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지막 달동네' 성북동 북정마을, 예술가 모여들어 '새바람'

신희은 기자 2016. 2. 6.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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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후]한옥마을 조성 재개발 구역, 원주민·조합 간 갈등도.."과거·현재 만나 발길 잦아"

[머니투데이 신희은 기자] [[부동산후]한옥마을 조성 재개발 구역, 원주민·조합 간 갈등도..."과거·현재 만나 발길 잦아"]

서울 성북구 성북동 북정마을의 중심부 마을 카페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주민의 모습. @사진=신희은 기자.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고들 해요. 아직 연탄으로 겨울나는 어르신들이 있는 동네지만 예술하는 젊은이들이 모여들면서 활기가 생겼죠."

'성북동' 하면 흔히 담벼락이 성인 키를 훌쩍 넘는 대저택이 줄지어 늘어선 부촌을 떠올린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우아한 사모님이 "성북동입니다" 하고 전화받는 모습이 익숙해서일지도 모른다.

성북동 북정마을 안내도. @사진=신희은 기자.

하지만 한양도성 성곽 바로 아래 산기슭엔 '북정마을'이라는 소박한 동네도 있다. 평지 대로변에서 걸어 올라가면 이내 숨이 가빠지는 경사진 언덕 위 달동네다.

북정마을에선 평일이든 주말이든 카메라를 어깨에 둘러메고 골목을 오가는 사진애호가나 성곽길 산책 도중 들른 방문객을 쉽게 마주칠 수 있다. 이들은 "서울에 아직도 이런 곳이 있었네" 하며 옛 풍경을 간직한 동네에 감탄을 연발하곤 한다.

◇"총독부 등지겠다" 남향 마다한 만해가 터 잡은 동네

독립운동가이자 승려, 시인이었던 만해 한용운 선생이 1933년에 지어 만년을 보내다가 1944년 5월에 생을 거둔 '심우장' 모습.

3일 겨울에 찾은 북정마을은 마을 카페 야외에 삼삼오오 모여 곁불을 쬐는 어르신들 덕에 더 정겨워 보였다. 어르신들은 "심우장 어디로 가요?"라고 묻는 방문객들에게 일일이 손짓으로 방향을 일러줬다.

'심우장'은 북정마을의 상징이다. 조국의 독립에 평생을 바친 독립운동가이자 승려, 시인이기도 했던 만해 한용운 선생이 만년을 보내다 1944년 5월 9일 파란만장한 인생을 마감한 곳이 심우장이다.

1933년에 지어진 정면 4칸, 측면 1칸의 작은 목조 기와집인 심우장은 특이하게도 '남향'인 주변 다른 집들과 달리 '북향'이다. 만해가 집을 지을 때 조선총독부와 등을 지기 위해 북향으로 자리 잡도록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일제에 타협하지 않고 변절하지 않겠다는 만해의 정신이 오롯이 느껴진다.

실제 북정마을은 광복 후 피난민들이 몰려들면서 형성된 동네로 곤궁했던 우리네 삶을 엿볼 수 있는 역사가 담긴 동네다. 도심 개발에 떠밀려 외곽으로 밀려나야 했던 서민들이 정착해 살던 곳이기도 하다. 때문에 수십년된 무허가 주택도 즐비하고 연탄을 때며 겨울을 나거나 김장독을 흙마당에 파묻는 풍경이 낯설지 않다.

◇재개발 구역지정 후 원주민·조합 간 갈등도

서울 성북동 북정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서울도성 성곽. @사진=신희은 기자.

어르신들이 주로 살던 북정마을은 서울시가 1998년에 도시주거환경기본계획을 설립하고 이 일대를 재개발 정비예정구역으로 지정하면서 외지인들이 투자를 위해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2011년 8월에 재개발 구역지정이 됐고 현재 한옥마을 조성을 큰 그림으로 조합설립인가가 난 상태다. 성곽에 인접해 있어 문화재보존을 위한 규제가 많아 개발 사업성이 비교적 낮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성북구청 관계자는 "2구역 일대를 한옥마을로 새로 조성한다는 당초 계획이 변경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마을 곳곳에는 기존 동네를 철거하고 한옥마을로 조성하는 계획에 반대하는 원주민들과 개발을 추진하는 조합의 주장을 담은 낡은 벽보도 눈에 띈다. 북정마을에 오래 산 주민들은 옛 모습을 간직한 정감 있는 동네를 보존하자는 주장이다.

북정마을로 향하는 성북동 초입에 살면서 30년 넘게 부동산을 운영한 S중개업소 관계자는 "외지인들은 빨리 개발하자고 하지만 주민들은 이 상태에서 살기 좋게 정비했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며 "요즘은 골목이 살아 있는 동네에 오히려 젊은이들이 산책하러 일부러 찾아오고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예술가들 몰려들어 '새바람'..."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져"

디자이너, 연극인, 건축가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젊은이들이 성북동 북정마을의 구옥을 개조해 정착하면서 마을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고 있다. @사진=신희은 기자.

재개발 논란이 아직 현재진행형인 북정마을엔 최근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재개발 사업이 전면 철거 후 조성에서 보존과 재생으로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재개발 가능성을 낮게 본 젊은이들이 이곳에 장기거주를 위한 터전을 마련하기 시작한 것.

젊은 디자이너, 연극인, 건축가 등 예술가들이 마을의 허름한 구옥을 사들여 개조해 공방, 카페, 디자인 스튜디오 등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서울성곽과 성북동 일대가 내려다보이는 멋진 전망을 즐기기 위해 옥상 테라스를 만든 집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마을 곳곳에 주민의 손길이 담긴 카페와 연극인의 집 등도 생겨났다.

성북동 D부동산 관계자는 "예전에는 재개발을 바라보고 투자하러 온 외지인들이 있었다면 요즘엔 예술가들이 경치 좋고 조용한 곳에서 작업하기 위해 집을 사서 취향에 맞게 개조하는 사례가 많이 늘었다"며 "마을버스가 돌아 나오는 마을 길가를 중심으로 집값도 평(3.3㎡)당 1500만원선을 호가할 정도"라고 말했다.

높은 임대료와 대형 프랜차이즈 등쌀에 밀려난 대학로의 연극인들이나 감성적인 마을 풍경에 매료된 젊은 예술가들이 동네에 모여들어 생기를 불어넣고 있는 셈이다. 최근 들어 인근 주택 거래가 활발해졌고 수요에 비해 매물도 많지 않다는 전언이다.

마을 주민들은 "이렇게 정겹고 살기 좋은 동네가 서울에 또 있겠느냐"고 입을 모았다. 오래된 것들은 흔적조차 찾기 힘든 시대, 북정마을은 서울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현대와 어우러지고 있었다.

신희은 기자 gorgo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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