최근 기간제 교사와 관련한 두 가지 이슈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경기 이천시 한 고등학교의 이른바 ‘교사 빗자루 폭행’사건이고, 또 하나는 정부가 세월호 참사 때 희생된 기간제 교사의 순직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힌 것입니다. 두 사건의 상관관계가 보이시나요?

정부가 법적 잣대만 들이대며 기간제 교사 차별 개선에 뒷짐만 지고 있는데, 그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제자리 걸음인데, 학생들이 뭘 보고 배울지는 어쩌면 뻔한 일입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기간제 교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고, 그간 부당한 처우에도 숨죽일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이야기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널리 공유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고, 함께 분노했습니다.

한 편에선 여전히 기간제 교사 자리가 8,00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는 기사(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1181307401&code=940100)가 보도되고, 무수히 많은 기간제 교사 채용 공고가 뜨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기간제 교사 처우나 업무 환경 개선 방안 등은 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언제까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벙어리 냉가슴만 앓아야 할까요? 기간제 교사 문제의 모든 것, 일목요연하게 정리했습니다.

기댈 곳 없는 기간제 교사들

‘빗자루 폭행’사건 외에도 ‘기간제’라는 이유로 학생들에게 얕잡아 보이는 경우는 숱하게 많습니다. jtbc 보도(http://news.jtbc.joins.com/html/034/NB11156034.html)에 따르면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선 남학생이 여자 기간제 교사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누나 사귀자”라고 하는가 하면, 경남의 한 초등학교에선 6학년 여학생과 기간제 교사가 서로 때리며 싸우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원인은 기간제 교사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 때문인데, 학생들의 인식은 다음 대화에 잘 드러납니다.

학생 : 선생님은 진짜 교사 아니잖아요.

교사 : 계약 형태의 차이일 뿐이야. 교사 맞고, 교원 자격도 있어.

학생 : 에이~ 그게 뭐든 선생님 아니잖아요.

사연 속의 기간제 교사는 말문이 막혀버렸습니다. 또 다른 기간제 중학교 교사는 수업태도가 안 좋은 학생을 나무랐더니 “내가 너 학교 잘리게 할거야”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학생들이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게 된 데는 학교와 정규 교원들의 탓도 큽니다. 학기 중에 담임을 맡게 된 기간제 교사를 학생들에게 소개하면서 교감 선생님이 ‘기간제’라고 콕 찍어 말하는가 하면, 동료 교사는 “선생님은 ‘진짜 선생님’되면 정말 잘 할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학교과 정규 교원들 스스로 기간제 교사를 동료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들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되려 정규 교원보다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1년간 매일 아침 7시에 혼자 교문지도 할 수 있는 기간제 교사”를 구하는가 하면, 정규 교원들이 맡기 꺼려하는 담임교사, 동아리 담당교사, 방과 후 지도교사, 행사 기획, 기숙사 관리 등등의 업무는 기간제 교사의 몫이 됩니다. 고용이 불안한 기간제 교사들은 불합리한 요구를 거부하기도 난감합니다. 일은 산더미처럼 늘어나고 정신도 육체도 피폐해집니다.

이런 업무 불평등의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되돌아갑니다. 기간제 교사들은 6개월 혹은 1년 단위로 계약(실제로는 한 달 단위 계약도 많다고 합니다)하는 계약직이기 때문에 학생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찰이나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기 힘듭니다. 따라서 기간제 교사가 업무를 많이 맡을수록 학생들의 권익이 침해되는 셈이죠. 한 기간제 교사는 “학생들이 내년엔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제안을 해도 뭐라고 대답해줄 말이 없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관련 콘텐츠 보기 : 직썰만화 ‘나는 1회용 선생입니다(http://www.ziksir.com/ziksir/view/2840))

한 편에선 여전히 기간제 교사 자리가 8,00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는 기사가 보도되고, 무수히 많은 기간제 교사 채용 공고가 뜨고 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대한민국 교사 10명 중 1명은 ‘기간제’

