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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마음으로"..소녀상 지키는 현장에도 밥차 등장

이윤정 기자 입력 2016. 01. 31. 21:31 수정 2016. 02. 01.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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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협동조합 ‘밥통’서 시위 참여자들 위한 ‘응원의 밥상’ 차려
ㆍ2014년 출범…세월호 추모제 등 전국 300곳서 4만명 ‘대접’

“우리도 아이 키우는 엄마거든요. 추운 날씨에 학생들이 소녀상을 지킨다니 따뜻한 밥 한 끼 차려주고 싶은 마음에 나왔습니다.”

지난 27일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끝나자 밥차를 지키던 손길이 분주해졌다. 협동조합 ‘밥통’ 후원자 7명과 인터넷 육아카페 ‘서울 성동구·중구’ 지역 엄마 5명이 소녀상을 지키는 학생들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밥차에서 끓인 황태국과 계란장조림, 전, 김치 등 반찬을 그릇에 정성스레 담았다. 학생들은 소녀상 옆 찬 바닥에 앉아 뜨거운 국물을 후루룩 넘겼다.

전날부터 소녀상을 지켰다는 대학생 안민준씨(21·가명)는 “따뜻한 밥 생각이 절실했는데 정말 감사하다”며 밥통 후원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날 오전 미얀마 배낭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수요시위에 참석했다는 강상호씨(24·가명)는 “시민들이 직접 밥을 해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모습에 지친 마음이 사라지는 것 같다”고 했다.

지난 27일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끝난 뒤 평화의소녀상을 지키는 학생들을 위해 점심식사를 준비한 협동조합 ‘밥통’ 후원자인 손지후, 김현영, 정상천, 서안나, 이명옥, 윤해경씨(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가 밥차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밥통’ 밥차가 소녀상을 지키는 사람들을 찾은 것은 이날이 네 번째였다. 2014년 3월 출자조합원 28명이 모여 만든 밥통은 전국 곳곳에서 다양한 이유로 싸움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와 서민들을 찾아가고 있다. 하이디스 농성장, 용산참사 추모집회, 세월호 추모제, 서울역 KTX 해고승무원 시위 현장 등 전국 300여곳, 4만여명의 사람들과 밥을 나눴다. 손지후 밥통 연대매니저(42)는 “밥은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채운다”며 “밥통의 밥이 어렵게 싸우고 있는 사람들에게 버틸 힘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밥통 조합원은 대부분 직장인이다. 하상수 밥통 이사장(55)도 공장 노동자다. 자동차 공장에서 근무하며 비정규직 차별을 경험한 하 이사장은 시위 현장에서 밥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위해 밥통을 기획했다. 밥통의 밥심은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힘을 발휘하고 있다. 밥통을 후원하는 ‘밥알단’ 페이스북에 일정이 올라오면 후원자들은 반찬을 준비하거나 후원금을 보낸다. 지방에 있는 농민들은 농사지은 배추, 무, 고구마, 옥수수 등 다양한 식재료를 택배로 부친다. 배식 봉사에 참여하는 후원자도 있다.

이날 배식에 나선 서안나씨(53)는 경기 용인 지역 인터넷 카페 모임에서 밥통을 알게 됐다. 서씨는 “세월호 참사 이전엔 엄마들이 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없었다”면서 “엄마들이 사회적 현안에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결국 아이들에게 나쁜 세상을 물려주게 될 것 같아 밥통 봉사에 나오게 됐다”고 했다. 올해 1월 현재 밥통 후원자는 250명을 넘어섰다.

밥통의 힘은 연대에 있다. 한광주 밥통 기획집행위원(52)은 “식사를 준비하는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밥차까지 오셔서 ‘내가 하늘나라에 가면 먼저 간 할머니들한테 밥통 이야기를 전하겠다. 정말 고맙다’고 하셨다”며 “밥통의 힘은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채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틀간 소녀상을 지킨 이여진씨(24·가명)는 “밥통뿐 아니라 많은 시민들이 치킨과 피자를 시켜주시고 근처 식당에 식권까지 끊어주셨다”면서 “소녀상을 지키는 건 대학생뿐 아니라 힘을 실어주시는 시민 모두”라고 말했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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