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한겨레

노래 부르러 한국 왔다가 '접대부' 국가가 내준 '성매매 허가 비자'?

입력 2016. 02. 23. 20:06 수정 2016. 02. 23. 21:06

기사 도구 모음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한겨레] 예술 E-6 비자 받은 외국인 여성들
성착취 노출…“일본처럼 규제 필요”

필리핀에서 밴드 활동을 한 제시(가명)는 “노래를 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을 믿고 한국에 왔다. 노래 말고 다른 일도 해야 한다는 걸 알려준 이는 없었다. “24시간 일했어요. 쉬는 날도 없이 ‘바파인’을 해야 했어요.” ‘바파인’(bar fine)은 성매수 남성이 성매매업소에 지불하는 성매매 대가를 일컫는다. 남성이 업주에게 15만원을 내면 제시에겐 4만5천원이 돌아왔다.

예술흥행(E-6)비자를 발급받아 한국에 온 이주민을 대상으로 국가인권위원회가 벌인 실태조사(2014년) 일부를 재구성한 내용이다. ‘연예인 비자’라고도 불리는 E-6비자는 우리나라에서 공연 등 연예활동을 하려는 외국인에게 법무부가 발급하는 비자(체류기간 2년)로, 영역에 따라 예술연예(E-6-1)비자와 호텔유흥(E-6-2)비자, 스포츠(E-6-3)비자로 구분된다. 특히 유흥업소에서 공연하는 이들에게 발급하는 E-6-2비자는 주로 필리핀 등에서 온 외국인 여성에게 성매매를 알선·강요하는 데 악용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데도 정부는 근본대책 마련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공익법센터 어필 등이 꾸린 ‘E-6-2비자 대안 네트워크’는 23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인신매매 일본 실태조사 결과 발표 및 쟁점 토론회’를 열어 “일본 정부도 과거 한국 정부처럼 ‘흥행비자’ 제도를 통해 필리핀 이주여성의 인신매매에 관여했지만 2004년 이후 적극적인 개선책을 펼친 끝에 그 수가 급감했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가 관련 제도 정비에 나선 것은 2004년 미국 국무부가 연례 인신매매 보고서를 통해 ‘인신매매 피해에 대한 제도 정비’를 촉구해서다. 이후 일본 정부는 입국관리법에 인신매매를 정의하는 규정을 신설하는 등 관련 법을 개정하고, 외국인 초청업자와 영업점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다. 그 결과 새로운 규제에 따라 초청업체 1000곳 중 800곳이 초청 불가 판정을 받게 됐고 이주여성을 고용하던 유흥업소 대부분이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2000년 6만여명에 이르던 일본 내 필리핀 국적 흥행비자 입국자는 2005년 이후 급감해 해마다 2000~3000명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 역시 2001년 미국 국무부로부터 인신매매 철폐에 대해 최소한의 기준도 갖추지 못한 ‘3등급 국가’로 분류됐지만 대응 방식은 일본과 달랐다. 토론자로 나선 소라미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정부는 2003년 러시아 무희에 대한 비자 발급을 중단하고 외국인 전용 유흥음식점 지정 기준을 강화했지만, 러시아 여성의 공백을 필리핀 여성이 대체하는 방식으로 착취가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E-6-2비자 입국자는 2003년 이후 연간 4000명 안팎으로 유지되고 있다. 소 변호사는 “E-6비자 이주여성 대다수가 성 착취 피해에 노출되고 있는 이상 정부가 먼저 비자체계 정비에 나서야 한다”고 짚었다. 신지원 전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인신매매 피해자가 쉽게 구제 요청에 나설 수 있게, 안정적인 특별체류 자격을 보장하고 쉼터와 생계 대책을 지원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Copyrights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