교육부에 따르면 전국 유치원 및 초ㆍ중ㆍ고교 기간제 교사는 지난해 4월 1일 기준 4만7,000명으로 전체 교원(48만9,000여명)의 약 10%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연수, 교육, 휴직 등의 기회가 많은 지역의 경우 기간제 교사의 비율은 급상승합니다. 중앙일보 강남통신(http://gangnam.joins.com/news/article/Article.aspx?aid=19027977)에 따르면 학교와 교사의 생활지도가 가장 중요한 중학교의 기간제 교사 비율은 지난해 기준 서울 강남구 16.8%, 서초구 15.5%, 송파구 12.4% 등으로 전국 평균을 크게 웃돌았습니다. 강남구의 사립 학교인 은성중학교는 기간제 교사 비율이 35.7%에 달했으며, 도곡중(강남구ㆍ공립) 24.6%, 월계중(노원구ㆍ공립) 23.3%, 잠신중(송파구ㆍ공립) 23.2%, 신사중(강남구ㆍ공립)과 청원중(노원구ㆍ사립)은 22.2%를 기록했습니다.

또 사립학교의 기간제 교사 비율은 공립학교에 상대적으로 높은 편입니다. 오마이뉴스 보도(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70926)에서 인용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 서울 소재 중등 사립학교의 30.7%가 전체 교사 대비 기간제 교사의 비율이 15%를 웃돌았고(전교조 조사 자료), 2011년 1~7월 서울 소재 사립학교에서 충원한 신규 교원 중 70.98%가 기간제 교사였습니다(권영길 의원실 제공). 비용 절감 등을 이유로 정교사를 충원해야 할 자리를 기간제 교사로 메우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간제 교사는 공무원인가, 아닌가

정규 교원보다 비용도 절약되고, 학교 입장에선 기피 업무를 맡길 수 있어 활용도가 높은 기간제 교사는, 적어도 현재까진 공무원이 아닙니다. 정부가 세월호 참사 때 희생된 기간제 교사들의 순직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기간제 교사들이 “성과급을 주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며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대법원 판결이 아직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 2심 재판부는 “기간의 제한이 있더라도 기간제 교사도 교육공무원법에 따라 임용되는 교원이므로 교육공무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반면 정부는 여전히 “기간제 교사들을 교육 공무원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는 매일노동뉴스의 칼럼(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6116)에서 “중학교의 57%, 고등학교의 54%에서 기간제 교사가 담임을 맡고 있지만, 교육부는 ‘직무전념성’이 높지 않다는 엉터리 주장으로 기간제 교사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고 있다”며 “교육계에서조차 비용절감과 통제를 목표로 기간제 교사를 늘리는 현실에서, 그들의 권리마저 제대로 보장되지 않으면 최선을 다하는 교사들은 좌절과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고 꼬집었습니다.

세월호 사고로 숨진 김초원 단원고 기간제 교사 김초원씨 영정 사진. 그는 기간제라는 이유로 순진 신청했지만 심사도 않고 퇴짜를 맞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곪아만 가는 상처

기간제 교사에 대한 법적 근거는 1982년 시행된 교육공무원법(제 32조 임시교원)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러면 과거에는 기간제 교사(임시교원)에 대한 문제 제기가 없었을까요? 1993년 한겨레신문의 ‘임시교사는 ‘봉’인가 ? 일선 학교서 퇴직금ㆍ방학 중 봉급 안 주기 일쑤’(http://www.mediagaon.or.kr/jsp/sch/mnews/newsView.jsp)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면 23년 전에도 기간제 교사의 편법 운영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다만, 당시엔 동료 교사들의 호의가 있었고, 학생들의 차별은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 정도가 다를 뿐입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기간제 교사들의 상처가 치유되기는커녕 점점 더 깊게 곪아왔다는 사실에 아연할 지경입니다.

“초중고 시절 기간제 교사에게 배운 아이들은, 대학에 진학해 다시 시간강사의 수업을 듣습니다. 그렇게 비정규직에게 배우면서 모두가 정규직을 꿈꿉니다”라는 한 네티즌의 한탄을, “씹을 대로 씹어대다가 단물이 빠지면 또 다른 뼈다귀에 덤벼 들어 씹어대겠죠. 부르르 끓어오르다가 금세 식어버리는 냄비근성 알잖습니까?”라던 이강희(영화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 백윤식의 배역)의 비아냥을 지금이라도 흘려 들어선 안 될 것입니다.

김경준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mailto:ultrakj75@hankookilbo.com)

상수현 인턴기자(숙명여대 미디어학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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